새해 계획, 실패를 시도하기
‘새해’라는 단어는 힘이 세다. 새로운 하루, 새로운 한 주, 새로운 한 달, 새로운 계절보다 커다란, 새로운 한 해. 말로만 들었던, ‘제대를 앞둔 병장의 자신감’이 이런 것일까? 새해 앞에만 서면 난 어마무시한 히어로가 된다.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뭐든 실천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계획형 인간인지라 새해마다 하고 싶은 루틴을 모두 욱여넣은 이상적 계획을 세우곤 했다. 그리고 그 계획 앞에는 대부분 ‘매일’이 붙었다. 매일 영어단어 외우기, 매일 운동하기, 매일 책 읽기, 매일 OOO 하기. 계획만 보면 전세기 타고 다니는 연예인 버금갈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이다. 이봐, 매니저 이 스케줄 너무 가혹한 거 아니야? 내가 무슨 로봇인 줄 알아? 뭐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 너 해고야! 라고 할 수도 없다. 양두리의 매니저는 양두리. 남이 아니라 나라서 자르지도 못한다.
매니저를 바꿀 수 없으니, 올해에는 계획을 바꿔보았다. 가장 큰 변화는, 1월에 ‘실행’을 목표로 하지 않기로 한 것. 이제까지는 항상 1월 1일 땡! 하자마자 숨 돌릴 새도 없이 실천에 돌입했다. 버거운 계획을 이고 지고 가려니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났고, 무겁다며 계획을 내던져버리기 일쑤였다. ‘새해’라는 단어가 힘이 너무 세서, 그 힘으로 엉덩이를 확 밀었더니 일어서기는커녕 그대로 고꾸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계획과 실행 사이에 적응기, 그러니까 마음껏 시도하고 또 실패할 수 있는 시기를 두었다. 짐을 쌀 때도 한두 번 들어보고 무거우면 덜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계획도 그렇게 수정해 나가 보자고 다짐했다.
2022년 일상에 최우선으로 안착시키고자 하는 루틴은 두 가지, 글쓰기와 영어 공부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글을 한 편씩 쓰고,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에는 영어 공부를 1시간씩 하는 것이 새로운 계획. 그렇게 시작한 월요일의 글쓰기 첫 시도는 역시나 실패했다. 어떻게 몇 개월 동안이나 매주 글을 썼던 거지? 아무래도 글 쓰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수요일에 다시 시도해보자. 화요일의 영어 공부도 실패했다. 방 정리가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과감하게 하나를 포기하고 정리에 몰입했다. 다시 시도한 수요일의 글쓰기는 또 실패. 그래, 아직 금요일이 있으니까. 다행히 목요일에는 드디어 1시간 영어 공부에 성공했다. 쌓아두기만 했던 영어 교재 중 두 권을 골랐고, 하다 보니 무려 90분이나 흘렀다. 역시 첫술 뜨는 게 어려울 뿐, 시작하니 재미있네.
이번 주 평일의 마지막인 금요일, 결국 글쓰기에 세 번째 다 실패했다. 이쯤 되니 조바심이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나 이러다가 영영 글 못 쓰는 거 아니야? 얼마 전에 한 인터뷰에 계속 글을 지을 거라며. 말만 던지고 실천은 안 하는 거야, 지금? 때를 놓칠세라, 자괴감이 훅 치고 들어왔지만, 워워 진정하자. 1월은 아직 실패해도 되는 시기니까 괜찮아. 이번 주에는 영어 공부 시작하기 성공했네! 글쓰기는 다음 주에 다시 도전하면 돼. 우리 그러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매니저? 이 자괴감 좀 끌고 나가.
그리고 그 다음 주 월요일,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카페로 향했다. 그래 맞아, 나 한창 글 쓸 때 카페에서 이면지에다 플러스 펜으로 쓰고는 했지.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이 글의 초고를 써 내려가고 있다. 심지어 벌써 네 장째다. 네 번의 시도 끝에, 다행히 오늘은 성공. 어설픈 초벌 문장이라 다시 매만져야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글을 잘 쓰다’라는 문장에서 부사인 ‘잘’은 없어도 되지만, ‘쓰다’가 없으면 문장이 될 수 없듯이, 그만큼 ‘잘’보다는 ‘쓰다’가 백 배, 천 배 중요하다.
지난 2년 동안 ‘적극적 실패의 시기’라는 이름 아래 용기 낸 크고 작은 시도들은 무엇 하나 무용한 것이 없다. 나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는 것은 실패해도 괜찮다고, 무릎을 털어주고 일어날 수 있게 손을 내미는 것. 다른 이에게는 잘만 하던 행동이지만, 스스로 하기까지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 조금이나마, 바닥에서 일어나기 위해 무릎을 세우는 근력과 넘어져도 괜찮다고 웃어넘기는 여유가 생겼다. 첫술을 떴으니,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두 번째, 세 번째 숟갈도 꼭꼭 씹어 넘길 참이다. 야무지게 먹어야지.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