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못 마시는 사람에게 커피란
“오늘은 제가 커피 살게요!”
“오 진짜요?”
“올~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저기 저 카페 갈까요?”
점심시간 후 누군가가 커피를 사겠다고 말하는 순간,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마음의 준비를 한다. 카페에 들어서 메뉴판 앞에 멈춰 서고 사람들의 스피드 게임이 시작된다.
“전 아메리카노요. 따뜻한 거!”
“전 라떼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는 아아메!”
어제부터 준비해 온 것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메뉴를 말하고 하나 둘씩 뒤로 빠진다. 카운터 앞에 남는 건 결제할 사람과 나. 눈과 머리를 바삐 굴려 메뉴판의 좌측 상단부터 우측 하단까지 3번 정도 스캔한 뒤 겨우 입을 뗀다. “어... 음... 저... 는 따뜻한 유자차요.”
나는 커피를 못 마신다. 아니, 정확히는 카페인에 취약한 몸을 가지고 있다. 마실 수는 있지만 복불복에 잘못 걸리면 그날 밤은 매우 곤란해진다. 여기서의 ‘불복’이란, 자야 할 시간에 뇌님이 ‘아 피곤하다고 쫌!!! 내일 출근 안 하냐!!!’라고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심장 놈은 정해인과 박보검에게 동시에 고백받은 사람처럼 벌렁벌렁하고, 눈 친구들은 점심시간을 1분 앞둔 11시 59분처럼 말똥말똥하다. 몸속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명치 근처에 꿍 하고 자리 잡고는 발톱을 세워서 내 위벽을 이리저리 긁어댄다. 으윽. 상상만 해도 정말 괴롭다.
이런 사정으로 편하지 않은 누군가가 음료를 사겠다고 할 때면 항상 난감하다. 커피가 아닌 음료는 보통 더 비싸기 때문이다. 빠르게 모든 메뉴를 훑어본 뒤 커피가 아닌 것 중 가장 저렴한 메뉴를 고른다. 그래서 결국 가장 만만한 것이 유자차. 보통 아메리카노가 2,500원이면 유자차가 4,000원. 아메리카노가 4,000원이면 유자차가 6,000원 정도다. 남들은 다 5~6,000원짜리 짜장면과 짬뽕 먹을 때 혼자 9,000원짜리 고추덮밥 고르는 기분이랄까(물론 더치페이면 아무 상관이 없지만). 마음 편히 최저가 메뉴를 고르는 이들이 때론 부럽다. 그들은 유자차를 마실 ‘핑계’가 있는 내가 부러울까?
때문에 나는 늘 커피 마시는 걸 바라보는 사람이다. 교복 입던 시절에 커피는 어쩐지 술과 담배처럼 ‘어른의 것’ 같았다.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거나, 자판기에서 레츠비를 뽑아 든 또래 친구들을 볼 때면 ‘오... 뭔가 있어 보이는데? 어른스러워.’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나도 가끔 그런 멋짐이 갖고 싶어서 레츠비를 마셔 보았지만 그 쓴 맛과 텁텁한 뒷맛. 먹고 나면 입에서 나는 꼬린내까지. 동경은 일상이 되지 못하고 계속 동경으로 남았다.
4년제 대학을 세 번은 졸업하고도 남았을 만큼 시간이 흐른 지금도, 커피는 여전히 내겐 ‘어른의 음료’이자 ‘남의 음료’ 다. 하지만 토요일 아침(이라기엔 점심에 더 가까운 시간)에 가장 먼저 하루를 맞이한 아빠가 전기포트에 물을 포로록 끓여 핸드드립 커피를 내릴 때 나는 향긋한 커피 냄새가 좋다. 동그랗게 입을 말아 아빠가 내려둔 따뜻한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아흐으~ 좋다”하는 엄마를 보는 것이 좋다. 아마 나이 앞자리가 여러 번 바뀌어도 ‘나의 음료’가 될 것 같지는 않은 커피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고 문득 친구로부터 오는 ‘커피 한 잔 할래?’에 담긴 마음이 좋다. 그래서 커피는 내게 ‘다정한 음료’이기도 하다. 오늘은 퇴근길에 엄마 아빠를 위한 아메리카노를 두 잔 사가야겠다. 나의 마음도 커피에 퐁당 담아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아, 두 잔 다 샷 추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