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기만 바랬던 욕심
혼자 유럽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네이버 카페를 이용해 처음 보는 사람들과 동행 약속을 잡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 오는 외지에서의 첫날밤을 쓸쓸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 벙커라는 야경 명소에 함께 갈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글에 나도 같이 가고 싶다고 쪽지를 보냈다. 답변은 금방 왔고 그날 오후 까사밀라 앞에 모두 모였다. 인원은 8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벙커는 과거 요새로 스페인 내전 당시 바르셀로나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이후 방치되다가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야경 명소가 되었다.
관광지에 대해 너무 많은 사진을 보고 가면 감동이 덜 하기 때문에
당시 동행 사람들을 따라갈 때까지만 해도 벙커가 뭔지 몰랐다.
시내에서 버스로 약 30분을 이동해야 하고 편의점이 없어 미리 마트에 들러 각자 마실 맥주와
간식 등을 사 갔다.
우리나라 대표 가로수는 은행나무인데 스페인에는 만다린 가로수가 있다.
상큼 매력 터지는 바르셀로나.
버스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마치 예전 남산 종점에서 남산타워까지 조금 더 올라가는 것처럼..
선셋이 아름다워 중간중간마다 사진을 찍느라 가는 데 한참 걸렸다.
동갑내기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며,
이 아름다운 순간을 혼자가 아닌 함께해서 더욱 아름답게 남았다.
막상 꼭대기에 올라오니 버려진 공터처럼 휑하고 오는 길에 가로등도 겨우 몇 개밖에 없어서
후미진 공포를 조성했는데, 그래서인지 야경을 더욱 선명하게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달빛이 비치는 지중해 바다와 가로등 불빛에 물든 벙커로 오는 길.
사진에 담기지 않는 광활한 야경.. 내가 본 야경 중 최고였다.
사진 부탁하지 않아도 동행해 주신 분들이 참 열심히 찍어주셨다.
한국인 정은 사진 보듬이라나.
덕분에 인증숏을 가족들에게 보냈는데, 특히나 엄마가 가장 좋아하셨다.
“이것 봐, 행복해 보여!”
나는 이때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만으로도 효도가 될 수 있구나 깨달았다.
엄마가 기뻐해 주시니 지구 반대편까지 혼자 온 나도 행복해졌다.
이제 야경을 다 봤으니 저녁을 먹어야지.
스페인의 저녁식사 시간대는 우리나라보다 늦고 또 오래 먹는다.
동행분들과 맛있는 타파스 집을 찾아갔는데 두 곳 모두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야 했다.
나랑 같이 이야기를 많이 나눈 동갑 친구는 일찍 숙소로 돌아갔는데,
나도 그때 저녁 식사 자리가 분명 즐거울 거라는 기대를 버렸어야 했다.
두 식당 모두 허탕 치고 들어간 곳은 손님이 없는 허름한 일반 식당이었다.
빠에야와 스테이크 등 시켜 다 같이 허기를 달래며 먹었지만 맛이 없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맛과 금액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식사 후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직업 얘기가 나왔다. 대부분 회사 퇴직 후 여행 온 20대 후반~30대 초반이어서 퇴직자 모임이라고 다들 웃었다.
그 외 한 명은 공기업을 다니면서 휴가를 써서 여행 온 남성분, 유럽내에서 유학중 방학이라 놀러 온 여대생이 있었다.
공기업 남성분이 하도 내가 회사원 같지 않다며 하도 직업을 캐묻길래
“가게를 운영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고를 당해 매장을 접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문제는 식삿값을 계산할 때 터졌다.
인원수로 나누어 값을 지불하면 되는데, 나누기 애매한 10유로 이하 거스름돈을 공기업 남성분이 대뜸 나보고 지불하라고 지목한 것이었다.
“이 돈 더 내실 수 있죠?”
나는 네..? 하곤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직업 상 자주 있는 일이었다. ‘네가 사장이니까 밥을 사.’ 혹은 밥값 결제할 때 꼭 ’ 난 돈이 없어.’라는 등..
근데 여행 와서까지 이걸 겪어야 한다니.
그 상태로 3초가 지났을까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빠르게 계산을 하고 거스름돈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식사 자리를 마치고 작별 인사 후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호스텔로 돌아와 나는 그 불쾌감을 오랫동안 잊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