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별로였어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역사적인 부분을 배워가면 좋을 것 같아 한국에서 미리 가우디 투어 여행사를 알아보았다.
가장 일반적인 여행사가 보통 1인 2만 원~3만 원, 인원 30명대의 큰 규모 관광버스 이동 투어였다.
후기를 자세히 읽어보니 가이드마다 평점이 천차만별이었고 개인적으로 버스 이동보다는 걸어 다니는 게 더 좋겠다 싶어서 워킹투어를 검색했다.
마침 소규모 워킹투어를 찾았고 5만 원대의 다소 높은 금액이었지만 개인 사진 촬영이나 케어 서비스 등이
좋아 보였고 적은 인원으로 비교적 군중 속 외로움은 피할 수 있겠다 싶어 예약했다.
바르셀로나 도착해서도 투어 예약 날짜까지 며칠이 붕 떠서 일찍 일어나 산책할 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가보았다.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웅장한 건물. 엄청난 규모에 놀란 걸까 실제로 볼 수 있어서 감격한 거였을까,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우와.. 이걸 실제로 보다니!”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유작.
40년 넘도록 성당 건축에 힘을 쏟고 있던 어느 날, 성당 근처에서 교통사고를 당했고 당시 허름한 모습의 가우디를 보고 도와주는 이가 없어 뒤늦게나마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골든타임을 놓쳐 생을 마감했다는 슬픈 이야기.
1883년부터 지금까지 100년 넘게 지어지고 있으며 2026년에 완공 예정을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성당 주변에서 완공되면 꼭 다시 오자는 약속이 귓가에 들리곤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자세히 보면 각각 스토리를 가진 섬세한 조각상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세세하게 들여다볼수록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내부에 들어갔을 때 전율은 점점 더 커졌는데 아득히 높은 천장과 벽 전체적으로 트랜 카디스 기법으로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반짝이고 있었다.
햇빛도 잘 들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비치는 영롱한 빛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홀리 해지는 기분이었다.
대부분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예수상 앞에 모여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로 성당 내부는 가득 차 있었다.
나도 서양인 관광객이 사진을 부탁해서 원하는 요구대로 열심히 찍어주었는데, 나중에서야 날 찍어준 사진을 보니 웃음이 났다.
사람들이 서양인에겐 사진을 부탁하지 말라고 귀띔해준 이유가 이거였군.
다시 예수상 앞으로 가까이 가서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여기까지 오게 하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또 혼자 온 여행을 끝까지 잘 마치게 해달라고 덧붙였다.
며칠 뒤, 여행사 투어 날이 다가와 다들 아침 일찍 모였다.
그중 혼자 오신 남성분이 있었는데 오는 길에 음식물 테러를 당했다고 한다.
스페인 소매치기들의 흔한 수법으로, 아이스크림 같은 음식물을 관광객 옷에 쏟아 방심한 틈에 주머니 속 핸드폰이나 지갑을 훔쳐간다고.. 다행히 그 남성분은 괜찮다며 그 자리를 바로 빠져나와 잃어버린 물건은 없다고 했다. 하하 웃으며 티슈로 간단하게 닦고 다 함께 투어를 시작했다.
가우디가 처음 디자인 제작한 레이알 광장의 가로등부터 시작해, 가우디의 후원자로부터 의뢰받아 지은 구엘 저택으로 넘어갔다.
구엘은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척한 부자이며 가우디의 천재성을 알아본 가우디 인생 후원자라고도 불린다.
구엘에게는 재력을 과시하며 귀족, 재력가들과의 비즈니스를 수월하게 이끌만한 고급 저택이 필요했고
그에 맞게 저택은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움이 철철 넘치도록 지어졌다.
1800년대에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와 대리석으로 만든 세계 최초 마차 지하 주차장(?)이 가장 눈에 띄었다.
입구에서 내부는 당시 가장 비싸다던 흑 대리석을 전체적으로 싹 발랐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고급 대리석과 나무, 철제로 이루어진 초호화 저택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만 봐도 귀티가 철철 흘러, 분명 이 집에서 진행된 비즈니스는 100% 성공했을듯하다.
구엘이 나중에는 정계에서도 진출해 중추적인 인물로 꼽혔다는데 이 저택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옥상에는 깨진 타일들을 붙인 대표적인 나무 모양 굴뚝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소규모 여행사 투어 얘기로 돌아와 얘기하자면 가이드가 내부를 함께 동행하는 투어가 아닌,
관광 스폿 앞에서 아이패드로 내부 사진과 설명을 해준후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자세한 내부 관광은 따로 또 방문을 해야 해서 시간적 손해도 있었고, 가이드가 미리 보여준 사진이 오히려 직접 들어가 볼 때의 감동을 떨어뜨렸다. 게다가 관광객에게 핀잔을 주는 등 가이드 자격이 의심되어, 남은 오후 성당 가이드를 깔끔하게 포기했다.
다음엔 가족들과 더 큰 규모의 좋은 여행사를 알아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성당 앞 추로스 가게에 들어갔지만
나는 어이없는 여행사를 만난 덕에 넋이 나가 있었다.
가게를 나와 저만치 지하철 쪽으로 걸어갈 때쯤 꼬맹이가 달려와 스페인어를 하며 날 잡아끌었다.
뭐지, 나 계산 안 하고 왔나.. 내가 뭐 가져갔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추로스 가게로 돌아와 보니
여행 영상과 사진이 담긴 핸드폰과 삼각대를 통째로 두고 온 것이다.
헉, 너무 고마워 꼬마에게 추로스로 사례하려고 물어봤는데 추로스 집 아들이란다.
뭐라도 사줄걸.. 연신 고맙다고 인사만하고 돌아온게 아직까지도 후회가 된다.
잘생기고 착하기까지 한 추로스 집 꼬마. 덕분에 난 무사히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La Xurreria de Maria
Carrer de Provença, 449, 08025 Barcelona, 스페인
오후엔 가볍고 편안한 샌들을 신고 기분을 전환을 하러 시내에 나갔다.
초여름이 찾아오면서 바르셀로나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