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타인과 처음으로 고용 계약을 맺으면서 알게 된 건 사람들은 절대로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과 가깝다고 생각했다. 조직으로서의 목표는 물론, 정서적으로도 말이다. 회사의 캐시 플로우,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등 온갖 것들에 대해서 숨기거나 거짓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황당하기만 한 믿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이가 가깝고 멀고를 떠나서 모든 사람은 나와 다른 존재였다.
이전에는 내가 할 것만 잘 하면 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타인이 어떻게 해주길 바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 그런데 구멍가게라도 회사는 회사다보니 사장이 원하는 방향이 생기고, 그걸 이해하지 못하거나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 오해하는 사람 등 다양한 가능성이 생겼다. 회사 생활을 해 본 사람은 뭔 당연하고 뻔한 소리냐 싶겠지만 나에겐 모든 게 새롭고 어려웠다.
그래서 그 뒤에 뭐가 어찌됐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에게 괴벨스의 재능이 있었다면 근력학교를 나치처럼 만들었을 수도 있고, 혁명가 예수의 재능이 있었다면 세상에 대단한 이바지를 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재능 있는 리더가 아니었다. 사람이 어려운 게 아니라 내가 어려운 거였다.
서투르게 답답해하기도 했다가, 멍청하게 사람을 잃기도 했다가, 다 내려놓고 싶기도 했다가,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책임은 다 해보자는 마음이 됐다. 스스로에게 덜 어려운 사람이 되려면 그래야 하는 것 같다.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니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해보자, 인생의 재미 없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여보자, 이런 남들은 당연히 하던 것 말이다.
돌이켜보면 항상 뭔가를 시도하고 있었다. 하찮은 거라도.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안짱걸음을 걷는 내가 싫어서 억지로 11자로 걸으면서 걸음걸이를 바꿨다. 청량리에 살 때는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게 싫어서 죽어라 연습해서 그것도 바꿨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각자 미션은 다르지만 뭔가를 정해서 일정 시기 동안 해왔을 것이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다만 내 경우엔 이번엔 좀 성공적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라면 미션의 성패를 떠나서 결과에 좌절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겠지만, 나는 여러 사람들과 책임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결과도 좋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적당히 시도하다 도망치지 말고 끈질기게 해야 할텐데 나는 그게 좀 부족하다. 나중에는 이 '부족하다'를 '부족했다'고 고쳐쓸 수 있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