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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럴드형제 Apr 16. 2020

내가 만나 본 프랜차이즈 살롱 대표들 –1편-

전직 기자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에세이 12


기자로 살다보면 각계 유명 인사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들의 행보가 국내 경제 및 사회적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거니와 각 분야별 주요 정보로써 작용할 공산이 큰 이유에서다. 따라서 정치부 기자들은 정치인을, 경제부 기자들은 기업인을, 사회부 기자들은 검·경 관계자를, 문화부 기자들은 연예·문화인을 줄곧 본다. 


오늘 쓸 내용은 내가 언론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끝물에 이야기다. 나는 당시 문화부 소속 기자였으며, 사회부와 너무 다른 문화부의 분위기에 적응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 시절 우리 언론사 광고국 국장은 연예계와 패션계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연고로 헤어살롱 업계 대표들과도 꽤 왕래하던 상황이었다.


예컨대 한 연예 행사에 초청되는 사람들 중에는 패션업계와 살롱업계의 인사들이 많았던 편이고, 마찬가지로 패션, 살롱 행사에 초청되는 사람들 중에도 연예인과 모델들이 많았던 편이다. 일종의 문화적 콜라보가 비일비재했었다는 의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광고국 국장의 부탁으로 자타공인 국내 최고 프랜차이즈 살롱의 A대표와 만나게 된다. 국장의 지시가 아니라, 부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취재를 하러 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게 언론사 광고국 국장, 부장은 기자 출신이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에 현직 기자에게 편집국처럼 지시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은 취재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사업적 미팅이었다. 


사족이지만, 사실 광고국 국장은 평소 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기자로서가 아니라 광고국 팀장으로서 러브콜을 제안한 적이 있을 정도였고, 영업력이 바탕이 돼야 하는 광고국의 업무적 특성상 내 특유의 언변과 수완을 좋게 봐줬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기자 출신이 광고국으로 가면 아는 취재처가 많기 때문에 광고를 끌어올 수 있는 통로가 넓어져 유리한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나는 A대표를 만나기 위해 출발했다. 도착하자 서울 한 복판에 세워진 높고 세련된 사옥이 마치 이 살롱의 명성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로 걸어가는데 머릿속을 싹 스치고 지나가는 한 문장은 ‘돈 많이 벌었구나...’였다. 그만큼 고급스럽고 우아한 인테리어를 한 내부였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A대표의 비서로 보이는 무슨 과장에게 안내를 받은 후 대표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결재서류를 검토하던 A대표의 모습은 살롱 대표보다는 여느 기업들의 대표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 글은 기사가 아니라 내 사견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해당 살롱 대표의 실명은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날 발견하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며 목례하는 A대표의 첫인상은 딱 이 사옥의 인테리어처럼 우아하고 모던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살짝 반전이 있었다면 A대표는 단아한 인상과는 달리 굉장히 털털하고 활달한 말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A대표가 미용사 출신 기업인이라서 그런 것인지 뭔가 미팅이라기 보단 나를 살롱의 고객처럼 대한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가 아닌 좀 더 현장에서 쓰는 어휘와 말투를 보였고, 다만 현직 기자라는 타이틀을 미리 들어서인지 약간의 경계심도 느껴졌다.  




A대표는 본인의 자식들 얘기를 하면서 경계심을 한 꺼풀 내려놨던 것 같다. 재밌었던 것은 그 내용을 얼핏 들으면 자식들에 대한 훈계인데 자세히 들으면 결국 자식들에 대한 자랑이었다는 점이다. A대표는 겸손을 필두로 본심을 잘 녹이는 것 같았다.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앞에 꺼내는 것이 아니라, 우선 겸손을 보여주고 그 뒤에 진짜 본론을 꺼내는 방식이랄까.


예컨대, 국내 최고의 프랜차이즈 살롱이라는 평가는 과찬이고 더 노력해야 하며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외부 사람이 아닌 본사 직원들이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에 대해선 정말 뿌듯하고 감사하다 식의 어법이었다. 이는 A대표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의 대표들이 자주 사용하는 어법이다. 그리고 부모들이 자식을 자랑할 때도 자주 사용하는 어법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따르면 A대표는 자신 회사의 전국 프랜차이즈 살롱을 가족의 개념으로 여겼던 것 같고, 따라서 각 직원들은 자식처럼, 각 살롱은 가정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추론이 옳다면, 이런 생각에는 한 가지의 큰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가족적 경영’의 끈끈함과 열정으로 인해 직원들의 애사심이 높아질 것이고 이로 인한 성장과 성취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점은 ‘가족적 경영’이 실천 없이 구호로만 끝날시 그만큼 직원들의 실망과 회의감도 클 것이라는 점이다. ‘가족’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언론사를 떠난 이후 그 살롱에 대한 평판을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가족적 경영’이 과연 그 살롱에 어떤 결과로 창출됐을지는 훗날 시간이 대답해줄 일이다. A대표가 대단한 점은 한 명의 미용사로 시작해 수많은 미용사들이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롱 브랜드의 가치를 분명하게 높였다. 이 살롱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높게 평가될 수 있는 혁신을 일으켰다. 


A대표는 미용 기술이 터부시 되던 시절에 미용을 시작한 사람이기에 누구보다도 미용의 가치를 높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일정 부분 이상 확실히 이뤄냈다. 이는 모든 미용사는 물론, 특히 후배들에게 박수 받아 마땅하다. 선구자로서 길을 닦아줬기 때문이다.


다만 그 찬란한 성공의 이면에는 초심의 여부가 항상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가족적 경영’이라는 철학 아래 정말로 후배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대우하는지,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호의호식을 넘어 미용의 가치 자체를 높이기 위한 행보를 변함없이 걷고 있는지 등 성장만큼 책임이 뒤따른다는 의미다.




어쩌면 A대표가 이룬 성과 속에는 프랜차이즈 살롱의 빛과 어둠이 모두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실 외로운 위치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A대표와 그 프랜차이즈 살롱이 초심을 잃지 않고 대한민국 미용업계에 끊임없이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길 응원한다. 


A대표의 성공 신화가 계속해서 작고 큰 아름다운 사건들을 창출할 수 있다면 미용의 가치, 미용사의 삶의 질은 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힘을 가진 만큼 그 정반대의 길을 걷지 않길 희망한다.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미용의 가치, 미용사의 삶의 질은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심각하게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선·후배들, 언론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물론, 나는 이제 더이상 현직 기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를 직접 만나 본 사람으로서 현직 기자 시절 쓰던 표현 그대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초심을 잃지 않은 기업인에게는 존경과 성장이, 초심을 잃은 기업인에게는 비판과 추락이 기다리고 있다. 미용업계의 퇴행과 진보라는 갈림길에서 앞으로 A대표가 어떤 방향을 선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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