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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럴드형제 Mar 19. 2020

아이유와 미용사의 공통점

전직 기자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에세이 9



나는 기자 생활을 하던 당시, 가수 겸 배우 아이유를 실제로 만나본 적이 있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차갑지만 따뜻한’ 사람 같다는 역설적인 것이었다. 오늘 다루려는 주제가 ‘아이유, 그녀는 누구인가?’는 아니기 때문에 이 지면을 통해 자세히 적진 않겠으나, 내가 느낀 미용사와 아이유의 공통점에 대해 쓰고자 함으로 서두를 이렇게 시작해본다.


‘차갑지만 따뜻한’ 사람 같다는 아이유의 첫인상이 그대로 반영된 것 같은 드라마를 얼마 전 우연찮게 보게 됐다. 지난해 방송한 tvN ‘나의 아저씨’(극본 박해영, 연출 김원석)가 바로 그 작품. 이 드라마는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 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다.


극중에서 아이유는 어린 나이에 너무 처량한 것들을 겪은 ‘이지안’이라는 인물로 나오는데, 이 캐릭터가 바로 ‘차갑지만 따뜻하다’. 더 정확히는 마음속의 따뜻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삶의 풍파와 가혹한 차별, 사회의 편견 등으로 세상에 대한, 인간에 대한 냉소와 불신만이 남게 된 인물이다. 




그렇게 이지안(아이유 분)은 냉혹한 현실을 온몸으로 버티면서 거칠어졌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맥락에서 나는 내가 알고 지내는 미용사들 몇몇이 생각났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만나본 미용사들 대부분도 ‘차갑지만 따뜻한’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풀어보면, 겉으로는 차갑지만 알고 보면 속이 참 따뜻한 사람이란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그 당시 들었던 의문은 애초에 겉도 따뜻하고 속도 따뜻하면 될 텐데, 왜 저럴까? 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가 ‘자기 방어’에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는 무시 받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먼저 무시하고, 차별 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을 단절한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사람자체를 멀리 하게 된 것이다. 심리학에선 이런 태도를 ‘방어 기제’라고 한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미용사들 역시 서비스직이란 특성상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사람’에 많이 지쳐있던 것은 아닐까.




물론, 모든 미용사가 ‘차갑지만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한번쯤은 미용사라는 직업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을 만나봤을 것이고, 그럼에도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 직업이기에 자존감이 무너지는 경험도 여럿 있어봤을 것이다. 미용을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와, 막막하고 힘든 현실에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 고단한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자기 방어’가 생겨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본인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받은 상처들 때문에 차가워진 것처럼. 그러므로 ‘나의 아저씨’가 다루려고 했던 진짜 주제의식은 사실 ‘자존감’이었을 것이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더 정확히는 자신의 삶을 격려하고 칭찬하며 사랑하는 것이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상처를 받지 않는다. 마음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고, 감정적인 경우가 많다. 마음적인 여유가 부족한 이유에서다. 


‘나의 아저씨’에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 마음이 좋으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예뻐 보이고, 내 마음이 좋지 못하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미워 보인다고. 자존감은 그렇게 스스로와 주의에 큰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어쩌면 미용사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일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매출’이 아니라 ‘자존감’일 수도 있다. 미용을 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것, 미용에 인생을 걸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 말이다.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는 보잘 것 없는 파견직 사원이었다. 찬란한 미래는 사치였고,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살아갈 뿐이었다. 하지만 아저씨 삼 형제를 알아가면서 본인이 좋은 사람, 꽤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낮은 ‘자존감’이 서서히 높은 ‘자존감’으로 옮겨가게 됐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삶이 바뀌었다. 



사람들과 조금씩 어울릴 수 있게 됐고, 마음을 열면서 점차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가 배우로서 연기력이 가장 빛났다고 생각한다. 높은 몰입을 이끌어냈고, 이전 배역들이 겹쳐지거나 연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당신이 미용사라면, 당신의 직업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겠지만 어쨌든 미용은 당신이 선택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당신의 직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소중하게 생각해줄 수 없다. 사람은 스스로에게 당당할 때 가장 빛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당신은 좋은 미용사, 꽤 괜찮은 미용사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분명 미용사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있는 미용사분들도 많이 있다. 그런 분들과 만날 때면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정도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서 느껴졌던 것은 미용에 대한 열정, 실력, 그리고 높은 자존감이었다. 그래서 이 3박자가 미용사로서 성공할 수 있는 좋은 자양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열정은 실력을 키울 것이고, 실력은 매출을 높일 것이다. 그리고 자존감은 미용을 오래하도록, 사랑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가 점점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더 멋지고 더 따뜻한 사람이 됐던 것처럼 말이다. 




최근 우리 회사 마케팅팀에서 ‘성숙한 미용인이 되는 방법 30’이라는 내용으로 콘텐츠를 올린 적 있다. 미용을 하면서 지켜나가면 좋을 마음가짐에 대한 잠언이 담겨 있었다. 업로드 후 반응은 뜨거웠다. 이 콘텐츠를 만든 사람도 미용사 출신이고, 이 콘텐츠에 호응한 사람도 미용사들이었다. 나는 여기에서 ‘자존감’의 중요성을 읽었다. 


아마도 이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동기였을 게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아이유와 미용사의 공통점은 첫인상이다. ‘차갑지만 따뜻한’ 그 느낌이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가 자존감을 높이면서 세상을 보다 더 잘 살아가게 됐듯이 미용사들도 지금보다 더 높은 자존감을 되찾아서 더 나은 미용 생활을 할 수 있길 희망한다. 물론,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스스로가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걸 잊지 않으면 된다. 그 따뜻함이 다른 사람과의 따뜻함과 만나 서로의 자존감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차갑지만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따뜻함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덜 지치고 덜 스트레스 받는 삶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차가움을 녹이는 건 따뜻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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