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기자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에세이 19
“미용 왜 하세요?”
한 선배 미용사가 후배 미용사에게 물었다. 후배 미용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필자는 당연히 “돈 많이 벌려고요.” 같은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얼마 뒤 후배 미용사는 대답했다.
“제 꿈이니까요”
필자는 저 얘기를 듣던 순간, ‘꿈’이라는 단어 자체에 엄청난 생소함을 느꼈다. 고교시절 이후 거의 처음 듣는 단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을까? 나는 지금 그 꿈을 이뤘을까?
실제로 미용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미용사마다 다 다를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 적성의 문제, 소질의 문제 등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어서 미용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꿈’이라는 대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미용이 왜 꿈이에요?”
필자는 조심스레 물었고, 그 후배 미용사는 또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제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필자는 이 대답을 듣고 우문현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고 있기 때문에 꿈이라는 대답. 원래의 꿈, 미래의 꿈이 아닌 현재의 꿈.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사랑. 그 사람이 참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은 어쩌면 이렇게 자신감과 애정이 드러나는 때인 것 같다.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겪어 본 미용은 결코 호락호락한 분야가 아니다. 실력만 있다고 성공할 수 있는 직업도 아니고, 수완만 있다고 성공할 수 있는 업종도 아니다. 여러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고, 실력과 수완은 물론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직종이다.
그러나 한 미용사의 “제 꿈이니까요.”라는 소신은 문득 미용으로 성공할 수 있는 모든 모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기 때문에 실력을 쌓고, 꿈이기 때문에 수완을 늘려나가며, 꿈이기 때문에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집념.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항상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필자가 고교 시절 알게 됐던 체 게바라의 명언이다. 현실주의자와 꿈은 대척점처럼 상반된 단어 같지만 체 게바라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현실주의자로 살되 가슴 속에 항상 불가능한 꿈을 가지고 산다면 그 현실이 언젠가 꿈이 되지 않겠느냐는 혜안 아니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미용사들은 타인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이 질문을 받고 있을 것이다.
“미용 왜 하세요?”
이 질문의 답이 불투명해서 미용을 그만 둔 사람도, 이 질문의 답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지겨운 사람도,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미용을 하는 사람도 모두 미용사였거나 미용사다.
“지금 제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어떤 이유로 미용을 하고 있든 필자는 저 대답이 언제나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당신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이유이자 가장 멋진 대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 보람돼서 미용을 하든, 돈을 왕창 벌 수 있어서 미용을 하든, 적성에 가장 맞는 일이라서 미용을 하든, 어떤 이유여도 상관없이 지금 당신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할 때도 있다.
필자가 그동안 만나온 성공하는 사람들, 오래가는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면 그 현실에 대한 불평과 불만보다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 애정의 힘으로 결국은 개척하고 이뤄내는 것 같다.
이런 경우가 먼 이야기 뿐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 이유는 “지금 당신이 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꿈은 지금 여기, 현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