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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l 24. 2021

오늘도 엄마 마음을 먼저들여다봅니다

아이를 이해할 수 없을 때 내 마음을 먼저들여다보기로했다

"연우야~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야~ 와서 밥 먹자!"

"아~ 왜~ 나 이거 만들고 싶은데! 이거 잘 안돼서 속상해~ 엄마~"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밥 먹으러 오라는데 왜 짜증이야?'


아이의 짜증에 울컥 화가 났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밥 먹으러 오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짜증을 낼 일인가 싶었다. 화가 나서 아이의 밥그릇을 휙 치워버렸다. 놀다 말고 밥 먹으러 오라는 것이 뭐가 그렇게 힘든 일인지 그 일이 있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부부가 모두 방학을 했지만 남편은 곧 출간될 책의 초고를 마무리해야 하고, 나는 1정 연수와 보고서 작성으로 방학에도 쉴 틈이 없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하원 시키기로 하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곧 점심때가 되었고 오전 11시 30분 즈음, 점심에 무얼 먹을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점심에 뭐 먹을까?"

"글쎄, 뭐 먹고 싶어?"

"나, 기프티콘 있는데 햄버거 먹을까?"

"그래, 좋아."

"그럼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사람이 나가서 사 오기로 하자."

"아..., 너무 더운데"


이렇게 이야기가 흐지부지 끝났는데, 급히 서류를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인쇄를 해서 스캔한 다음 보내야 하는데 프린터기가 없어서 어찌해야 하나 난감했다. 잔머리를 조금 굴려서 내 글씨를 사진 찍어 한글에 이미지를 넣어 문서를 작성해 보기로 했다. 생각처럼 잘 안 돼서 이렇게 저렇게 잔머리를 굴려가며 급히 문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남편이 옆에 와서 한 마디를 했다.


"그래서, 우리 점심에 뭐 먹을까? 햄버거는 하나만 사고 나는 냉면 사 와서 먹을래."

"그래, 그렇게 하자." 말은 이렇게 하면서 손은 계속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거 그렇게 계속해야 되는 거야? 이제 좀, 그만 하면 안 돼?"

"나 이거 서류 빨리 보내달라고 해서 작성하고 있는 거야. 아직 12시도 안 됐잖아. 12시까지만 좀 기다려주면 안 돼?"


남편은 배가 많이 고팠는지 툴툴거리며 주방에 가서 달그락달그락 무언가를 꺼내서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양조식초 어디 있어?' , '설탕은 어디 있어?' , '아, 뭐가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요리도 못 하겠잖아. 와서 나 좀 도와주면 안 돼?' 하면서 계속 나를 찾았다.


'아니, 아직 12시도 안 됐구먼, 왜 이렇게 나를 귀찮게 하는 거야? 배고프면 뭐라도 꺼내서 잠깐 먹으면 되지!'

이 밖으로 나올 뻔한 말을 꿀꺽 삼키며 "잠깐만~ 이제 거의 다 했어!" 짜증스럽게 한 마디를 뱉었다. 울컥 올라오는 짜증에 문득 익숙한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


아, 연우가 왜 그렇게 짜증 내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 그 마음을 완전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나처럼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그 행동을 중간에 끊는 것이 '나를 방해한다'라고 느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짜증을 아이도 오롯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제야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밥 먹으러 오라고 할 때마다 짜증 내는 아이를 보면서 '누굴 닮아서 저러는 거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머나 누구도 아닌 날 닮아서 그랬던 것이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를 이 깨달음의 순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아..., 그렇다면 나는 남편이 어떻게 하기를 바랐을까? 문서 작성을 고민하는 내 곁에서 '어떤 게 잘 안돼? 뭐가 어려워?'라고 물어보면서 같이 서류 작업을 끝낼 수 있다면 참 좋았겠다. 그렇게 마치고 오붓하게 뜨거운 여름 태양 따위는 아랑곳 않고 손을 꼭 잡고는 햄버거 가게에 가서 한 손에는 주문한 햄버거를 사고, 한 손에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들고 왔으면 좋았겠다. 뜨거운 날씨에 줄줄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연신 핥아가며 먹다가 집에 와서는 와구와구 햄버거를 먹으며 아이들이 있을 때는 마음껏 먹지 못 했던 것 들을 야무지게 먹었으면 좋았겠다.


그렇다면 아이는 무엇을 바랐을까?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해 봐도 생각처럼 잘 만들어지지 않으니 누군가 와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겠다. 조금만 더 하면 완성할 수 있는데 갑자기 그만하고 밥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도와주지는 않고, 왜 이렇게 시키기만 하는 거야, 나를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겠다.


그러면 이제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에게 밥 먹자고 얘기하기 전, 아이 곁으로 다가가야겠다. 밥이 식기 전에 빨리 와서 먹었으면 좋겠는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꼼지락 거리며 무언가를 하고 있는 아이 곁을 가만히 지켜줘야겠다. 끙끙거리면서 짜증을 내려고 할 때면, '뭐가 잘 안돼?' 다정하게 물으며 도와줘야겠다. 완성된 작품을 한껏 상기된 모습으로 자랑하는 아이의 말을 양껏 들어줘야겠다. 담뿍 아이의 말을 들어준 다음, '이렇게 멋진 걸 만드느라 얼마나 배고팠을까? 우리 얼른 맛있는 밥 먹으러 갈까?'하고 말해야겠다.




연우는 특히 행동 전환하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가장 많이 시도했던 방법은 미리 안내하는 것이었다. 'OO아~ 우리 10분 있다가 밥 먹을 거야!' 그런데 아이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10분이 얼마나 되는지 잘 상상하지 못했다. 아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진행 중 인지, 끝났는지가 중요했다. 10분은 엄마 머리에만 있는 숫자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엄마가 나를 부르고, 무언가 행동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아이가 레고 이상으로 흥미를 느끼는 것이 별로 없었다. 밥 먹기도 그랬고, 양치하는 것도, 잠을 자기 위해 침대로 가는 일 모두 아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다 멈추고 '해야만' 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 전에는 아이와 충분히 함께 예열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아이에게 들이는 시간이나 노력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올 것이고, 언젠가는 예열의 시간이 없어도 아이가 스스로 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어쩌면, "엄마~! 식사하세요!" 하며 나를 부르는 말에 애정 어린 투정으로 "엄마 할거 아직 다 못 했는데 왜~" 괜히 툴툴거리며 식탁으로 갈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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