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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n 18. 2023

일관성 있는 양육태도를 보이려면 '이걸' 만들어 보자

#가르치는용기 #부모의기준 



“엄마! 내가 빨래통에 옷 넣어둔다고 했지! 빨리 옷 다시 가져다 놔!”

(이 꽉 깨물고) 은수가 빨래를 가져다 두지 못 해서 화가 났구나.”

“응! 그러니까 빨리 옷 다시 가져다 놔! 내가 할 거야!”

(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그래? 그러면 은수가 다시 가져다 놔 봐.”

“아니! 여기 말고! 아까 있었던 자리에 똑같이 놔야지!”

(주먹을 꼭 쥐면서) 그래. 여기에 두면 되겠지?”

“아니잖아! 여기 있었던 거 아니야!”

(결국, 버럭) 은수야! 아까 이렇게 있었잖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빨래통에 넣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해!”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 어떻게든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받아주고 받아주고 받아주다가 엄마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차분해지지 않거나, 부모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으면 끝내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만약, 그날 힘든 하루를 보냈다면 더욱더 쉽게 짜증을 냈다. 이런 식으로 받아주다 끝내 버럭 해버리고 나면 스스로 ‘이것도 참지 못하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양육에서 ‘일관성’이 그렇게 중요하다던데 ‘일관성’의 ‘일’ 자에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난 다음에는 꼭 일기를 썼다. 이날도, 일기장 빼곡하게 속상한 마음을 적고 난 다음 우연히 예전에 썼던 일기를 다시 읽게 되었다. ‘응? 이때도 이것 때문이었어?’ 매번 화를 내는 과정이 비슷했다. 아이의 특정 행동이 나의 감정 스위치를 건드렸고, 처음에는 어떻게 참아보다가 나중에는 결국 폭발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특히 힘들어했던 아이의 행동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투정, 짜증 부리고 소리 지르는 행동’이었다. 이런 순간들만큼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주는 것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다음에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용기’가 필요했다.      


아이에게 가르치는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고 바라는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자꾸만 화를 내게 되는 아이의 행동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기준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남편과 합의된 기준이어야 했다. 같은 행동을 보고 엄마는 괜찮다고 하는데, 아빠는 훈육하게 된다면 이 또한 일관성 있는 양육 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동일한 기준을 합의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우리 가족만의 헌법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우리 가족이 이것만은 꼭 지켜줬으면 하는 것을 이야기 나눠 보았다.     




“나는 은수가 울면서 짜증 낼 때 조금 힘들어. 그래서 울지 않고 말했으면 좋겠어.”

“그래? 그러면 연우 자리에 '울지 않고 짜증 내지 말고 원하는 것 말하기' 써 보자. 은수는?”

“나는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 들려줄 때 떠들면 짜증이 나.”

“그러면 이렇게 써 보자. ‘이야기 들을 때 조용히 하기’”

“엄마는?”

“엄마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너희가 먼저 다 해주어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음...., 그래!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두기!’ 이걸로 해야겠다. 엄마는 힘들게 청소하고 난 다음에 금방 집이 어질러지면 속상하더라고.”

“아빠는?”

“아빠는..., ‘자기 일은 스스로 하기’로 해 보면 좋겠어.”

“그러면 우리 이거 꾸며서 냉장고에 딱 붙여두자!”     




이런 가족 헌법을 만들었다고 바로 아이들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변한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다. 아이의 투정과 짜증을 받아주다 끝내 폭발하기보다 ‘우리가 같이 정한 약속’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글자는 정확한 기준을 제시했고, 정확한 기준을 바탕으로 가르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엄마! 오빠가 나한테 ‘못생겼어!’라고 놀렸어!”

“아니야~ 은수가 먼저 나한테 ‘새침데기’라고 놀렸단 말이야!”

“자, 우리 가족헌법에서 짜증 내지 말고 ‘원하는 것 말하기’로 했지. 은수가 오빠한테 원하는 건 뭐야?”

“오빠가 나한테 ‘못생겼어!’라고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나 나한테 ‘새침데기’라고 놀리지 마!”

“잠깐, 연우야. 우리 가족헌법에서 짜증 내지 말고 ‘원하는 것 말하기’로 했잖아. 연우가 은수한테 원하는 건 뭐야?”

“은수가 ‘새침데기’라고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그러면 서로 약속해 주자. 은수는 오빠 놀리지 않기로, 연우도 은수 놀리지 않기로. 새끼손가락 걸어보자.”     




같이 정한 약속과 기준이 뚜렷했기 때문에 두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분 좋으면 아이가 조를 때 간식을 사 주고, ‘이렇게 원할 때마다 간식을 사 주면 기다리는 연습을 할 수 없잖아!’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날에는 간식을 사 주지 않았던 비일관적인 행동에서, “우리 화요일, 목요일은 우리 같이 마트에 가서 장 보는 날이지? 이때 연우랑 은수도 먹고 싶은 간식도 같이 사는 거야.”라고 말하며 일관성 있는 양육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 가족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분에 따라 비일관적 양육 태도로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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