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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Nov 11. 2023

괴인

우리 모두 시시하잖아요

아쉽게도 천박사 퇴마연구소 gv는 갈 수 없었다.


대신 어떤 고마운 분께서 올려주신 영상 덕분에, 박찬욱 감독님과 김성식 감독님, 그리고 강동원 배우님의 생각과 의견, 영화에 숨겨진 장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뒷얘기를 유튜브를 통해서나마 들을 수 있었다.


그 후로 gv에 관심이 생겼다.


(gv : 영화 상영시 영화 관계자들이 직접 방문하여 영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관객들과 질의응답도 주고받는 무대를 말한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나가는 무대인사랑은 좀 다른 개념이다. 영미권에서는 쓰지 않는 콩글리시다.)


사실 오래전, 신과 함께 2가 개봉했을 때 부천에서 열린 애니메이션 축제에서 주호민 작가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그때는 주호민 작가의 팬이었다.) 영화를 예매했는데 그게 알고 보니 gv행사였다. 재미는 있었지만, 그 후로는 딱히 gv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 SNS를 구경하는데 영화 '괴인' gv를 홍보하는 글을 보았다.


gv는 영화 관계자들만 초대받아서 가는, 뭔가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졌는데 예매할 수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gv는 어떻게 진행되나 해서 바로 티켓을 구매했다.


내가 간 '괴인'gv에는 영화를 만든 이정홍 감독님을 비롯하여, 연상호 감독님, 장성란 영화칼럼니스트가 왔다.


영화 제목이며, gv에 연상호 감독님이 참석한다니.. 그러다 보니 이 영화가 솔직히 '지옥' 같은 좀 무섭거나, 괴팍하거나, 두렵거나, 아니면 괴짜 거나...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배경과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니었다. 하지만 평범해서 오히려 더 와닿는 그런, 아이러니함이 있는 영화였다.




1. 우리 모두 '괴인'이다.


주인공인 '기홍'은 인테리어 업자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직업과, 하루 일당 40만 원이라는 꽤 돈이 될 법한 일을 하는 듯 하지만, 사실 그는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말이 인테리어 업자지, 막일을 뛰는 것과 다를 바 없고, 매일 일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꾸준히 돈을 벌기도 어렵다.


비루할 때는 누구보다 비루해 보이지만, 요즘 우리 세대가 누리는 와인이나 퓨전 요리가 가득한 멋진 레스토랑, 니체의 책과 캠핑 용품으로 잘 꾸며진 곳에서는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다 그런 것들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보면서 사실 뜨끔했다. 비록 기홍은 남자지만, 나 또한 그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웹소설을 쓰는 건 분명 멋지고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웹소설을 쓸 때는 가장 편한 복장으로 화장도 안 하고, 안경을 쓰고 작업한다. 술이 마시고 싶을 때는 마트에서 소주와 국산 맥주를 산다.


그러다가 사람들을 만날 때는 최대한 꾸미고 나간다. 그리고 가격이 어느 정도 있는 와인을 마신다. 사실 그게 지금까지 허세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찔리는 걸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허세를 부리며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2. 사람은 누구를 대하느냐에 따라 언제나 변한다.


주인공 '기홍'은 남자다.

남자들은 남자들만의 세계가 있지 않던가.


사실 여자들끼리 관계는 수평적 관계가 많다. 반면, 남자들 사회는 친구 사이라고 해도 수직 구조라고 한다. 타고난 본능이 그러하다는 걸 얼마 전에 남녀의 차이에 대해 다룬 영상을 보다가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기홍은 자신과 같이 일하는 친구는 좀 무시하고, 제 밑에 둬야 하는 전기 기사에게도 버럭 화를 내거나, 반말을 하며 기를 누르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성질이 저렇게 더러운 사람인가. 싶다가도, 임산부에게 배려를 한다던지, 마음에 드는 여자한테는 세상 스위트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부가티를 타는, 집주인 부부의 남편에게는 형님이라고 하며, 그의 말을 따르고 살짝 조아리는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참, 인간적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도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인가 생각해 보았다. 나도 누구를 대하느냐에 따라 많이 바뀐다는 걸 깨달았다.


누구에게든 여러 개의 가면이 있다.


3. 관계는 말 한마디에도 무너진다.


영화 속에서 '기홍'을 중심으로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gv에서 유심하게 다루었던 것이 바로 '관계란 아주 사소한 것에도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gv 덕분에 영화 속 장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영원히 단단하고, 끊어지지 않을 관계는 없다. 심지어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피로 얽힌 가족이 다른 관계에 비해서 관계가 탄탄한 건 맞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하물며, 친구 관계는 더 얄팍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본 사이는 더더욱 그러하고. 그런 대담을 들으며, 작년에 수없이 파탄난 나의 인간관계가 떠올랐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하고, 무의미한 행동 때문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던 것. 나의 인간관계도 별 다를 게 없었다.


4. 찌질이의 허세


'기홍'은 분위기 좋은 술집에서 합석한 여자에게 자신의 집을 보여주며 '집에 같이 갈래요?'라고 플러팅을 한다. 당연히, 여자는 그 말에 어이없어하며 자신의 친구에게 '같이 가자는데?'라고 말해준다.


gv에서 연상호 감독님이 '우리 모두 이상하잖아요.'가 아니라 '우리 모두 시시하잖아요.'로 타이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감했다.


그 부분을 볼 때, 나는 남자가 참 찌질하고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가진 허세와 여자가 받아들이는 멋짐의 포인트가 완전히 어긋난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님의 말에 내가 왜 고개를 끄덕였는지 알 거 같았다.


5. 오히려 안 볼 사람이 편하다.


이 영화의 긴장감은 '기홍'의 차 위로 떨어진 '누군가'를 찾는 데서 비롯된다. 처음에는 당연히 비행청소년에 남자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연 많은 여자였다. 기홍은 그 여자를 찾아내고, 차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점점 여자가 가진 스토리를 알아가게 된다.


차 수리 비용을 받는 대신, 기홍은 여자에게 밥을 사라고 한다. 그리고 여자는 고기를 비롯한 먹거리를 가지고 기홍의 집으로 온다. 기홍, 집주인 내외, 그리고 여자. 넷이서 만난 자리. 그곳에서 여자는 다들 처음 본다.


사람은 신기하게도 다시 안 볼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비밀 얘기를 털어놓을 때도 있다. 그러면 마치, 대나무숲에 임금님의 비밀을 외치는 것처럼 홀가분함을 느낀다.


그걸 보면서, 나도 오히려 한 번 보고 말 사람한테 오히려 내 속에 있는 진짜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만 봤다면, 이렇게까지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을 듯싶다.


gv를 통해서 영화의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감독님의 생각과 영화 뒷얘기까지 듣고, 다른 사람들의 질의응답을 들으며 생각이 조금은 더 넓어지는 기분이다. 더불어, 캐릭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겠다는 교훈(?) 도 얻을 수 있었다.


참,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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