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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khokwon Dec 06. 2019

동물병원 에세이, 오키나와 여자

같이 사는 이야기

정신없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안개가 막 걷힌 해변가를 따라 가벼운 조깅을 하다보니 생각보다 너무 먼곳까지 와버렸다. 돌아와서 샤워를 하다보니 출근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황급히 준비를 하고 동물병원에 도착하니 9시 5분이었다. 5분 지각한 셈인데 평소에 항상 10분씩 일찍오니 하루 정도는 괜찮아라며 스스로를 합리화 했다. 주차장 제일 가까운 자리가 비어 있어 급히 차를 박아넣은 뒤 종종걸음으로 정문으로 향했다. 병원에는 앞문 (정문), 그리고 뒷문 2개가 있는데 난 병원에 출근할 때 주로 뒷문을 이용하고는 했다. 왜냐하면 정문으로 들어가면 왠지 일하러 온 직원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서였다. 또 다른 이유는 직원들과 진료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는 로비로 들어가면 일일히 "How are you"로 시작하는 반가운 인사를 건내면서 짧은 대화를 나누는 미국식 문화 “스몰 토크” 가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둘다 찌질한 이유라는 것을 인정한다. 


 


병원 문턱을 넘자마자 주위를 살펴보니 손님은 1명뿐이었다. 아시아인 여자 한명이 작고 귀여운 흰말티즈를 품에 안고 병원 로비에 앉아있었다. 동양인이 오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진료실로 들어가면서 빼꼼 얼굴을 살펴봤다. 야자수가 그려져 있는 노랑 반팔티가 잘 어울리는 까만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이목구비와 화장법을 보니 한국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인상깊었던 점은 얼굴을 언뜻봤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우울해보였다. 그 사람을 뒤로한 채 처치실로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등에 그대로 맨 채로 병원 컴퓨터 앞에 다가섰다. 고물 컴퓨터라 전날 꺼놓으면 다시 켜지는데 하루종일 걸리기 때문에 항상 절전모드로 해놓는것이 모든 직원간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마우스를 휘휘 저어서 절전 모드로 잠들어있는 컴퓨터를 깨웠다. 화면이 켜지자마자 오전 예약 일정을 확인했다. 예약은 가득차 있었지만 동양인으로 불릴만한이름은 없었다. 음, 동양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건 내 편견인가? 혹은 그냥 예약없이 그냥 워크인 (Walk-in)으로 왔을수도 있다. 그렇다면 많이 기다려될 것 같은데.


 


더 신경쓸 겨를없이 첫번째 환자부터 진료를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2시간이 지나가고 11시 정도가 되니 오전일정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 다음 환자 차트를 받아서 펼쳤더니 전형적인 일본인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방안에 들어가니 말티즈를 꼭 쥔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건냈다. 영어 억양도 완벽한 일본인의 그것이었다. 첫눈에 반려견을 보았을 때는 아파 보이지는 않았고 주인 품에 얌전히 안겨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답을 하려다 보니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일본어로 간단한 인삿말을 건냈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을 살다보면 간단한 몇가지 인사정도는 다른나라 언어로 알게 된다. 그런데 여자는 깜짝 놀라면서 갑자기 속사포처럼 일본말을 쏟아냈다. 아마도 ‘일본사람이셨어요?? 몰라봤어요 어쩌고 저쩌고’ 그런 내용이었을 것 같은데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했었는데 공교육의 쓸모없음에 짧게 한탄하면서 괜히 나댔다는 생각을 했다. 미안한데 사실 일본어 못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영어로 다시 의사소통을 시작했다.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다이죠브데스 라는 말을 연발했다. 나 일본말 못한다고 했는데...



 

반려견의 이름은 포치였고 막 4살이 된 암컷 말티즈였다. 일본 사람답게 미용부터 건강관리까지 세심하고 꼼꼼하게 보살핀 것 같았다.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에 비해 미국사람들은 터프(?)하게 반려견을 키우는 경향이 있어서 진료실에 들어오면 개 특유의 냄새가 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개 고유의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포치에게서는 향긋한 허브향 샴푸 냄새가 났다. 왜 병원에 왔냐고 물어보았더니 기다린 2 시간이 허무할 정도로 이유가 간단했다. 포치와 같이 미국에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검역을 통과하기 위해 광견병 항체 검사를 의뢰하러 온 것이었다. 끔찍한 사실은 미국은 광견병 항체 검사에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이 광활한 대륙에 광견병 항체검사를 하는 기관이 캔사스 주립 대학교 한군데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에서 채취한 혈액 샘플이 한 장소로 몰리기 때문에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보통 기약없이 기다리다가 내가 언제 보냈나 잊어버릴 즈음 (2~4달 뒤)에 광견병 확인 서류가 도착한다. 혹시나 항체가 안 생겨있으면 정말 난감하다. 백신을 맞고 다시 혈액을 보내서 검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다른 나라로 가기 전에는 미리미리 광견병 항체 검사를 신청해야 한다.




 

몇가지 당부사항과 절차에 대해서 고지를 하고 혈액을 채취하기 위해 포치를 건너 받으려고 하는 찰나, 보호자가 갑자기 나에게 하나 신신당부를 했다.


“여기서 검사받았다는 사실을 절대로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검사 결과도 병원주소로 받는 걸로 부탁드릴께요. 제가 오늘 드린 번호로만 꼭 연락주시고 혹시 제가 전화를 안받아도 다시 연락 부탁드립니다”


미국 동물병원은 업무가 철저하게 분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수의사는 진료만 하고 보호자와 예약일정, 연락처, 및 비용 이야기는 일절 상담실에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번이나 나에게 신신당부하면서 대답을 부탁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냥 알았다고 대답했다. 금새 혈액을 뽑아서 냉장고에 넣은 뒤 포치를 돌려주었다. 그렇게 기억속에서 그녀는 사라지는 듯했다.





 

그 후 대략 2달 반 정도가 지났다. 그 날도 토요일었던 같다.  정신없이 진료를 보고 있다가 다음 차트를 보니 익숙한 일본인의 이름이 보였다. 그제서야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 이제야 광견병 서류가 도착한건가, 그냥 카운터에서 받아가면 되는데 왜 진료를 받으러 온거지?라는 생각으로 상담실을 들어갔다. 포치는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얌전히 반려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 여자의 표정도 그때보다는 한결 가벼워보여서 나도 긴장이 풀린 상태로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담이 시작되고 입에서 나온 말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여자는 미군과 결혼한 일본사람이었다. 얼마전부터 남편과 이혼 소송중이었고 반려견에 대한 소유권을 서로가 주장하고 있었다. 이 날 병원을 찾은 이유는 남편과 본인중 누가 반려동물과 더 많이 시간을 보냈으며, 더 기여도가 높은지에 대한 증거서류를 작성해서 재판에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번 광견병 항체 검사를 하러 왔던 이유도 그전부터 일본으로 돌아갈 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포치를 데리고 가기 위한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 병원에 등록되어 있는 보호자 이름이 자기이고, 항상 포치를 데리고 병원에 올때마다 남편없이 혼자서 데리고 왔다는 사실을 증명받아야 된다는 말을 했다. 다른이의 이별에 대해 자세히 캐물을 수는 없었지만 현재 상황에 대해 조금만 더 설명을 해줄 수 있다면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일본 여자는 오키나와에서 태어나서 쭉 자랐던 토박이였다. 야먀구치현에서 대학교를 4년 다닌 것이 오키나와를 떠난 전부였고. 졸업 후에 오키나와에 돌아와서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일을 하고 있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했다. 


사실 이런 미군 남자-일본여자 커플은 동물병원이 있는 산페드로 (San Pedro)지역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군함 정박지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에 어업으로 유명했던 산페드로 바로 옆에는 롱비치 (Long beach)라는 도시가 있다. 롱비치는 대도시인 로스 앤젤레스의 주요항구 역할을 분담하는 있는 미국에서 물동량이 가장 큰 항구중 하나이다. 부산이나 인천의 항만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렇다 보니 민항선 뿐만 아니라 군함들도 많이 정박을 한다. 지정학적 특성상 롱비치에 오는 군함들 중 많은 수는 동북아시아에서 활동한다. 그런데 일본 오키나와에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군 해병대 기지인 후텐마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키나와로 파견을 나가는 군인들의 숫자가 많다. 그러다보니 일본사람들과 만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그렇게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면 보통 군인 배우자를 따라서 미국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인의 다음 발령지가 다시 오키나와가 되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군인이란 직업특성상 남자가 많다보니 남편을 따라서 오는 일본여자가 자연스레 많다.




이렇게 파견을 나갔다가 돌아온 미 해병대 군인들이 다음 항해전까지 일정 기간동안 묵을 장소가 필요한데 미 해병대는 산 페드로에는 미 해병가족들이 살 수 있는 타운 하우스들을 지어서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었다. 대부분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한명이 일을 나가면, 남은 한명은집에 홀로 남아 있는 시간이 길다. 그래서 많은 군인커플은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 결혼을 함과 동시에 반려동물을 입양한다. 여자도 같은 이유로 미국에 오자마자 말티즈 브리더를 찾아서 포치를 분양받아 왔다. 남편의 고향친구가 말티즈 브리더였다고 했던 것 같다.





문제는 여자의 성격이 미국 생활과 도무지 맞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결혼전에는 알 수 없었던 문제였다. 남편 하나 믿고 미국을 따라온지 3년 정도가 되었지만 캘리포니아에 적응하지 못한채 고향과 가족에 대한 향수병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도 적었고 집에 올 때마다 오키나와가 그립다, 같이 가고 싶다며 말을 해도 남편은 무심하게 넘기기 일수 였다. 남편 입장도 이해할 수 있긴 했다. 이민을 오는건 미국으로 오기 전 서로 동의를 했던 부분이고 자기 혼자 외벌이를 하는데 직업을 버리고 무작정 오키나와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실을 헤아려 주기에는 여자가 심적으로 너무 지쳐버린 것이다. 그나마 미국 본토내에서 근무하면 부부가 같이 옮기면서 다닐 수 있지만 오키나와에 머물렀던 것처럼 다시 해외로 파견을 나가게 되면 부부가 6개월 이상씩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런 남편의 빈자리와 무심함이 결정적으로 여자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었다. 가족과 친구도 없이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반려견과 함께 배우자만 기다리는 사람의 외로움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못 써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끝까지 미국남자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 내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병원을 방문했던 사람은 대부분 여자 보호자라고 병원 직원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 또한 남자는 또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군인이었고 여자보다 세심하게 관심을 주기 힘들 것 같았다. 병원식구들은 포치가 오키나와에 가면 더 행복한 삶을 보낼 수 있을리라는 의견에 모두 동의했다. 결론을 내리고 여자가 작성해온 서류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본 뒤에 서명란에 내 이름을 적었다. 지금까지 했던 사인중에서 손에꼽을 정도로 무거운 서명이었다. 그 이후로 부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법원에서 내용 확인차 연락이 올 줄 알았지만 오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혼소송을 무사히 마치고 각자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래본다.



 


이렇게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면 반려동물의 소유권에 대한 다툼도 일어나게 된다. 한국에서 반려견 문화가 제대로 시작된지 채 20년이 되지 않았기에 이런 경우가 적었지만 이제부터 비슷한 문제들이 점차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 얼마전 한 유명한 연예인 부부도 이혼 과정중 고양이에 대한 소유권 문제로 인해 SNS을 통해 격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이혼율이 적다. 왜냐하면 결혼생활이 부부중심보다는 가족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싸움이 나고, 믿음이 깨져도 공동의 목표, 예컨대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는 서로의 몫을 다하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결과적으로 참고살다가 마지막에 참지 못하고 헤어지는 부부들이 나타나고 이를 황혼이혼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문화에 우열은 없기에 가족중심의 결혼생활이 부부중심보다 열등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나 가족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통념은 점차 뒤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이혼은 더 이상 흠이라고 볼 수 없다. 만약 피치못할 이유로 이혼을 결정해야한다면 자존심이나 본인의 애정만을 내세울 일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누가 더 반려동물을 잘 돌볼 수 있고, 누구와 있을 때 반려동물이 더 행복할지에 대한 이성적인 대화와 적절한 양보가 필요하다.


 


아, 그런데 말미에 생각해보니 오히려 이혼하면서 반려동물 버리는 걸 걱정해야 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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