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것들이 서로를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by 에티텔
still lives 1.jpg 이효연, Still lives 1, oil on linen, 116.7x91cm, 2025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이 몇 개 있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돌아가며 본다. 듣는 편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작업을 하면서 틀어 두기 때문이다. 얼마 전 그중 한 채널의 진행자가 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생의 전환기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권태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생각했다. 그 마음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시간에 쫓기며 작업하는 내 일상이 타인의 소소한 마음씀에 천천히 공명하도록 나를 놓아두지 않는다.


어디선가 읽은 심리학 실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가장 큰 조건은 여유라고 했다. 시간의 여유, 마음의 여유. 나는 그런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시간이 빠듯하니 마음도 빠듯하다. 작업을 하면서 유튜브를 자주 틀어 둔다. 요즘은 거의 미학 강의만 듣는다. 효율의 극대화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얼마 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한동안 멍해졌다. 그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이야기와 그 주변의 여러 일화들이 이어졌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흥분한 상태로 오래 남았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쁠 때, 특히 나처럼 여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클라이맥스가 있는 이야기가 더 크게 울리는 것이 아닐까. 짧은 시간 안에 도달하는 정점. 강하게 대비되는 장면.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생각이 스쳤다. 나의 그림에도 조금 더 분명한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조금 더 강한 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곧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 그렇다고 그림을 바꿀 수 있는 걸까. 내 그림 중에도 대비가 강한 장면들이 있다. 그런 그림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떤 지점에서 멈추게 되었다. 대비라는 것이 반드시 명암으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밝음과 어둠 말고도 장면에는 다른 종류의 간격들이 있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거리, 말해지지 않은 감정, 조금 늦게 도착하는 시간 같은 것.


어쩌면 나는 그 간격들을 그려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조금 어긋나 있는 장면들. 사람과 동물, 식물과 공간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같은 화면 안에 머물러 있는 순간. 그때 장면에는 작은 긴장이 생긴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천천히 퍼져 나가는 긴장. 아마도 내가 그리고 있는 대비는 그런 종류의 것일 것이다.


명암이 아니라
존재들 사이에 놓인 간격.

그리고 그 간격은

대개 아주 낮은음으로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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