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작업실에 있었다. 막 짜놓은 물감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고, 그 상태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벨이 몇 번 울렸다. 급한 전화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받았다.
그는 요즘 하는 일에 대해 말했다. 포부라는 단어가 나왔고, 야심이라는 말도 이어졌다. 욕망이라는 말은 조금 더 나중에 나왔다. 나는 그 단어들을 따로 구분해 듣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다 덤벼. 죽여버리겠어.”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묻지 않았다. 특정한 대상이 있다고 해도, 그 대상이 중요한 종류의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말은, 대상 없이도 충분히 완성되는 문장처럼 들렸다.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그는 곧 다른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적당한 간격으로 대답했다. 대화는 무난하게 이어졌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내용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작업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조용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원래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전화가 오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왔을 뿐이다.
나는 다시 팔레트를 바라보았다. 물감은 조금 더 말라 있었고, 색은 처음보다 덜 선명해 보였다.
좋아하는 사람만 보고 살기에도 시간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확신에 가까운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 표정이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대체로 이미 여러 번 반복된 말에서 비롯된다는 쪽이 더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좋은 생각만 가지고 살기에도 삶은 충분히 짧다.
물론 사람은 마음속에 어떤 감정을 오래 남겨두기도 한다. 그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차이는 대체로 방향에 있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본다. 누가 앞에 있는지, 누가 뒤에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들. 그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말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모멸감이라는 감정은 특별한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개는 짧은 문장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다시 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나는 왜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특별한 결론에 도달한 적은 없다. 사람은 대개 분명한 이유 없이 어떤 일을 계속한다.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만둘 만한 이유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나는 화면 앞에 서 있었다. 물감은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
조금 전 전화를 걸어온 사람을 떠올렸다. 그는 아마 지금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두 경우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