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컵이 두 개 놓여 있었다. 하나는 거의 비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아직 따뜻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문은 조금 열려 있었고, 바깥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필요하지 않은 말이었다는 건 안다. 그 말 다음에 또 다른 말이 따라 나왔다. 멈출 수 있었는데, 멈추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있었다.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동의하지도 않았다. 그냥 듣고 있었다. 그게 더 힘들었다.
사실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며칠째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 머릿속에서 같은 생각이 반복됐다. 답은 없었고, 시간만 지나갔다. 그게 몸 안에 남아 있었다. 말이 되지 못한 채.
나는 컵을 만지작거렸다. 손잡이가 식어 있었다. “그게 아니라,” 하고 말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공기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식탁 위의 빛도 아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말을 다 하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조용해졌다. 마치 무언가가 터진 것처럼. 대신 그 자리에 빈 느낌이 남았다.
그 사람은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래,” 하고 말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할 말은 없었다. 밖에서 또 차가 지나갔다. 텔레비전에서는 소리만 큰 액션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달리고, 유리가 깨지고, 화면이 흔들렸다. 거기서는 모든 일이 두 시간 안에 끝날 것이다.
우리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무언가가 폭발했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폭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