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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착한 레몬 May 30. 2022

차곡차곡_글2

*차곡차곡은 양혜리작가와 내가 함께 쓰는 글이다.

1.

두 번째 원고를 쓰는 날이 금방 다가왔다. 그 사이 새 전시가 하나 오픈을 했고, 이번 전시도 역시 전시를 오픈하기 전날까진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전시를 오픈하기 몇 일전엔 우리끼리 열띤 토론이 있었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입맛을 잃고 말았다. 심지어 치킨을 먹고 있던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확실히 피로감이었다. 그날 깨달았다. 내 직업은 치킨을 눈앞에 두고도 입맛을 잃게 할 수 있는 극심한 피로에 시달릴 수 있는 직업이구나.    

*그 이후로 자주 입맛이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2.

며칠 동안 많이 아팠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몸과 마음의 통증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두통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딸아이에게 몇 달 전부터 약속해 놓은 것이 있어 동물원에 다녀온 게 화근이었다. 다녀와 바로 앓아 누웠고, 아예 일어나는 게 힘들어졌다. 정확히 2년 전 쯤에도 똑같은 통증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생애 처음으로 투자를 받아 ‘공간’을 운영하게 되었고, 내 사수가 내게 그랬듯이, 나와 함께 하기로 손을 내밀어 준 동생들에게 직접 겪어보는 큐레이팅의 경험을 해주고 싶었다. 사수는 나를 전적으로 믿어줬고, 단순 어시스턴트라는 생각은 버리라고 말했다. 누가 뭐래도 너는 큐레이터니 직함에 맞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는 첫 전시부터 전시에 참여 하는 모든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면대면 하면서 때로는 거침없는 질문도 했다. 그때마다 사수는 나의 당돌함을 지지해주었고, 그 덕에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3.

내가 만든 첫 번째 전시는 2012년에 오픈했던 회화작가들의 그룹전시인데,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사수는 나를 홍콩으로, 유럽으로 데리고 나갔다. 회사에서 해외 출장은 실장급만 가능했기 때문에 사수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 나를 홍콩, 유럽으로 데려갔다. 사수가 해외 출장을 하는 동안, 회사에서 나는 재택근무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나는 국내전시를 마무리 한 후, 새벽 비행기에 올라 사수와 해외에서 만나 모든 출장 일정을 함께 소화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아시아의 첫 아트바젤부터 시작해 ‘완차이’라는 지역이 아트페어로 인해 어떻게 성장하고, 그 도시가 예술로 어떻게 채워지는지 그 변화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유럽의 유수 갤러리 관계자들과 작가들을 만나면서 우리에겐 무엇이 부족한지 감각으로 배워나갈 수 있었다. 10년 사이에 같이 활동했던 큐레이터들, 함께 일했던 학예팀 동기들이 미술계에서 많이도 사라졌다. 그래도 미술계는 이내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고, 제 아무리 영향력이 있는 큐레이터였다 해도, 한 사람이 사라지는 건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 이내 또 영향력 있는 혹은 스타성이 짙은 큐레이터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 사이에서 나도 조용히 내 활동을 이어왔다.


4.

사수의 과분했던 사랑은 내가  황량한 미술계에서 버틸  있는 힘이 되었다.  공간을 열고, 나는 함께 하는 동생들에게  사수가 그랬듯이, 내가 몸으로 배웠던 것들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해외 출장을 감행했다. 투자 받은 돈의 반을 사람에게  것이다. 거의  달을 채운 일정 이었다. 십년  내가 만났던 작가들과, 관계자들도 함께 소개시켜주며 만나고 이야기하는 그런 출장이었고, 나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나은 전시를 만들어갈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계속 몸이 아파 이렇게 저렇게 손을 쓰다가  이상   없던 단계에서  한의원에 가게 되었다. ‘어디가 아파요?’ 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온갖 증상을 얘기하니 의사선생님께서  등을 쓰다듬으며 ‘얼마나 힘들었어요. 이제  조금 맞고,  쉬어요.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요. 모든게   같지 않죠? 그래도  참았네요. 고생했어요.’ 라고 말해주시는 순간, 눈물이  뻔한   참고 치료실에 들어가  하고 조용히 떨어뜨렸다.  이후로는 아프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몸과 마음은 하나구나. 마음이 아프면 몸은 아플 수밖에 없구나. 나는 무엇보다 내 마음을 잘 살피고, 몸을 잘 돌봐야 하는구나. 몸과 마음은 하나다. 그래서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늘 하는 말은 ‘몸조심, 마음 조심!’


5.

이후로 나는 공간이라는 것에 더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대신 공간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찾았고, 이동이 자유로우면서도 공간이 지닌 물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책’이라는 두터운 역사를 지닌 물건을 전시장으로 여겼다. 공간이 사라지니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없었다. 매 달 시달리던 월세에, 유지비용에,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것들이 사라진 것이다. 결국 다르게 얘기하면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 움직이지 않는 고정가치인 부동산을 잠시 월세로 소유하려고 발버둥 치다, 그것에 지고 만 것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속상한 건, 공간을 얻자마자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작가들을 초대해서 전시 약속을 한 일이다. 그렇게 쉽게 질 것도 모른 채로, 나는 전시를 제안했고, 결국 그 일들도 모두 무산이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작가들이었는데...그 뒤로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들에게 무언가를 제안할 때는 모든 것들이 갖춰진 상태에서, 그리고 리스크가 적은 상황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소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큐레이터가 제일 속상할 때는 무엇보다 작가를 잃을 때가 아닐까. 단 3개월 6개월을 버티지 못할 나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해서 나는 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섣부르게 제안하고 말한 대가로 나는 그들을 잃어 버렸다. 아마도 영영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 재회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 또 무언가를 제안할 수 있을까. 어리석게도 나는 또 그들에게 무언가를 제안한다. 나는 지나간 일을 자주 까먹는 사람인가. 아니 사실 반대이다. 나는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특히 사람의 얼굴에 대한 당시의 분위기에 대한 기억력이 특히나 좋아서 어떤 것이 만들어 지고, 흩어 졌던 순간을, 표정을, 말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이건 나의 오만일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있는데도, 한편으로는 그 모든 걸 잊어야만 한다. 만일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깐 나는 늘 새로 태어나야 한다. 기억도 그 중에 하나겠지. 내 기억은 늘 다시 세팅 되어야만 한다. 좋았던 순간만을 남겨두고 말이다.    


6.

내가 좋아하는 선배 기획자는 전시를 만드는 일은, 특히 개인전이란 건 그 작가와 큐레이터가 연애를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전시 작가는 나에게 있어 가장 1순위 이고, 그 시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이이며, 서로가 원하는 것을 조율하며 함께 어떤 그림을 그려나가는 사이이다. 나는 좀 보수적인 큐레이터인지, 늘 작가보다 내가 뒤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곁에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데, 작가의 말을 듣는 것은 내 일이자 의무이고, 그 얘기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정말 좋다. 뭐라고 딱히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데, 나처럼 바보 같지만 늘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지금 그들 곁에 있어서,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아서 그때마다 살맛이 난다.

*그러니까 내일은, 세상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무모하다고 말하는 그런 말들을, 생각을 최대한 곁에서 지지하는 것, 그게 결코 무의미 하지 않다고, 심지어는 이것이야 말로 의미 있는 일이야 라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


7.

돈을 벌고 쓰는 일에 있어 나는 실패자이다. 알뜰살뜰한 가정을 이루고 꾸리는 것에 있어서도 나는 실패자이다. 그 때문에 어린 딸의 마음의 생채기를 갖게 한 점에 있어서도 나는 어른으로써 철저히 실패했다. 몸은 컸으나 마음은 자라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래도 내가 잘 하는 것이 있다면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 그만큼 다양한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묵묵하게 믿고, 온 몸으로 지지한 다는 것. 나는 이 말을 하면서 뜨거운 책임감을 갖는다.

나는 열심히 잊어버리는 사람인 동시에 열심히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치를. 아직 말하지 않은 사실을. 아직 시도하지 않은 시도들을. 그것들이 언젠간 이야기되고, 내 앞에 나타날 것임을 믿고, 온 몸으로 지지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몸과 마음도 열심히 돌봐야 한다. 웃프지만 ‘실패자의 건강법’이라고 할까. 나는 많은 부분에서 실패자이지만, 내가 믿는 것들을 더 오랫동안 지지하기 위해서 건강하기로 다짐한다. 결론은 건강만이 살 길이다. 그래서 오래오래 살아남고, 내가 본 것을, 믿었던 것들을 모두 잘 기록해 둘 것이다. 조금 살아보니 ‘이게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이구나.’ 라고 알게 되니, 온 몸을 콕콕 쑤셔대던 아픔들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나는 꽤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살아있는 동안은 할 일이 참 많겠구나. 기죽지 말아야지’ 하고, 내 널찍한 두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 한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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