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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착한 레몬 Jun 13. 2022

차곡차곡_글3

*차곡차곡은 양혜리작가와 내가 함께 쓰는 글이다

몇 해 전, 친구가 떠나고 마지막 인사는커녕 장례식조차 방문하지 못한 나는 보름 뒤에야 친구 부모님을 만났다. 아버지는 처음 뵈었지만, 고등학교 시절 그녀가 엄마와 함께 찍었다며 건네준 작은 스티커 사진 속 엄마 얼굴과 닮은 어머니의 모습은 알아볼 수 있었다. 엄마를 많이 닮은 모습을 보며, 엄마가 그녀를 많이 닮았다는 멍청한 생각을 하며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당시 내 몰골은 좀 말이 아니었다. 넘어지면서 안경이 부러졌고 그로 인해 눈과 코 사이가 찢어져 응급실에서 마취도 없이 여러 바늘 꿰맨 상태. 넘어지면서 땅에 박아 앞니가 무너진 상태. 칼을 잡으면 칼에 다쳤고 길을 걷다가 계속 넘어졌고 음식도 잘 넘기지 못했다. 이런 몰골로 친구 부모님을 처음 뵙는 것이 부끄러워 저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에요 변명하고 싶기도 했다. 


이미 어두워진 저녁, 친구 부모님과 명태찜에 소주를 몇 병 마셨다. 두 분은 아파트를 정리하고 이사한다 하셨고 언제인지 알려주시면 제가 돕겠다 했다. 도울 건 없고 그냥 오고 싶으면 오라셨다. 그렇게 방문한 아파트에는 고모라는 분이 함께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친구가 머물던 방을 보여주며 여기가 침대고, 강아지들 물건을 자기 물건보다 애지중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지막에 읽던 책들과 작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내게 가지라 건넸다. 옷들 중에서도 뭐 가져갈래? 했지만 키가 나보다 10센티 이상 컸기 때문에 가져갈 만한 옷이 없었다. 대신 키에 비해 발이 작았던 그녀의 신발들은 크긴 컸지만 신을 수 있을 것 같아 잔뜩 들고 왔다. 


인터넷이랑 텔레비전이랑 이런 거 해지해야 하잖아? 고모가 물었다. 그렇지. 근데 다 얘가 한 거라 나는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데. 어머니가 난처해했다. 가만있어 보자. 고모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아, 이거 해지하려고 하는데요. 아니요. 저는 본인이 아닌데요. 나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그 짧은 순간 고모가 어떻게 말씀하실까 긴장했다. 아, 그 본인이 사망을 해가지고. 아, 네. 알겠습니다. 사망증명서랑 해가지고 보내고 처리하면 된다네. 그렇구나. 남은 가족들은 이후로 계속 이런 상황을 겪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망. 사람이 죽고 없음. 


우리 셋은 짜장면과 짬뽕과 탕수육을 먹었다. 이사에는 짜장면을 먹어주는 국룰 같은 것을 잘 지키던 친구의 엄마다웠다. 젓가락으로 짜장면을 돌돌 말며 내가 말했다. 꿈에서 한참을 같이 놀았다고. 내가 막 달려가서 야, 사람들이 너 자꾸 죽었대. 이거 봐, 아니잖아. 무슨 소리야. 어서 놀자며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갔다고. 어머니는 곧 다가오는 그녀 생일에 같이 가서 인사하자 했다.  


집으로 와 신발들을 정리하고 요즘 계절에 신을만한 것들을 꺼내 두었다. 막상 신어보니 제법 컸다. 깔창을 깔아 보니 좀 괜찮았다. 덕분에 걸을 때마다 버석버석 했지만, 뭔가 바람이 통하는 것도 같고 걸음걸이가 큼직해지니 신나는 것도 같고 괜찮았다. 내일 약속에도 신고 가야지.


지인들을 만나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데, 평소 존경하던 선배가 얼굴도 그렇고 고기를 잘 먹지 못하는 내게 무슨 일인가 물어 주었다. 나는 평소 같으면 넘어져 앞니가 다쳤다는 사실 같은 건 창피하고 쑥스러워 말 못 했을 텐데, 나는 멍청합니다 하는 표정으로 이러저러해 다쳤다 말했다. 아팠겠네, 아이고 저런, 정도의 말이 돌아오겠지 하고 있었는데, 나도 앞니가 부러진 적이 있어. 나는 눈을 올렸다. 선배는 어쩌다 다쳤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어떻게 치료했는지 차분하고 담담하고 다정하게 말하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했다. 이상하다. 왜 정말 좋은 위로를 받은 것 같지? 


몇 달 전, 한 큐레이터가 어느 작가님을 소개해주며 함께 프로그램하자 제안했다. 우리는 차를 마시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서로 어떤 작업을 하는지 이야기 나누었다. 한 사람이 말을 하면 다른 한 사람이 말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이 말하고 말들이 돌고 돌았다. 


우리는 죽음에 관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어제 먹은 저녁 메뉴를 말하듯 자연스럽고 차분하고 즐겁게 이야기 나누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죽음이라는 단어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그리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없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이름, 화초와 고양이, 채식과 생식의 시간, 하네뮬레 종이들, 산책을 떠나던 길들, 나의 이 손으로 톡톡톡 만졌던 피부와 흙, 눈 내리던 밤 나눈 안녕의 말들, 매일 꾸었던 꿈들. 우리는 웃었고 그것은 좋은 일이라 여겼다.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았다. 눈물은 흘렀지만 울지는 않았던 그 밤에도 이제는 구멍 난 그 큰 신발을 신고 버석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모두 안녕이라 말해 본 사람들이었다.  


- 양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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