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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착한 레몬 Aug 01. 2022

차곡차곡_글5

*차곡차곡은 양혜리작가와 내가 함께 쓰는 글이다

 스마트 폰 사용이 늘어나면서 전자책 이용도 늘어났다. 내가 살던 동네 도서관에는 전자책 도서관도 마련되어 있어 로그인하면 도서관에 준비되어 있는 전자책들은 무료로 대여해서 읽을 수 있었다. 대형서점들을 통해 더 많은 전자책 구매도 가능했다. 책을 종이가 아닌 모니터로 본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독일어를 하는 어려움 속에 지내며 한국 책을 보는 일은 좋은 일이었다. 먼 길을 떠날 때에도 열 권 이상의 책을 300그램 정도의 폰 안에 모두 들고 있다고 뿌듯했다. 버스에서는 멀미 때문에 책을 읽지 못하는데 이어폰을 꽂아 오디오 북으로 들으며 길고 긴 버스에서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와 보면 조금 웃긴데 전자책 책장 목록을 보면, 처음으로 구매했던 책은 <논어>고 다음은 <손자병법> 그다음으로 구매한 건 <백석 시집>이었다. 그다음은 <지상의 양식>, <1만 시간의 법칙>, <생각 버리기 연습>,  <데미안> 그리고 김연수 수필집, 카프카의 소설, 김영하 소설, 황정은 소설, 고전, 수필집, 서평집, 심리학 등등으로 당시의 기분마저 전해질 목록들이 점점 채워지고 있었다. 


 다섯 살인가 운이 좋게도 나는 글을 빨리 배웠다. 한글을 먼저 배우던 언니를 샘 해서 그랬는지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어린 내가 신문을 줄줄 읽자 어른들이 어우 대단하네! 칭찬했고 으쓱했거나 뿌듯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책도 많이 읽으며 지냈는데, 책은 언제나 좋은 친구이자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처음 베를린에 적응하던 시절에는 전자 도서관에 들어가 자기 계발 서적을 계속 읽었다.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열심히 작업해야 하고, 노는 것도 잘 놀아야 하고, 인간관계도 잘해야 한다고 닦달하며 자기 계발 서적을 읽어 댔다. 아는 것도 없고 누구도 옆에 없는 상황에서 조언을 구할 곳은 역시나 책인가 했다. 그러다가 몸도 정신도 작업도 뭣도 하나 제대로 하는 일 하나 없이 망치고 지쳐갔다. 오히려 가장 도움이 되었던 책은 자기 계발 서적은 아니었고,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인데 나처럼 대출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읽고 싶을 때마다 빌려 읽을 수 있었다. 내 책 인양 읽고 싶을 때마다 꺼내 읽었고, 매번 읽을 때마다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래, 나는 달리기를 좋아했지. 달리기를 좋아하지만 스무 살에 천식이 생기는 바람에 달리면 기침이 나와 달리기를 하지 않고 살았다. 독일에 와 천식이 호전되어 살살 달려봤는데 기분이 괜찮았다. 초등학교 시절엔 계주 선수로도 몇 번 출전한 적이 있었다. 꾸준히는 힘들지만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하루 3킬로미터 이상은 달리자고 마음먹었다.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은 꾸준히 나왔고 여전히 이상하다 싶을 만큼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요즘에도 나는 가끔 자기 계발 서적에서 조언을 구하거나 마음을 의지하곤 한다. 구매는 하지 않고 전자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는다. 구매하는 책들은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비장하게는 영원히 내가 소장하고 싶은 책들이다. 이사를 해야 하는데 책장의 책을 모두 가져갈 수 없어 엄마에게 양해를 구하고 본가에 어느 정도의 책장은 그대로 두고 싶다고 했다. 고르고 골라 버릴 책들도 솎아냈다. 예전에 아는 언니가 집에 사정이 생겨 부득이하게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버려야만 했던 일이 있었다고 했다. 고민 끝에 언니는 딱 세 권만 남기고 모두 버리기로 결심한다. 나는 너무 궁금했다. 그 세 권의 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내 기억력은 <세잔의 사과> 이 한 권의 책만 기억한다. 나머지 두 권은 뭐였을까? 만약 나도 세 권의 책만 남기고 모두 버려야 한다면 어떤 책을 남길까? 그나저나 과연 나는 이 책장의 책들과 걸맞은 삶을 살고나 있는 걸까? 


 사춘기 시절, 삶과 인생에 관하여 너무 심각하고 깊이 생각한 나머지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막상 죽으려고 하니 십육 년 내 인생이 너무 뭔가 아깝기도 하고, 누구 하나 내가 여기 있다 간 것도 모르는 게 섭섭하여 책을 한 권만 딱 만들고 그때 죽자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아이는 북아트 학과에 진학하여 공부하며 다양한 책을 만들었다. 처음 책을 만들며 그때 심각했던 어린 나를 떠올렸다. 이거 다 만들면 넌 큰일 났다 협박하며 웃었다. 


- 양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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