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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Nov 25. 2023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지는 너로 정했다

가장 이국적인 나라, 인도

"대출이라도 좀 알아보지 그래? 그런 데서 그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게 많이 아깝다."

내년 육아휴직 기간 중 뭘 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한 지인이 내게 했던 충고의 말이다. 비교적 저렴한 한달살이를 위해 그곳에 간다고 했던 나의 잘못이었나. 하지만 굳이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왜 그곳에 가고 싶은지, 우리가 그곳에서 진정으로 무엇을 얻고 싶은지에 대해서. 그래서 그냥 '돈이 없어서요'라는 한마디로 갈무리해 버렸다. 순간 내가 가고자 했던 그곳은 돈은 없지만 해외 한달살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가는, 그냥저냥 그런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도 그럴 듯이 그곳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내거리는 똥으로 가득 차고, 수돗물은 식수는커녕 세수물로도 쓰지 못하고, 밤에는 범죄가 일상이 되어버린, 더럽고 위험한 그런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20년 전 내가 그곳에 방문했을 때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거 같다.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첫 해외여행을 떠나온 20대의 나의 눈에는 소똥이나 개똥보다는, 나를 위협하는 매서운 눈길보다는, 커다랗고 깊은, 그리고 순수하고도 맑은, 이국적인 동양인을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그들의 눈동자만 있을 뿐이었다. 그곳은 너무나도 이국적인 나라, 인도였다.




40대가 된 지금 인도의 기억은 솔직히 가물가물하다. 다만 그 당시 만났던 인도인들의 얼굴은 생생하다.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거지 아이 소년, 나를 속여 사기 치려 했던 청년, 버스에서 나와 펜팔 하자 했던 할아버지, 연신 '아 유 해삐?(Are you happy?)',  '노프라블럼(No problem)'을 외쳐 됐던 릭샤꾼들. 그렇게 외친다 한들 그들이 행복과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느끼는 거지만, 인도인들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독특한 무언가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사색에 빠진 듯한 깊고 깊은 눈망울, 무언가 철학적일 거 같은 그들의 말들. 뭔가 있어 보이는 이런 단편적인 모습에는 분명히 인도만의 유니크함이 깃들여 있다. 나는 이런 독특함의 이유로 인도의 오랫동안 근간이 되어왔던 힌두교의 카스트제도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카스트제도는 한마디로 '유한성'이다. 그들의 유한성은 그들을 초연하게 만들고 그 초연함으로 나름의 행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아무리 노력해 봤자 소용없는 걸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행복해한다. 안될 거는 안되고 될 거는 된다는 초연한 마음은 더 이상의 걱정거리를 없앤다.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인도는 그들의 유한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그들이 주구장창 '아유해삐''노프라블럼'을 외치는 이유이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불평등함을 군소리 없이 인정한다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대한민국에서는 하늘이 노하고 땅이 통곡할 노릇 아닌가. 그들에게는 자유의지란 것도 없고 선택할 기회도 없는 것인가. 그저 순응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미래는 없어 보인다. 확실히 힌두교의 카스트제도는 인도라는 나라에게는 최대의 약점이자 결핍일 것이다. 어마어마한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발전 속도가 더딘 이유 여기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인도를 너무 미화하는 건 아닌가 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머리로는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해도 감성이 따르지 않는다. 인도는 그렇게 단순한 나라가 아니라는 마음을 좀럼 버릴 수가 없다. 철학자로 변모한 길거리의 릭샤꾼들과 직접 만나 얘기해 본다면, 길거리에 널브러져 돈을 구걸하는 거지들이 우리에게 행복하냐고 되묻는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듣게 된다면, 마냥 인도인들을 마음 편하게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결국 돌고 돌아 나는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결핍에서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아낸다면 이것을 과연 결핍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넘쳐나는 대한민국 길거리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가 인도 길거리 릭샤꾼보다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넘치거나 모자람은 행복의 척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충족이라는 가득참보다 결핍이라는 모자람 속에서 행복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충족과 결핍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싶었다. 우리 가족과 함께. 그래서 나는 가을 세우고 실험해 보고 싶어졌다.


모자람으로 자라는 우리 가족


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인도로 떠난다. 모순과 모자람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속에 풍족한 삶이 아닌 정반대로 살아가는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무엇이 옳은 삶인지 그른 삶인지 평가하거나 판단하기보다 그저 이 세상에 각자의 다양한 인생을 가족들과 같이 배우고 나누고 싶다. 그러다 보면 혹시나 뭐라도 얻어걸리지 않을까? 뭐, 아무것도 얻지 못해도 좋다. 거창한 실험이니, 가의 증명이니, 이런 건 둘째 치더라도 20년 후 딸들의 머릿속에 지금의 기억이 아련한 장면으로 남는다면 대만족이다. 2024년, 인도인들의 순수한 눈빛과 젊고 어린 우리의 눈빛들의 기억들. 그것만으로 대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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