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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Dec 05. 2022

주말의 발악

발악은 발악을 잉태한다.

어렴풋한 여명이 느껴진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엄습한다. 잠결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음과 동시에 두 눈이 번쩍 띄었다. 창문 사이로 얼비치는 햇빛을 뒤로하고 핸드폰을 더듬는다. 시간은 6시 30분이다.

'~ 제장~ 큰일 났다.'

세상의 모든 짜증을 떠안은 거 마냥 괜한 핸드폰에  짜증을 낸다.

"왜 알람이 안 울린 거야? 누가 끈 거 아니야?"

뒤척이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마치 들으라는 냥 방안의 정적을 깨운다.

"아빠 왜 그래? 오늘 토요일이잖아."

'아차! 오늘 쉬는 날이었구나.'

곤히 잠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감정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널브러져 있는 이불을 정돈하고 다시 이불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이불속의 포근하고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잠을 다시 청한다. 스르르 감기는 눈꺼풀이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다.


"아빠! 이제 일어나!"

새벽에 자다 깨어서 그런지, 어제 밤늦도록 핸드폰 보느라 그런지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가 않다.

"아빠 평일 동안 힘들었으니까 좀만 더 자자~"

"안돼! 아빠 오늘 밖에 나가서 놀기로 했잖아. 얼른 일어나!"

"알겠다! 알았어!"

이것이 바로 육아 출근이라는 것인가. 오늘부터 이틀 동안은 여지없이 독박 육아다. 평일 동안 털린 몸과 마음을 다시 아이들에게 헌납해야 한다. 평일 동안 직장인 가면을 쓰고 있었다면 주말 동안은 아빠 가면을 철저히 써야만 한다. 아빠의 가면도 만만치 않다. 어쩌면 직장인의 가면과 별반 다른 게 없다. 고통의 연속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어디다 하소연할 때도 없다. 직장인 가면은 힘들다고 징징댈 수 있지만 아빠의 가면은 감내해야만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 새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인데 어디다 하소연을 할 것인가! 직장인의 가면은 의무였다면 아빠의 가면은 선택이다. 직장인은 어쩔 수 없이 쓴 가면이라면, 아빠라는 가면은 수컷만이 쓸 있는 본능적인 가면이다. 이것은 수컷의 존재의 이유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가면일 뿐이다. 아빠의 가면을 선택했다고 해서 이것이 진짜 나일 수는 없다.




하루 중 나의 유통기한은 저녁 9시이다. 딱 9시가 넘어가면 신체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흔들림을 주체할 수 없는 나는 괜한 아이들에게 화살을 돌린다. 더러워진 방과 아이들의 꼬질꼬질한 모습은 확실한 타겟으로써 충분하다.

"빨리 방 정리하고 씻자! 언제 다하고 언제 잘래? 빨리 하지 못해!"

 명의 아이들 입이 댓발 나왔다. 그 입으로 연신 아빠를 탓하며 무거운 몸으로 느릿느릿 청소하고 씻기를 시작한다. 11살 첫째는 아빠 눈치를 보며 그나마 익숙한 손짓으로 방을 치운다. 하지만 9살 둘째와 6살 셋째가 문제이다. 셋째는 언니들을 도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딴짓을 하며 놀고 있다. 방을 치우고 있는 둘째의 눈에 포착된 이상 가만히 있을 리 없다.

"! 너는 왜 안 치우는 거야? 같이 놀았으면 같이 치워야 되는 거 아니야?!"

"으아아앙~~~"

6살 째에게는 둘째 언니의 호통이 벼락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아직 사리분별과 표현에 서툰 셋째는 마치 누군가 들으라는 듯  울음으로 응수한다. 이 모습을 본 누군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누군가는 우리 가족 중 서열 1위이다.

"뭐하는 짓들이야? 애들이 이러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기만 해? 집에 일찍 오면 뭐해?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엥?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지?'

내가 쏘은 화살이 나의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 "직장에서 힘들게 돈 벌고 와서 피곤해 죽겠는나한테 그러는 거야!"

버럭 소리 지른다. 내 마음의 허공에다가. 서열 1위를 향해 차마 입 밖으로는 뱉어내지 못하고 내 마음속  메아리로만 남을 뿐이다. 하지만 마음속 부글거리는 감정을 이대로 볼 수만은 없었다. 기세가 꺾인 메아리 몇 조각을 모아 다시 살로 만든다. 만든 화살로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세 명의 약자를 향해 정조준한다. 그들은 아빠 감정 해소를 위한 타겟이자 감정 쓰레기통으로 전락했다.

"아직까지 안 씻었어? 아빠 힘들다고 했지? 잘 준비하고 빨리 들어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침실 방 문을 쾅하고 닫는다. 밖에서 셋째는 울고 있고 첫째와 둘째는 투덜거리며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다. 이불을 펴고 이불 위에 대자로 눕는다.

'될 대로 되겠지.'

방 불을 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의 스위치도 같이 끈다. 직장인으로서, 아빠로서의 가면도 벗겨졌는지는 모르겠다. 하루의 유통기한이 끝난 나는 그렇게 금세 잠이 들었다.




오늘도 김없이 울리는 알람 소리에 출근을 준비하기 해 일어선다. 어제는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고 모는걸 손을 놓고 첫째, 둘째의 불평 소리와 셋째의 울음소리, 아내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잠이 들었던 거 같다. 많이 피곤하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쪽에는 둘째가, 오른쪽에는 첫째가 아빠를 바라보며 곤히 잠들어있다. 천사 같은 셋째는 엄마품에서 웅크려 잠들어있다. 너무나 평화롭게 잠들고 있는 네 명의 여자의 숨소리가 너저분한 방안을 꽉 채운다.

잠이 덜 깬 채 따뜻한 방안 공기를 느끼고 있자니 어제의 옹졸한 내 모습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식구들을 위해서 내가 이렇게 출근하는 거 아니겠어? 지금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내 의무야.'


"아빠 해?"

새벽마다 같이 깨어나는 첫째가 오늘도 내가 일어난 기척을 느끼고 아빠에게 말을 건넨다.

"아빠, 사랑해~"

첫째는 언제나 뜬금없이 사랑고백 남발이다.

". 나도 사랑해. 어제는 아빠가 미안했어. 이번 주말에는 아빠랑 열심히 놀자!"


이렇게 나의 주말은 아이들에게 저당 잡혔다. 평일 날 제대로 놀아주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며 주말에는 아빠 가면을 더욱 견고히 쓰고자 했다. 힘든 건 나인데 괜한 아이들에게 짜증내고 화낸 나의 모습대한 반성의 표시라고나 할. 아빠라는 가면을 견고히 장착하였다. 바꿔 생각해보면 직장인이라는 가면이 너무나 강력하기에 주말마다 아빠 가면을 찾고 있는 것이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놀아주는 것은 나의 또 다른 의무가 되어버렸. 이번 주말은 어디가 좋을까, 어떤 체험활동을 가야 하나 검색포탈에 기웃거리며 고민했다. 그나마 가성비가 좋고 아이들이 좋아했던 곳이라면 몸은 힘들지만 아빠로서 최선을 다했자위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돈만 날렸다고 일요일 저녁, 지친 아내의 싫은 소리에 마음이 상하곤 했다. 이미 이때부터는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힘듦을 토로할 뿐이었다.

'나도 최선을 다했다고, 나도 힘들다 힘들어!'

소리 지르고 짜증 낼 힘도 남아있지 않다. 나의 몸과 마음, 무엇하나 건사하지 못할 정도이다. 아이와 왜 그런 약속을 했는지 후회까지 밀려온다. 이불 한 자락에 대자로 뻗는다. 주말 저녁도 평일 저녁과 다름이 없다. 유통기한이 지난 나는 후회라는 감정도 희미해지고 병든 닭마냥 스르르 눈이 감긴다.

모두가 힘들고 지친 일요일 밤, 그렇게 아빠 가면은 시나브로 직장인 가면으로 바뀌어 간다.




직장인 가면으로부터 자유롭고자 아빠들은 주말마다 최선한다. 가족을 건사하고 있는 한 명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주말 역시 쉽지만은 않다. 캠핑, 등산, 공원 산책, 자전거, 배드민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취미를 검색하고 알아본다. 저렴한 공원이나 놀이동산도 좋은 선택 중 하나이다. 이렇게 주말에 최선을 다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도 어찌 보면 아빠로서의 의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평일은 직장인으로서, 주말은 아빠로서 나란 존재는 해야만 하는 일을 열심히 수행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이유이다.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따뜻한 에너지를 받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언제나 가족이 중요하고 우선순위에 있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는 면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가족을 선택했다면 아빠라는 가면이 또다시 나를 옥죄어 올 것이다. 주말, 이틀의 자유를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또 다른 구속의 시작인것이다. 직장인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발악은 아빠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발악을 잉태한다. 발악은 발악을 잉태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악순환은 언제쯤 끝이 나는 걸까? 갑자기 이전 팀장이 태연하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응~ 죽어야지 끝나!



일주일 내내 가면으로부터의 구속은 가면 아래의 진짜 나라는 갈망을 요구했다. 직장인 가면이, 아빠 가면이 진짜 내가 될까 봐 불안했다. 한평생 진짜 나를 모른 채 몸과 마음이 털리면서 사는 것이 불안했. 드디어 가면 아래의 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직장인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아빠로부터 자유로워져!
너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진짜 내가 나에게 간절히, 아주 간절히, 조용하게, 하지만 강하게 읊조리는 것을 눈치챘다. 그 읊조림은 점점 커져  소리로 변하고 급기야 발악이라는 격한 감정으로까지 커져갔다. 그렇다. 나는 직장인으로부터, 아빠로부터 진짜 나를 찾기 위해 발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 속에서 직장인도 중요하다. 가정 속에서 아빠는 더 중요하다. 이 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진짜 나이다. 진짜 내가 속삭이는 읊조림을 내가 눈치챌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속으로 귀를 기울이기 위한 틈새가 필요하.


직장인으로 살랴, 아빠로 살랴, 일주일이 부족하고 하루가 부족하다. 내 몸 하나, 내 마음 하나 챙기기도 역부족이다. 하루하루가 몸이 부서지고 마음도 무너진다. 고통스럽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가족을 돌봐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주어진 현실을 저버릴 수 없다면 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선용해야 한다. 현실에서 드디어 틈새를 찾았다. 틈새 사이로 뻗어 나오는 희미한 한줄기 밝은 빛과 함께 나의 맨얼굴이 슬그머니 얼비쳤다.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은 이렇게 슬그머니 찾아왔다. 몸은 힘들지만 머리는 선명해지고 배는 부르지만 정신은 건강해졌다. 책을 읽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것은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임을 지금에서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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