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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Dec 26. 2023

#24. 아~ 수영과 김밥

걱정이 한개도 없는 마흔다섯살은 없다.

새해를 맞이할 때는 원래 운동과 영어공부를 계획하는 것이다. 가장 많은 국민들이 헬스장과 영어학원에 등록할 때가 1월이고 했다.


우리 가족도 1월부터 평일 저녁두 번, 수영을 하기로 했다.


몸으로 배우는 것 잊히지 않는다는데 얼마나 배워야 안 잊어버리는 건지. 말 수영도 다니고 있는데 통 늘질 않는다. 평일에 바짝 연습해서 수영인이 되기로 다짐을 했다.




오늘부터 신청일이라 새벽같이 일어났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센터라 저렴하다. 그러니 사람이 많을게 분명해서 마음 먹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같은 생각인가 보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앞에 대기가 거의 30명이다.


저 중에서 우리가 원하는 화, 목요일 8시 수영을 신청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조바심을 내며 지켜봤다.


드디어 26번 번호등이 들어왔다. 우리 차례다.

접수하시는 분이 내가 건네준 세장의 신청서를 들여다보며 입력을 시작했다.

다행이다. 저것은 아직 등록 가능하다는 뜻이다.


기분 좋게 결제를 하고 이름이 생겨진 따끈한 회원권을 들고 나왔다. 남편과 둘이 손을 꼭 잡고 기쁨의 환호를 조용히 내질렀다.



이제 아직 먹지 못한 아침밥을 먹을 차례다.

회사 옆 학생식당에서 백반을 먹을 생각이었다.

아, 그런데 방학이라 학교 식당이 일찍 문을 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어쩌지.


아주 심각해진 우리는 아침 먹을 방도를 이것저것 생각해 봤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화장실도 가야 한다고 했다.


골똘히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오쪽으로 살짝 돌렸을 때, 2시 방향에 반가운 간판이 보였다.

주황색 바탕에 까만 테두리를 두른 흰색 글 네 .

[김 밥 천 국]


"여보야, 저기 갈 수 있겠어?"

3차선 도로에서 우리는 1차선 위에 있었고 김밥천국까지의 거리는 약 300미터 정도였다.


남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간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도 아무말 하지 않고 초조하게 운전자의 결정을 기다렸다. 무표정하게 오른쪽을 보던 남편은 곧이어 조용히 비상등을 켰다.

다행히 정지 신호에 걸려 있었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서서히 차들이 이동할 때 조금씩 차선을 바꿔 길가까지 가는데 성공, 김밥천국 옆 골목에 차를 댈 수 있었다.


출근시간임을 감안해서 미리 싸놓은 김밥을 내어주는 아저씨에게서 바통을 이어 받듯이 김밥과 젓가락을 신속히 넘겨받고 차에 올라탔다.


아, 모든 것이 해결됐다.

일찍 회사에 가서 느긋하게 김밥도 먹을 수 있고, 남편은 화장실 갈 시간도 확보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김밥천국을 발견한 내 실력이 어떠냐' 남편에게 거드름을 피워 찬사를 받아냈다.


회사에 일찍 도착, 혼자 회의실에 들어가 따뜻한 차 한잔과 김밥을 먹었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일사천리로 일이 해결되고 나면 고질적인 나쁜 버릇이 나온다.


뭐 잊고있는 걱정거리 없나?

없긴, 걱정거리가 한 개도 없는 마흔다섯 살은 없다.


아침에 감기 기운이 있는 채로 아침밥을 먹으러 할머니 집으로 보낸 아들이 생각났다.


어른들한테 옮기면 어쩌지? 열이 나면 어쩌지?


이런, 정신을 차리고 걱정을 집어치웠다.


걱정을 집어치우는 것도 운동 영어공부와 함께 내 다이어리에 매년 올라오는 목표 중 하나다.

마흔다섯쯤 되고 나니 걱정 집어치우기가 아주 조금 익숙해졌다.


물론 두 식간쯤 지나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겠지만 지금은 수영 등록 성공과 원활한 김밥 구입에 대한 기쁨을 조금 더  맛봐야 한다.




생각을 골을 판다고 했다.

자주 하는 생각은 그 방향으로 골이 파져서 툭하면 그리로 흘러간다고 한다.


걱정의 골을 꽉꽉 막아버리고 내가 원하는 쪽으로 골이 파지도록 가볍게 단순하게!


아들은 뭐 어리고 건강하니까 빨리 낫겠지뭐.

또 생각골이 그리로 파지는군.

수련은 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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