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마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니.
내 세계에 일어난 작은 기적
주차장 구석에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무인카페가 있다. 더구나 커피 맛까지 그저 그래서 더욱 사람이 없다. 나는 이 맛없는 커피가 더 맛있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매일 점심시간 40분의 자유를 즐긴다.
단 한 가지 이 카페에 불만이 있다면 음료가 모두 커피류라는 것이다.
저녁식사 후에 커피를 마셔도 수면에 변화가 없던 젊은 날들이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 오후에 카페인 섭취를 꺼리는 사람이 되었다.
커피 조절도 단계가 있다. 서른 후반 즈음, 커피는 오전에만 마시기로 마음을 먹고 있던 중, 친구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들었다. 친구의 엄마는 오전 9시 이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못 주무신다는 거였다. 우리는 오전 9시는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며 웃었다.
마흔이 넘은 어느 날 그 어머니의 행동이 매우 현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말 오전 일찍 커피를 마셔야 10시 이후 말똥말똥함이 덜 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이유로 커피는 출근 직후에만 마시는 것으로 딱 정해놓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 무인카페에서는 커피 종류가 아니면 마실 것이 없다 보니 난감했다. 할 수 없이 늘 아메리카노를 뽑아 놓고 한 두 모금 먹고 버리곤 했었다.
그러다가 좀 아까운 마음이 들어, 자판기에서 물이 나올 때는 컵에 물을 받고 커피가 나오는 순간 커피를 최소량으로 조절해서 카페인을 줄여서 마셨다. 그렇게 받은 커피는 마치 커피 마신 컵을 설거지한 물처럼 맑고 누랬다.
이런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지만 차 종류만 팔아준다면 더 고맙겠다는 생각을 매번 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기적같이 자판기에 차 메뉴가 올라온 것이다.
녹차, 얼그레이, 카모마일 메뉴가 생성되었다.
이게 무슨 기적이냐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바람이 주인의 마음에 닿은 것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오랜 시간 커피 메뉴만 있던 곳에, 내가 간절히 원하기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차를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 내 세계에서는 기적이다.
맑디맑은 카모마일 차를 마시면서 오래오래 이곳을 이용하고, 깨끗하게 사용하겠다고 얼굴도 모르는 주인에게 다시 한번 다짐의 텔레파시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