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를 마늘쫑과 함께 김에 싸 먹으면 비린맛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마흔이 넘어서일까요. 내 취향은 아닌 음식이라고 구분해 놨던 과메기가 고소하고 맛있게 느껴지던 참이었어요.
사위들과 모처럼 술 한잔 곁들이며 이런저런 얘기 끝에 아빠가 중동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중동에서 술이 없어서 만들어 먹기도 했어" 이 이야기는 기억나지도 않는 어릴 시절부터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였어요. 안방 한쪽 구석을 늘 차지하고 있는, 어릴 적 수학여행에서 사가지고 온 기념품 같은, 집안 부속품과 다를 바 없는 익숙한 것들 중 하나 말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과메기가 맛있게 느껴졌던 것처럼, 아버지의 익숙한 이야기를 듣다가 작은 탄성을 삼켰습니다.
'그때, 사막에서 끝없는 길을 달렸던 그 사람, 땀 한 방울까지 말려버리던 열사의 땅에 갔던 그 사람은 나보다 아주 많이 어린 서른 살의 젊은이였구나. 지금의 나보다 아주 어린 그런 젊은이였구나.'
[왜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을까?]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아빠를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박기사님을 보았어요.
아무 정보도 없이 더운 나라를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싫었던 젊은이를, 길 위에서 평생을 보낸 콘테이너 기사를, 사막 한가운데서 밤을 보내기 위해 트레일러 꼭대기로 올라가 별을 바라보던 박기사와 동료들을 보았습니다.
이 모든 기억들이 아버지의 나이 듦과 함께 서서히 휘발되고, 언젠가 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희미한 깨달음이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언젠가는 이 일들을 써보고 싶다, 그런 어렴풋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정말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022년 2월이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어요. 다행히 바로 구급차를 타고 가서 응급조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뇌졸중 집중치료실에 3일 동안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 3일간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 아버지, 박기사님의 마음에 대해서요.
그 후, 나는 아버지와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생각과는 다르구나.]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엮어서 책으로 만들어볼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책을 써본 적이 없는 내게 그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브런치에 한 회 한 회 연재하듯 글을 적어 나갔습니다.
다 기록하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정말 제 글이 형편없더라고요.
일기를 쓰듯 나의 일상을 적는 것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기록을 적을 때는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지루한 설명서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시 고치고, 고치기를 2년 정도 반복했습니다.
생업이 따로 있다 보니 이른 아침, 점심시간, 주말 정도에만 시간을 낼 수 있어서 진도는 한없이 느렸습니다.
그보다 아무리 봐도 책으로 엮기에는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아버지의 기록에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40여 년 전의 먼 나라에 대한 아버지의 기억에 내 상상을 더해봤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이런 대화를 했겠구나, 이런 일들을 겪을 때 그들은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그렇게 에세이와 소설의 중간 어디쯤 되는 글들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파트에는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들을 담았습니다. 운전 노동자의 딸로서 아버지를 보며 자랐던 나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어쨌든 완성했습니다.]
그때, 중동에 우리 인력들이 파견되었고,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이루었고, 어떤 건설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역사 속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한 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의 하루하루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중요한 역사였던 우리 아버지의 젊은 날들, 그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는 것으로 나는 이 책을 정의했습니다.
대중적으로 관심받을 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에 완성한 후 바로 부크크를 통해 자가출판을 진행했습니다.
브런치에 연재했던 '사막을 건너는 트레일러처럼' 매거진을 편집하고 몇 가지 에피소드와 사진들을 추가하여 책을 구성했습니다. 미리캔버스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책 표지를 직접 만드는 경험도 해 보았고요.
처음 책을 쓰겠다고 했을 때, 아빠는 그게 무슨 책이 될 내용이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셨는데요. 막상 책이 나오고 나니 읽어보시고는, 별 얘기 없이 몇 권 더 주문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같이 해외에 갔던 친구분들 주신다고요.
아버지는 기억을 되살려 기록을 하시고, 저는 책을 쓰고, 표지와 삽화는 제 아들과 조카가 그려 넣었습니다. 이 책의 출간은 가족 간의 이벤트가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쓰고, 표지를 만드는 것까지 다 혼자서 하고 나니 마음은 뿌듯했지만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은 많이 남습니다.
오탈자는 봐도 봐도 끝이 없고, 지금 완성본에서도 계속 오탈자가 보이네요. 결국 더 고치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오탈자까지도 추억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덕에 다음 목표가 명확해졌습니다. 다음 책은 꼭 오탈자를 나 혼자 고치지 않고 도움을 받으며 출간해 보려고요.
어린 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에 한 걸음씩 다가가려고 합니다. 이제 인생이 반 정도 지나간 것 같습니다. 지나온 반은 생활을 꾸리며 열심히 살았으니, 나머지 반은 조금 더 꿈을 이루는데 힘을 쏟으며 살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