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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 Dec 13. 2019

그냥 이해받고 싶다는 기대를 버리기.

덜 상처 받기 위한 합리화를 하는 중입니다.

 

 어제 정기적으로 1년마다 한 번 보는 사람들과 만나 술 한잔을 하며 송별회를 했다. 술자리에서 근황 얘기를 하다가, 현재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중에 핫 테마는 자신의 애인이 감정적이어서,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예민함을 숨길 줄 모르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자신이 화가 날 때는 날 선 말로 공격하는 것이 힘들지만 사랑하니깐 참아준다는 말들이었다. 때로는 이해가 안 가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품어준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뭔가 생각을 해보니 내 인생에 있어서는 그런 존재가 가족 말고는 있었나 싶어 되돌아보니 딱히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내가 뭔가를 애쓰지 않아도 혹여 내가 잘못하더라도 이해받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 예전에는 화가 났었다.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이겠지만, 나보다 더 못되거나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런 모난 부분까지 이해받으면서 사랑받는데 난 뭘 잘못했길래 그럴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난 초등학교 때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때로는 순수해서 어른보다 잔인하기도 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원만하지 않았던 관계로 인해서 혼자 버스에 앉아가던 어린 시절의 나였다.


 가장 성장에 영향을 많이 끼치던 그때 그 시절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성향 때문인지 남들의 기분을 잘 알아채고 거기에 잘 맞추는 성격을 지니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렇다 보니깐 나의 기분을 챙길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맞추려고 고군분투하고 혹시나 책잡힐 일은 하지 않기 위해서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며 상대의 부정적인 평가를 두려워했다.

 그러다 보니깐, 나 자신이 내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었다. 정작 나를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은 나도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살아온 환경이 같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한데, 환경이 다르면 더 어려운 법이니깐 말이다.

 

그래서 늘 부러웠다. 난 나조차도 날 이해하지 못하고 품어주지 못하는 데 , 날 이해해주는 사람이 나에게는 있었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상대가 있는 게 참 부러웠다.


  나한테 그런 사람이 없더라도, 내가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해서 노력하더라도 돌아오지 않는  마음이 아플 때도 있었고,  나는 그런 사람이 없을까 싶어서 외로워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모든 감정조차 지겹게 흘려보내는 중이다. 있는 그래도 사랑받을 수 있는 기대를 저버리니, 왜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을까에 대해 생각하는 내가 지겨워지고 그러니 쓸쓸하기는 해도 상처는 덜 받는 것 같다.


 그래서 난 기대를 버리기로 했다. 이런 생각이 합리화일지라도 이것이 덜 상처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랑받을  있다는 기대로 노력하고 기대해서 상처 받는 것보다 기대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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