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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진 Jan 16. 2022

공황장애, 병원선택 기준

신경정신과도 나에게 맞는 곳이 있어요.


세상의 많은 것들이 공격적으로 다가오는 날이 있어요. 유난히 마주한 사람마다 뾰족하게 날이 서있는 그런 하루, 세상에 내동댕이 쳐져 있던 시간을 견뎌낸 나를 보호해 주고 싶어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세상과 거리 두기를 합니다. 상처로 남은 말들을 이불 속 어딘가에 깊이 묻어두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평소보다 길게 잠을 자고 나면 그 순간의 감정이 가라앉고 좀 나아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게 괜찮다고 생각한 하루하루가 쌓이고 어느새 눈치 없는 말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굳은살이 생겼다고 생각했을 때, 공황이 찾아왔어요.






수업을 들어가는 도중, 복도에서 갑자기 숨이 막히고 손이 떨렸어요. 학생들이 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지나가는 선생님께 보강을 부탁드리고 덜덜 떨리는 발을 끌며 교무실로 향했습니다. 


"선생님, 제 몸이 이상해요."

그리고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어요. 


꽉 조이는 심장의 고통, 헉헉거리는 이상한 호흡, 덜덜 떨리는 손... 급하게 처방받은 약을 입에 넣으며,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주변에 계신 선생님들께서 의자에 앉혀주시고, 옆에서 같이 호흡해 주셨지만 좀처럼 몸은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렇게 공황과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이고 공황발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급히 다니던 대학병원의 심장내과를 방문하였고 '공황발작' 같다는 소견을 듣고 신경정신과로 진료를 바꿨습니다.





신경정신과?!


급성 스트레스성 공황발작,


남편이 알아봐 준 신경정신과 병원으로 옮긴 저에게 주치의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에요. 전형적인 공황발작 증상이라 하셨어요. 그 후로 2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치료 과정 중에 있지만,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어요.


제 인생의 첫 번째 나이테가 결혼이었다면, 두 번째 나이테는 공황이 발병한 시점이에요. 나이테가 생길 때마다 후퇴한 듯 보였지만 결국은 내적 성장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신경정신과라는 이름에서부터 오는 거부감,


살기 위해서 병원을 찾았지만, 병원에 갈 때마다 용기를 내야 했어요. 약이 없으면 살 수가 없고, 병원 대기실에 있는 동안 진료가 끝나고 나온 뒤에는 늘 불안이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저를 짓누르곤 했어요.



지금 주치의 선생님은 4번째로 만난 분입니다.


첫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교육청 교원돋움과에서 추천해 주신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제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인지행동치료법은 그때의 주치의 선생님과 함께 연습한 것들이에요. 때로는 공감과 수용을 때로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직면으로 저를 치료해 주셨고, 저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좋아졌어요. 공황장애 발작 횟수도 줄기 시작했고, 삶의 의욕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치의 선생님께서 정말 잘 되어서 병원을 옮기게 되었어요. 선생님과 헤어지기 싫다고, 아무리 멀어도 그 3차 병원까지 가겠노라고 장담을 했어요. 


그러나 갑자기 코로나19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주치의 선생님이 계신 곳까지 운전을 할 수 없었고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너무 두려웠어요. 예기 불안이 심해지면 공황발작이 나타났기에, 고속버스로 이동하는 도중 발작이 일어날까 봐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약이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다니던 병원의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어요.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분명 교권침해로 인해 공황발작 증상이 발생했음에도 공무상요양승인으로 공황장애가 인정받지 못했어요. 발작 이후 4개의 병원에서 6개의 진단을 받고 요양승인을 신청했으나 단 한 건만 인정되고 모두 기각 처리되었어요. 그래서 재심 청구를 한 저에게 세 번째로 만난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재심 청구요?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공감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상한 사람을 대하는 듯한 의사선생님의 질문이 굉장히 아팠어요.



"선생님은 모든 환자들을 이해하시나요?"

"이해할 때도 있고, 이해 못 할 때도 있지요. 근데 이렇게까지 할 정도인지 이해가 안 되네요."

"선생님의 이해를 바라지 않아요."






신경정신과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상담보다 더 꺼려 하는 병원, 그리고 약물. 신경정신과 약물에 대한 편견. 약을 먹으면 사람이 이상해진다는 카더라 소문. 신경정신과 약을 먹으면 병든 닭처럼 계속 잔다는 이야기.


심리적 문턱이 높은 신경정신과이지만 저는 약이 꼭 필요했기에 3주에 한 번씩 있는 병원 진료와 처방해 주시는 약을 잘 먹는 모범 환자입니다. 그러나 저도 병원에 가기 전, 감정이 뒤섞여서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를 마시고 걷기 명상을 하는 등 반복해서 하는 루틴이 있었어요. 


여전히 아픈 저에게 의사 선생님의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엄청 큰 상처가 되었고 이후로 병세는 더 심해졌어요. 


세상에 이해받지 못해서 아픈 나를 그래서 병원을 찾은 나를, 의사 선생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 다른 의사와 달리 신경정신과 전문의에게 기대하는 심리적 이해는 더 높다고 생각해요. 그전 주치의 선생님과 너무도 다른 권위적인 의사를 마주하고 저는 병원을 옮겼어요. 


교육청에 연락해서 병원을 옮기겠다는 허락을 받았고, 전 주치의 선생님처럼 인지행동치료를 지향하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2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에게는 에너지가 없어요. 사실 병원을 검색하고 옮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옮길 때 챙겨야 하는 검사 서류들, 그동안 했던 아픈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하기 시작하면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자신에게 맞는 병원을 꼭 선택하시라고, 너무너무 힘들지만 병원 쇼핑을 하시라고 권합니다. 단 돈 만 원짜리 물건을 인터넷에서 구매하면서도 가격비교를 합니다. 하물며 나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더욱 정성을 들여 병원을 검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4분의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만난 후,
병원 선택의 기준



1. 평균 진료시간이 어느 정도 인가?


전 주치의 선생님과 지금 주치의 선생님은 보통 30분 동안 상담을 해주십니다. 만약 이벤트가 있었던 시기라면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을 진료받기도 해요. 대기시간이 2시간에서 5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와 맞는 선생님께 진료를 받는 게 좋습니다. 



2. 병원에서 약 조제가 가능한가?


의약분업에서 제외되는 곳이 신경정신과 의원이지만 병원에 따라 약을 처방만 하는 곳도 있어요. 특히 2, 3차 병원의 경우가 그래요. 자신의 질병이 혹시라도 노출되는 것이 싫으신 분들은 병원에서 약 처방과 조제가 모두 가능한지 알아보세요.



3. 전문의가 인지행동치료법, 수용 전념 치료법 등 최신 이론을 적용하고 있는가?


신경정신과 질병은 마음의 병이 신체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질병이에요.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가 안되고 위경련이 오듯이 공황장애도 극도의 스트레스인 트라우마로 인해 죽음과 같은 고통이 발작의 형태로 몸에 나타나는 질병이에요. 공황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만으로는 안돼요. 에너지가 전혀 없고 발작이 심한 시기에는 약물이 필요하지만, 그 이후에는 다른 난치병이 그렇듯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과 노력이 굉장히 중요한 질병이에요. 저는 약물을 줄이기 위해 인지행동치료법 외에는 신경전달물질의 원활한 분비를 위해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있어요. 운동을 통해 호르몬 분비의 촉진과 생기 있는 몸의 순환은 약물을 극적으로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4. 전문의 선생님의 태도가 공감적인가?


저는 사실 권위적인 사람과 많이 안 맞아요. 의사선생님들 중에 환자들의 알 권리를 존중해 주지 않는 분을 만나면 저는 그 병원에 다시는 안 갑니다. 저는 질문도 많은 편이거든요. 제 병에 대해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진료받으며 질문을 많이 던져요. 그런데 그런 질문에 대답을 안 해주시고 귀찮아하시는 의사선생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특히 마음이 아플 때는 사람이 위축되고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의사선생님께 거절의 경험을 받게 되면, 바닥을 치다 못해 땅굴을 파기도 합니다. 집에서 가깝거나 유명하다고 해서 이런 병원을 다니고 있다면 당장 병원을 바꾸시라고 권해드려요. 신경정신과는 환자와의 라포 형성이 굉장히 중요한 진료과라고 생각합니다. 



5. 임상심리사가 있는가?


고가이긴 하지만 임상심리사를 통해 심리검사 및 평가를 하고 보고서를 받아들면, 자신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검사 결과가 나의 전부가 아니라 지금의 상태라는 것도 받아들이게 되어요. 나는 지금 아픈 상태이다. 병원에 가고 약을 먹는다고 해서 나의 병을 인정하는 게 아니에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때야말로 진정으로 질병과 동행하는 시간을 수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임상심리사에게 심리검사를 한 번쯤은 받아보라고 권합니다. 



6. 그 외 기타 시설, 대기실, 주차 등


병원 시설은 지쳐있는 환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때문에 방문할 때의 부담을 줄일 수 있지요. 저는 집에서 먼 병원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주차장이 있는 병원을 선택했어요. 



암, 치매,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충격에 휩싸이고 또 나에게 맞는 병원을 찾습니다. 공황장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잘 맞는 병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스스로를 치유하는 힘을 안내합니다, 정윤 진 작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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