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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 번째 재생목록 Apr 21. 2021

[스위트홈] 입체적 캐릭터인가, 설정 붕괴인가

  입체적인 캐릭터는 지루하지 않고, 시청자들의 능동적인 가치판단을 이끌며 극에 재미를 더한다. 대표적으로 <비밀의 숲>의 이창준(유재명 분)이 있다. 이창준은 선한 동기를 가지고 악한 행동을 한 인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악인인지 의인인지 평가가 갈리지만 드라마 종영 후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창크나이트'라는 별명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작품에서 인물의 성격이 변화한다고 해서, 혹은 다면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꼭 입체적인 캐릭터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드라마 시청자들이 흔히 졸작의 요소로 뽑는 '캐릭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개성 뚜렷한 인물들의 매력, 하지만 아쉬움을 남긴 변화에 대한 개연성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의 캐릭터들은 매력적이다. 저마다의 사연과 그에 어울리는 개성 있는 성격을 가진 조연들은 때론 짜증을 유발하는 빌런이 되기도 했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했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이 눈에 띈다. 그동안 한국 재난물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흔히 약자로, 혹은 극적인 상황에서 집단을 위기에 몰아넣는 '민폐 캐릭터'로 그려져 왔던 클리셰를 깼다. 능력을 가지고 주체적, 적극적으로 위기 해결을 주도하며 '사이다' 역할을 도맡았다.

공개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이경(이시영 분) 캐릭터

  하지만 캐릭터들이 <스위트홈>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는데, 극 중 인물들의 성격 변화가 입체성과 설정 붕괴 사이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정이 붕괴된 캐릭터와 입체적인 캐릭터를 가르는 차이는 무엇일까. 개연성이다. 캐릭터가 입체적인 경우는 대부분 한 인물의 일련의 사건을 통해 변화하거나 그가 가진 의외의 면모가 시청자들에게 드러나는 경우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물의 성격에 시청자들이 충분히 공감 가능하다면 입체적인 캐릭터가 된다. 이를 위해서는 그 변화의 계기를 서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설명해야 하고, 감정선과 행동을 이해시켜야 한다.


공감보다는 의문


  <스위트홈>에서는 유독 인물들의 성격 변화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 변화를 설명해주는 서사가 빈약해 시청자가 캐릭터의 행동에 공감하기보다는 '갑자기?'라는 의아함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아쉬움이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현수(송강 분)와 은혁(이도현 분)이다.

  주인공 현수는 과거 사건의 트라우마로 인해 삶에 대한 의욕을 잃는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은둔생활을 하던 현수는 2화에서 괴물에게 위협을 받는 어린 남매를 구하기 위해 문밖으로 나가 목숨을 걸고 괴물과 맞설 결심을 한다. 이 결심은 앞으로 이어질 전개의 초석이 되는 엄청난 계기이자 주인공 현수의 첫 번째 각성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장면에서 현수가 했을 엄청난 내면의 갈등을 시청자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현수는 다만 머리를 감싸고 잠시 괴로워한 후 바로 변화할 뿐이다.

주인공 현수의 각성은 <스위트홈>의 주요한 관전 포인트다

  은혁은 명석한 두뇌와 빠른 상황판단력으로 주민들을 이끄는 인물이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주민들을 위험에서 구하기도 하지만 비인간적일 정도로 냉철한 인물이기도 하다. 은혁은 괴물화의 과도기에 있어 죽지 않게 된 현수를 무기로 이용하며 위험한 일을 모두 현수에게 떠맡긴다. 4화에서 두식과 아이들을 구하러 가는 현수에게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두식이 메인이고 어린 남매는 이 작전의 서브일 뿐이니 상황이 나쁘면 아이들은 버리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이런 은혁도 서사가 진행되면서 주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하게 되는데, 충수염 수술이 급하게 필요한 지수와 생존에 직결되는 식량 사이에서 지수를 택하는 장면이 가장 대표적이다. 가장 지켜야 할 약자인 아이들도 필요에 따라 버리라고 지시했던 전과는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다. 감동적인 장면이긴 하지만 은혁과 주민들 사이에 이렇다 할 정서적 유대관계가 형성된 것 같지 않아서 이러한 변화는 갑작스럽다.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은혁 캐릭터의 변화

  메인 캐릭터인 현수와 은혁이 인간성을 회복하며 변화, 성장하는 과정은 디스토피아적인 상황 속 휴머니즘적인 메시지를 던진 이 드라마에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이다. 하지만 설명되지 않고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인물과 사건 전개는 이 중요한 장면들을 싱겁게 만들고, 의문을 품게 만들어 몰입을 방해한다.


  소설가 박완서는 '작가의 눈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한테 미움받은 악인한테서도 연민할 만한 인간성을 발굴해낼 수 있고, 만인이 추앙하여 마지않는 성인한테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작가의 눈이다'라고 말했다. 악인의 인간성, 성인의 약점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몰입감 있는 스토리를 위해서라면, 발굴하는 것을 넘어서 시청자도 같은 눈으로 보게 만드는 힘도 찾아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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