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소설과 에세이
2020년의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드디어 해 보자! 이 얘기를 하려다가 앞의 두 글을 써 버렸다.
일단 목록부터 나갑니다..
*과 **과 ***과 ****표시는 추천 정도로, 별이 많을수록 추천 강도가 올라감! 작품성과 상관없이, 오롯이 현재 내가 남들에게 권하고 싶은 정도!
1. 올해의 소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목소리를 드릴게요** 정세랑
2. 올해의 에세이: 깨끗한 존경*** 이슬아
아무튼 떡볶이** 요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정만춘
3. 올해의 (에세이 외) 논픽션: 21세기 시민혁명**** 마크 엥글러, 폴 엥글러
이 분야는 책이 많으니까 굳이 더 세부적으로 나눠보자면.. 세부 주제별 책 순서는 추천 정도가 아니라 (추천 정도는 별표) 각 주제에 관심이 있을 때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을지를 생각해봐서 정했다. 하지만 당연히 꼭 이 순서로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것!
기후변화와 불평등의 심각성과 사회구조적 문제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On Fire: The Burning Case for Green New Deal*** 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이렇게 심각한데 우리는 왜 변하지 않을까?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의 심리학: 우리는 왜 기후변화를 외면하는가**** 조지 마셜
21세기 시민혁명: 비폭력이 세상을 바꾼다**** 마크 엥글러, 폴 엥글러
This Is Not A Drill: An Extinction Rebellion Handbook*** Extinction Rebellion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사울 D. 알린스키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과 아이디어들
오늘부터의 세계: 세계 석학 7인에게 코로나 이후 인류의 미래를 묻다**
안희경 / 제러미 리프킨, 윈톄쥔, 장하준, 마사 누스바움, 케이트 피킷, 닉 보스트롬, 반다나 시바
도넛 경제학: 21세기 경제학자를 위한 7가지 사고방식*** 케이트 레이워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뤼트허르 브레흐만
구체적인 사회 불평등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책 (그린 뉴딜)
글로벌 그린 뉴딜** 제러미 리프킨
Climate Crisis and the Global Green New Deal*** 노암 촘스키 & 로버트 폴린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본다면
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사피엔스*** , 호모 데우스**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4. 올해의 실용서: 놓아버림*** 데이비드 호킨스
The Writing Workshop: Write More, Write Better, Be Happier in Academia*** Barbara W Sarnecka (이건 아직 사실 한참 안 읽어서 다 읽은 책 계산에 안 들어감)
오늘 또 일을 미루고 말았다* 나카지마 사토시
올해의 소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올해의 책의 시작을 “소설”로 할 수 있다니 감격스럽다. 올해 소설보다는 논픽션을 월등히 많이 읽었고 사회, 경제, 기후변화에 관한 그 수많은 논픽션 책들이 내 사고를 빚어나갔지만, 불특정 다수를 위한 올해의 책 하나를 고른다고 하면 <시선으로부터>****를 고를 것 같다. 읽는 사람의 관심사에 영향을 덜 받을 것 같은? 다만 아직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권할 수 있다는 것은 아쉽다.
올해는 한국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한 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사실 소설은 겨우 세 권을 읽었다. 그래도 지난 9년간은 이전 글에서 언급된 소설 5권과 <연을 쫓는 아이>*, <마션>*** 등 7권 정도만 읽은 것 같으니 그 평균(연 0.78권)에 비하면 연 세 권의 책은 거의 네 배나 된다 (마션은 정말 엄청나게 강추. 영화를 보고 책을 봐도 좋았다. 책이 캐릭터도 내용도 훨씬 더 풍성하고 영화에서 나오지 않은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다만 책을 보고 영화를 다시 보니 재미가 없어서.. 책 보다 영화를 먼저 보라고 추천하고픈 책?). 비록 <보건교사 안은영>***과 <목소리를 드릴게요>**까지 해서 정세랑 작가의 소설만 연달아 세 권 읽은 편식이었지만, 소설을 거의 안 읽고, 한국소설은 더더욱 안 읽은 나에게 정세랑 작가의 책은 한국 소설에 담뿍 호기심을 가지게 해 주었다. 아직 다 읽지 않은 <피프티 피플>과 <옥상에서 만나요>도 앞에 (무료 공개) 부분은 단숨에 다 읽었고 내년엔 꼭 사서 마무리할 거다.. 다만 사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릴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당장 읽고 싶은 책이 쌓여있는 지금은 조금 참기로 했다.
안다, 이제 와서 정세랑 작가 호들갑 떠는 거 굉장히 늦은 거라는 거, 게다가 겨우 세 권을 읽고! 하지만 이제야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에 매료되었다고 해서 늦었으니 조용히 있을 필요 없는 것처럼 맨날 떠들고 다닐 거다. 한동안 각자 읽는 책을 가져오는 책모임을 했었는데 정세랑 작가 팬이 은근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심을 담아 정세랑 작가 특집 모임도 두 번 했는데 같이 호들갑을 떨 수 있어서 정말 재밌었다. <시선으로부터>를 그냥 추천해 준 게 아니라 선물까지 해서 정세랑 월드로 입문하게 해 준 친구에게 무한히 감사한다. 어떤 책이 좋고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한다면 좋다고 홍보만 하고 다닐게 아니라 직접 사서 보내면 되는구나도 깨닫게 해 준 친구다.
사실 이를 교훈 삼아 엄마에게 생일 선물로 <시선으로부터>를 보냈는데 아직 별다른 감상평은 못 들었다. 요새 책모임, 아티클 읽기 모임 등을 많이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생판 타인들과 매주 만나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하는데, 엄마 아빠랑은 날씨는 어떤지, 밥은 잘 먹고 건강한지 하는 대화밖에 하지 않는 게 아쉽다고. 그래서 엄마 아빠와도 책모임을 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아빠는 책을 안 좋아하니까 책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먼저 물어볼까 한두 달째 망설이고 있다. 엄마와 내가 관심이 있는 책은 다를 수도 있고, 가볍게 시작하기엔 하나의 책을 같이 읽는 것보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나누는 게 좋은데, 한동안 진행하던 그 각자의 책 읽기 모임을 하필 한동안 못하고 있기도 해서.. 엄마가 고른 책도 궁금하고 그 책들에 대한 엄마의 감상도 궁금하다. 내년엔 시작해 볼까 싶지만 이미 벌인 일이 너무 많아. 심지어 남이 시작한 프로젝트들도 재밌어 보여서 얘기하다가 스리슬적 여기저기 들어가 버렸어. 하지만 각자의 책 읽기 모임은 사실 준비할 것도 없고, 1시간 반 정도만 있으면 되는 거니 스케줄을 잡아보자!!
아 <시선으로부터> 책 소개를 해야 하나? 괜히 말을 보탰다가 책에 대한 감상을 망칠 것 같아 우려된다. 아무 말이나 해보자면, 이 책에 가족 3개가 나오는데 그 캐릭터들이 다 엄청 쿨(?)하면서 열정적이고, 정치적 공정성이라는 면에서 꽤나 이상적이어서 부럽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이상적이지 못한 현실적인 면들도 보여서 정감이 갔다. 그래서 실존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존했으면 하고, 그런데 또 너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아 모르겠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 이야기”라는 작가의 말로 갈음하자.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말 아~~~~ 무 생각 없이 아주 신나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구매에서 완독까지 2시간 반이 걸렸는데, 밤에 자기 전에 조금 읽고 자기로 하고 책을 펴면 수면 시간이 줄어드는 낭패를 볼 수 있으니 낮에 혹은 이른 저녁에 읽기 시작하자. 다 읽으면 바로 나오는 작가의 말이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로 시작해서 아 역시 그렇구나 하는 통쾌함(?)을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데 등장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나 묘사에서 미묘하고 불편한 구석이 없어서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정세랑 작가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한국 현대 소설들을 읽으며 그런 점들이 불편해서 선뜻 손이 안 갔던 것 같기도 하다 (20세기 초반의 소설들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단 하나만 읽고 더 찾아 읽지 않은 것은 100%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근데 성이 무라카미인데 왜 한국에선 하루키라고 부르지? 무라카미 류가 있어서 그런가).
물론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회가 이상적이고 모두가 해피엔딩이라 불편한 구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는 부조리함으로 가득하지만 그 사회와 등장인물들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작가의 시선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단편집으로 그중에서 나는 <리셋>을 가장 좋아하는데, 갑자기 거대 지렁이가 나타나서 석유화학 기반 물질들을 집어삼킨다. 사실 지렁이들이 딱히 “인류 문명”을 타깃으로 한 것은 아니고 석유화학 기반의 물질들만 먹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플라스틱, 합성 섬유, 아스팔트 등) 그게 인류의 기반을 다 파괴한다는 게 참 새삼스럽게도 놀랍다. 그리하여 지금의 붕괴되고 난 이후의, 어떻게 보면 윤리적으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과 지렁이가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시기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나오는데 몰입력이.. 장난 아니다. 현재 인류가 자연뿐 아니라 인류 문명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는 직접적인 표현으로도 볼 수 있어 불편하기도 하지만 통쾌하기도 하고.. 책에는 이러한 대멸종과 그 이후의 세계를 다룬 다른 단편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정세랑 작가가 강연에서 한 말을 소개하고 싶다.
“환경에 대한 소설을 쓰면 어떤 사람들은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문학에서 그런 것을 읽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교조적인, 프로파간다 문학이라고요. 그러나 세계가 절멸을 향하고 있을 때, 환경에 대해 쓰지 않는 쪽이 더한 기만일지도 모릅니다.” - 정세랑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서울 국제 작가 축제 (SIWF) 폐막 강연
올해의 에세이: <깨끗한 존경> 이슬아
이슬아 작가가 네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글을 묶은 <깨끗한 존경>***은 인터뷰이도 인터뷰어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루기 쉽지 않고 불편할 수도 있는 소재의 이야기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세상과 다루는 대상에 대한 존중감을 가지고 풀어내서 그런가. 아주 잘 읽히지만, 한 번에 네 명의 이야기를 다 읽기에는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하루에 한 편 정도씩 읽었고 사실 마지막 편은 아직 다 못 읽었는데 예스 24 북클럽에서 없어져버렸다.. 역시 사서 보라는 이야기일까. 가장 처음 인터뷰인 정혜윤 PD와의 인터뷰는 내가 세월호 사건과 그 뒤의 담론과 아직까지도 해결 못한 사건들에 분노하면서도 그게 힘드니까 아예 보지도 않고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분명해져서 먹먹해졌다.
“그 이유는 자기가 겪고 있는 게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에요. 어지간히 고통스러워야 너도 한 번 겪어보라고 할 텐데, 인간으로서 그 말만은 차마 못 하겠는 거예요. 그분들은 ‘당신도 당해 봐라 ‘가 아니라 ‘당신은 그런 일을 당하지 마세요 ‘라고 말해요. 저는 이것보다 숭고한 인간의 마음은 없다고 생각해요. 유족들은 말하죠. 재난이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 ‘고요. 저는 사람들이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을 수 있다면 세상은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말 뒤에 있는 세계, 그 고통을 생각하면 사회뿐 아니라 우리의 차가워진 인간성도 변해요.” - <깨끗한 존경> 이슬아 x 정혜윤 편
그 외에 <아무튼 떡볶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도 읽었는데 세 권 다 슉슉 잡으면 하루 이틀 만에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마냥 가벼운 얘기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뒤의 두 책은 어떻게 보면 비전형적인 삶을 뚝심 있게 즐겁게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쓴 글이라, 이런 책이 더 많아지면 다양한 삶의 방식이 더 쉽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금방 찾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튼 떡볶이>는 떡볶이에 대해 쓴다기보단 떡볶이에 대한 책을 쓰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내용인데 팟캐스트에서 작가가 이 책이 쉽게 읽힌다고 사람들이 글도 쉽게 쓴 거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힘들게 썼다 라고 하기도 했으니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마다 종종 다시 읽어야겠다.
올해 읽은 얼마 안 되는 소설과 에세이를 보니, 불편할 수 있는 주제를 그래도 안전한 작가의 시선으로 안심하고 볼 수 있는 것에 위안을 얻었던 것 같기도 하다. 위에 정세랑 작가가 환경에 대한 소설이 교조적이지 않냐고, 불편하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했지만, 나는 내년에는 아예 대놓고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Cli-Fi를 읽으려고 한다. Cli-Fi는 Climate fiction의 줄임말인데 공상과학 소설 Science fiction를 Sci-Fi라고 하는 것처럼 기후 변화를 주요 모티브로 삼은 소설! 공상과학 소설에 비하면.. 사실 fiction이 아니라 사실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소설은 원래 그런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이야기로 다루는 게 아닌가? (소설 안 읽어서 소설에 대해 1도 모르면서 소설에 대해 뭔가 아는 척)
일단은 대망의 "2020년의 책" 마지막 글, "올해의 논픽션" 목록과 리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