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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혜 Feb 08. 2024

깊이 있는 연구와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

박사과정을 통해 얻은 점 3


내가 박사과정을 통해 얻었다고 생각한 중요한 점들 중 두 가지는 이전 글에서 소개했고 이번 편에서 소개할 세 번째는, 어떻게 보면 박사과정의 목적이자 본질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이다.


1. 나의 성향과 호불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됨

2. 박사과정 하면 어떨까, 학계는 어떨까 하는 미련 없어짐

3. 깊이 있게 하는 연구의 중요성, 비판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약간 체화됨

4. 사이드 프로젝트로 다양한 경험과 즐거움을 얻음




3. 깊이 있게 하는 연구의 중요성, 비판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어느 정도 습관이 됨


나도 박사과정 시작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확실히 알게 된 나의 성향은 앞의 다른 글에서 말했듯이 넓고 얕게 가는 것에 가깝다. 깊게 파는 것 자체가 싫어서 얕게 파는 건 아니고, 한 가지 주제만 오래 다루는 것을 답답해하는 편이라 다양한 주제의 일을 하고 싶은데, 그러면 아무래도 같은 시간 동안 한 가지를 깊게 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얕게 보게 되니까. 


그런데 본의 아니게 박사과정을 통해 한 주제를 오랫동안 깊게 파다 보니 지루하거나 답답할 때도 있지만 연구에서 무언가를 깊게 제대로 파고 분석하는 게 진짜 중요하긴 하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래 하는 것 자체의 중요성이라기보다는.. 연구든 무슨 일이든 충분히 깊게 고민하는 것, 어떤 자료든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비판하겠다는 게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것), 자료의 신뢰할 만한 출처를 명시하고, 그리고 내 연구는 치밀하게 하고 또 그 과정과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연구라는 건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를 내가 접하는 정보를 분석하는 데 사용하고, 내가 하는 연구나 일에도 적용하는 것! 연구에서 특히나 중요한 것은 이미 나와있는 기존의 연구(=선행 연구)들을 아주 아주 아주 많이 보고, 이해하고, 분석해서 이들이 하지 않은 연구,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는 연구, 더 앞으로 나아가는 연구를 하는 것이다. 이미 누군가가 한 연구라면 다시 할 필요가 없는데, 선행연구를 충분히 보지 않았다면 이미 있는 연구를 다시 하거나, 아니면 앞에서 이미 증명된 정보나 대세를 모르고 엉뚱한 데서 삽질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 그렇게 해서 의외로 기발한 연구가 나올 수도 있지만 아주 낮은 확률일 듯). 


게다가 선행 연구를 볼 때 있는 그대로 다 옳다고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다. 기존의 연구는 peer review를 하는 과학 저널에 게재된 것이라면 나름 엄밀한 검증 절차를 거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세세한 데이터 부분에서 충분히 검증이 안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남의 연구를 볼 때도, 내 연구를 저널에 개제할 때도 경험함)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출처 확인과 참고문헌의 중요성도!!! 뭐 쓸 때마다 문장마다 이거 내용 근거가 뭐고 출처가 뭔데 하는 코멘트를 하도 받아 보니, 내 일기나 에세이가 아니라면 뇌피셜은 하나도 쓰면 안 되고 모든 문장 뒤에 출처를 달고 싶은 습관이 생겼다. 출처 달 거 없으면 불안하고.. 다른 사람들 글 보면 근거가 뭐지? 싶고. 일단 없으면 다 뇌피셜인 거니까. 하지만 나도 그렇고 다른 연구자들도 그렇고 일단 머리에 있는 거, 떠오르는 내용 쓰고 그거에 맞는 출처를 찾는 경우가 많다.. 보통 어디서 들어서 그렇게 알고 있는 거긴 하지만, 이렇게 출처 찾다가 아닌데, 해서 바꾸는 경우도 당연히 있고.


아무튼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남의 연구를 엄청 많이 읽고, 남의 연구의 구멍도 발견하고, 내 연구도 하고, 내 연구의 구멍도 엄청나게 많이 발견하고 수정하고.... 하는 과정을 오래 하다 보니 아 깊이 있게 보는 게 진짜 중요하구나 하는 점을 알게 되고 몸에 약간 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남의 연구나 보고서나 기사 등에서 선행연구 분석이나 방법론의 적용이나 자료나 정보의 출처 표기가 부실하게 되어 있으면 그게 눈에 확 띄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남의 작업물이든 내 작업물이든 보면서 아 뭔가 모자란데, 어설픈데 하는 게 보다 분명히 보이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내 연구가 다 바로 그 기준을 충족하게 된 것은 아니다ㅠㅠㅠ 뭐가 잘못되었는지나 어설픈 지가 더 잘 보여서 더 괴롭지만 바로바로 다 철저하게 적용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슬픈 사실. 


그래도 내가 뭘 잘못했거나 부족하게 했는지도 모른 채 우기는 일은 줄어들 것 같고, 다른 연구나 컨설팅 등의 피드백을 할 때 부족한 점을 잡아낼 수 있고, 분명 시간 관계상 깊게 못 들어갈 부분들이 있겠지만 어떤 점들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어떤 점들을 쳐내고 해서 보다 완결성 있는 작업물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한편으로는… 내 연구의 전과정평가 (LCA, life cycle assessment)를 위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수많은 논문들을 부록과 자료 요청까지 해가면서 읽어본 결과 이렇게 간단한 데이터로 이렇게 간단하게 분석했다고? 싶은 연구들도 많고, 내가 논문과 데이터를 내도 데이터는 아무도 자세히 안 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깊이 있는 연구의 중요성을 알기 전에 수행한 내 석사논문의 LCA 분석은 말할 것도 없는데 그때 당시 나의 지도 연구원은 그거 괜찮다고 했고 그게 독일 정부 프로젝트 보고서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수많은 곳에서 이렇게 대충 실행된 연구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섬뜩하다. 


특히나 요새 LCA는 기업들에서도 컨설팅에서도 엄청 많이 쓰이는데 연구보다 더 빠른 시간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 컨설팅이라면.. 물론 제대로 잘하는 연구자들도 컨설팅 회사들도 엄청 많고 ISO 인증을 받는 LCA는 외부 전문가 리뷰어들이 피드백을 해야 하니까 괜찮겠지만, 회사들이 내부적으로 하는 LCA는? 요새 컨설팅 회사들에서 간단한 fast LCA도 많이 한다던데. 물론 기업들에서 수많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할 때 엄청 엄밀하게 다양한 데이터의 불확실성 분석과 sensitivity 분석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괜히 눈이 높아져서 의구심이 늘어난다. 이게 LCA라는 분야만이 아니라 연구의 여러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사실 이번에 새로 출근하게 된 회사에서도 1차 인터뷰 이후에 2차 인터뷰를 대신하여 하루 Trial day라고 일을 했는데.. LCA 분석을 좀 간단하고 덜 엄밀하게 하는 것 같았다. LCA가 메인인 회사는 전혀 아니고 프로젝트의 일부로 약간 들어가는 거였고 심지어 나의 포지션도 데이터 분석이 아니고 프로젝트 매니저지만. 석사 때는 뭐가 이상한지도 몰랐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는데 그냥 이렇게 넘길 수 없겠어.. 



박사과정을 통해 체화하고 습관화하게 된, 연구를 제대로 하는 이런 방법은, 꼭 연구가 아니라 기존의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어떤 일에도 적용이 되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고 이를 적용하는 것. 그리고 기존의 연구나 자료들을 제대로 해석할 힘을 기르는 것. 특히나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정보의 시대에 유명한 사람이 얘기해서, 유명한 매체가 얘기하니까 휩쓸리는 게 아니라 신뢰할 만한 자료에 기반한 분석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만들어내는 데에는 엄청 유용한 능력이자 습관이라고 생각하니 박사과정, 은근히 인생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박사과정이란 앞으로 혼자서 연구를 기획하고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면허증 같은 것. 1편에서도 박사과정이 어떤 면허, 라이선스로 작용하기에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썼는데.. 그게 일반적으로 학위의 권위에 대한 면허라면, 이번 편에서 다룬 내용은 보다 실무에 도움이 되는 면허로서의 기능이랄까. 


시리즈 마지막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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