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을 통해 얻은 점 1& 2
앞선 글에서, 다시 돌아간다면 박사과정 굳이 안 해도 되었을 것 같다, 나의 박사과정의 연구랑 나는 이런저런 면에서 잘 안 맞았다는 글을 썼었는데. 그럼 나는 박사과정으로 얻은 게 아무것도 없을까? 뭐 하러 어렵다면서 끝까지 한 걸까?
사실, 박사과정을 하면서도 느끼고 끝나고도 느끼지만, 박사과정을 통해서 얻은 게 엄청 많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이 그 당시에도 큰 즐거움을 불러오기도 하고, 나의 다음 행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안 했다면 다른 경험과 과정에서는 또 다른 것들을 얻었겠지만, 박사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의외로 꽤 많다!
내가 박사과정을 통해 얻은 점들은 크게 아래 네 가지로 정리된다.
1. 나의 성향과 호불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됨
2. 박사과정 하면 어떨까, 학계는 어떨까 하는 미련 없어짐
3. 깊게 들어가는 연구의 중요성, 비판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약간 체화됨
4. 사이드 프로젝트로 다양한 경험과 즐거움을 얻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얻을 수 있을 듯한 점도 있지만 (2번이나 3번), 결국에는 꽤나 개인적인 상황과 특성에 기인한 결과인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중요도 순위는 뒤로 갈수록 더 소중한 얻은 점들.
일단, 나는 박사과정 기간 동안 나의 성향과 호불호에 대해 엄청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앞에 글에서 나오듯 나는 내가 하는 일의 결과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일 (=피드백이 가깝고 빠른 일),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일, 팀으로 같이 하는 일, 자율성이 큰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박사과정을 통해 알게 되었다. 즉 이 과정을 통해 나의 일하는 스타일과 나에게 잘 맞는 일에 대해서 전보다 훨씬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일뿐만 아니라 나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사실 이건 다른 어떤 일을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잘 알게 되는 거라서 박사과정에 국한된 이점은 아니지만, 박사과정에서는 왠지 조금 더 빡세게 자기성찰하고 알게 되는 느낌?
나는 교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박사 시작하기 전에도 딱히 없었고 공공 또는 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호불호가 없는 상태이기는 했다.
다만 이 분야에서 보다 전문가가 되고 외국인으로서 잘 살아남으려면 박사학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그 목표는 달성했고, 역시 학계는 내 성향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해 보면서 깨달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박사과정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학계가 일하기 더 좋은 환경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고민은 전혀 할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은 박사과정을 하고 나야만 얻을 수 있는 큰 소득인 것 같다!!
각자 몸담고 있는 분야나 기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박사학위가 없으면 유리천장을 느끼게 되는 분야가 종종 있다 (공공 연구기관에 있다거나, 생명과학/공학 연구 분야에 있다거나 등). 그 기관이나 분야에서 벗어나면 되겠지만 그곳이 나에게 잘 맞는다거나, 아니면 다른 분야나 기관에 있더라도 개인적 성향이나 관심사, 상황에 따라 (주변의 친구나 가족 등의 배경, 외국인인지 아닌지 등) 박사학위를 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늘 있으니까. 또 어느 분야든 박사학위가 있다면 그 사람이 좀 더 그 분야에 권위가 있어 보이게 하는 면허나 라이선스로서 작용하는 점도 분명히 있고.
사실, 한국이든 유럽이든 환경이나 지속가능성 컨설팅, 데이터 분석 분야에서 박사학위가 꼭 필요한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나는 이제 고민할 필요 없으니까 홀가분하다!
박사과정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뒀더라도 비슷하게 미련 없이 홀가분했을 것 같다. 해보니까 이건 진짜 아니었어라고 알 수 있잖아. 결국 나의 박사과정과 주제가 나에게 아주 이상적으로 잘 맞는 스타일의 일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해볼 만은 할 정도의 적합도는 있었던 거라 큰 지연 없이 끝낼 수 있었던 거겠지만.
아무튼, 박사과정이 그 사람의 인생의 지향점으로 가는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는 (교수가 되고자 하는 게 아닌 이상) 그 누구도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떤 (복합적인) 이유에서든 박사과정 시작할 사람은 결국 시작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마다 일단 해봐야, 해보고 끝까지 가든, 중간에 그만두든 직접 겪어봐야만 아는 것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에겐 박사과정이 그런 게 아닐까?
박사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이나 박사 꼭 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그냥 내 기준에서 보기에 아 이 사람은 진짜 연구해야 되는 사람이구나 싶은 사람들도 있지만,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굳이? 해서 꼭 말리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내가 박사과정 적합도 감별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완전히 나의 주관적인 기준에서 아무 근거 없이 느껴지는 타당성 없는 분류임). 그런데 어떤 상황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본인이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나 포함) 어쨌든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시도해 봐야 미련을 떨칠 수 있는 것 같더라는.
음 이렇게 쓰면 박사과정에서 얻은 게 별거 아니어 보이거나, 박사과정의 본질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점들도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보다 그렇지 않은 판단을 더 많이 내리니까..
아무튼 쓰다 보니까 길어져서, 박사과정을 통해 내가 얻은, 어떻게 보면 박사과정의 본질이기에 누구나 박사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고 얻어야 하는 가장 큰 이점 하나와,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지만 박사과정의 본질과는 좀 다른 이점 하나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