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면, 어떤 점들을 고려해서 박사과정을 고를 것인가?
마지막 글로부터 2년, 올해 5월, 드디어 박사과정 졸업을 했다!!
2019년 10월 1일에 시작해서 2023년 5월 31일까지 3년 8개월이 걸렸다. 그 시간을 지나고, 판데믹의 시대도 지나면서 무사히 끝내서 너무 기쁘다!! 자유다!!
졸업한 지 거의 4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신나고 후련하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더, 수고했고, 스스로가 기특하다 싶기도 하다.
이렇게 나름 긴, 대체 기간 내에 끝낼 수 있으려나 싶던 박사과정을 끝내고 보니, 주변 사람들이 그럼 박사과정 할 만했는지, 되돌아간다면 다시 할 건지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나는 과연 박사과정을 왜 시작했지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기도 하고.
안 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니까. 또 다른 내가 있긴 했겠지만.
그리고 안 했으면 미련이 더 남았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일단 박사과정을 마침으로서 전문성은 확실히 깊어진 것 같고, 배운 점도 엄청 많다 (박사과정에서 얻은 점은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소개할 예정).
근데 다시 돌아가서 박사과정을 고른다면 나랑 좀 더 잘 맞는 환경을 고르고 싶기는 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박사과정 프로젝트가 좀 더 큰, 여러 기관이 협력해서 하는 프로젝트의 일부였으면 좋겠다. 또 프로젝트 코디네이팅이나 티칭을 할 수 있는 포지션이라거나. 결국 대체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좀 더 교류를 할 수 있는 포지션이면 좋았을 것 같다. 나는 확신의 내향인이지만.. 일을 할 때는 혼자 하는 일보다는 사람들과 같이 팀으로 하고 주기적으로 피드백을 나눌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동기부여가 잘 되고 재미있다.
주제는.. 생각보다 주제의 중요성이 덜하다는 게 놀랍다. 물론 나의 성향일 수도 있고.. 주제는 일단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을 고르기도 했고. 그런데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고른 주제인데도,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사실 주제에 대해서는 따로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나처럼 이미 주어진 주제를 고르는 경우도 있고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서 그 안에서 또 디벨롭을 해야 하지만), 본인이 처음부터 주제를 제안해서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둘은 아주 완전히 다르니까.
올해 초에 박사과정을 '일'로써 보고 일에 있어서 나에게 중요한 건 뭘까 적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일인지"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그리고 그 다음이 "의미", 그 다음이 "재미".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일이어야 재미도 같이 따라오는 편인 것 같다. 그때의 블로그 글은 아래에.
그 다음이 인간관계, 워라밸, 그리고 돈!
그리고 내가 일하는 조직에 있어서 나에게 중요한 우선순위는 조직문화와 미션을 골랐다.
워라밸과 돈, 그리고 조직문화는 다음 2번 포인트로 연결되는 것 같다. 하지만 조직문화는 박사과정을 고를 때 미리 알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는 하다. 2번 '국가'보다는 오히려 3번 '지도교수'와 더 연관이 있을까.
돈) 이왕이면 프랑스보다는 월급도 더 주는 곳이면 좋았겠다.. 프랑스는 풀타임 계약인데 월급으로 세후 1400-1600유로 정도를 받았다. 뚤루즈는 집세가 비싸지 않았고 (월 400유로 정도), 나는 집순이라서 월 700-1000유로 정도를 쓰고 남아서 저축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풀타임 근무인데 이 정도라고? 해서 좀 억울한 생각이 들곤 했다.
웃기는 게, 처음에 박사 지원할 때는, 박사과정 하는데 월급을 준다고? 학비도 거의 없고 (학기당 200유로 = 30만 원 정도)? 뭐라도 박사과정 뽑아만 주면 좋겠다! 싶었고, 초기에는.. 일을 빡세게 하지 않고 여유롭게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시간을 여유롭게 써서 그런지 불만이 없었는데, 뒤로 갈수록 이건 좀 말도 안 되는데.. 싶었다.
기간) 하지만 박사과정 목표를 4-5년이 아니라 3년으로 잡고 월급도 많이 주는 곳은 덴마크 정도니까. 그런데 4년-4년 반이 걸리더라도 네덜란드에서 해 봐도 좋았을 텐데 싶긴 하다. 지속가능성 분야가 엄청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고, 사람들이 영어 잘해서 티칭이나 연구소/학교 여러 일에 참여할 기회도 많고, 월급이 적당하고, 네트워킹 기회도 많고 등등. 석사 때 네덜란드에서 한 학기 교환학생을 했는데 외국인으로서도 참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네덜란드에서의 박사도 당연히 나름 장단점이 있었겠지만, 누군가가 유럽에서 박사를 한다고 하면 현재 내가 아는 정보 하에서는 네덜란드를 추천하고 싶다!
조직문화?) 특히나 프랑스는 학생들도 교수들도 영어를 잘 못해서.. 잘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팀이나 연구소 기본 언어가 프랑스니까. 다행히 우리 지도교수는 캐나다인이고 (퀘벡 사람이라 본인은 프랑스어가 모국어지만 영어도 원어민 수준) 우리 프로젝트 팀은 프랑스인이 오히려 한 명뿐인 국제적인 팀이었지만 연구소 전체는 프랑스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내 프로젝트 외에 연구소나 대학이나 지역에서 대외활동을 하고 싶다면,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있는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가면 막지는 않지만, 그들이 낑낑대며 영어를 하거나 아예 안 하거나 하는 상황을 겪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그냥 서로 고생하지 말자 하고 안 가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메일도 전부 프랑스어!!! 구글 자동 번역이 잘 되기는 하지만 일단 제목부터 눈에 잘 들어오질 않으니 꼼꼼하게 읽지 않아서 놓친 기회들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조직문화는 사실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이런면에서 inclusive하진 않은 듯.
미션) 아 그리고 우리 연구소는 바이오테크 연구소에 환경평가를 하는 우리 팀이 있는건데.. 전체적으로 많은 연구가 기후변화 대응이나 환경 관련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이걸 트렌디한 주제, 지금 가장 핫한 주제라서 하긴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이나 생태 문제 등에 본질적으로 위기의식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게 석사때와 또 다른 지점이라.. 일상적인 실천에서도 그렇고, 연구에 있어서도 그렇고.. 그래서 내 프로젝트 팀이 어떤 연구소에 속해 있는지, 어떤 학교인지, 그 연구소와 학교에서 나의 관심사가 주력인지 아닌지도 살펴보는게 즐거운 연구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건 나라보다는 학교/연구소의 특성!
워라밸) 이건 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긴 한데 확실히 프랑스는 연휴가 1년에 45~51일 정도고 (같은 연구소라도 계약 주체에 따라 다름. 학교는 보통 이 정도고 교수는 수업만 제때 나가면 아무때나 쉴 수 있음), 주말에 연구소 닫고(실험 등으로 필요시 매주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한다), 밤 9시 되면 연구소 문 닫는 등 (들어올 수는 없지만 나갈 수는 있음. 즉 늦게까지 있으면 쫓아내진 않지만 아주 가끔 순찰을 돌다 걸리면 왜 오래 있냐고 한소리 듣는다고 함) 워라밸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력하긴 했다. 하지만 집에 가서 일을 10시간 하든 16시간 하든 그걸 확인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 교수님은 그러면 오히려 좋아할 듯) 박사과정이라는게 결국 시간 내에 끝내기 위해서 내가 내 프로젝트를 하는거니. 막판에 가면 워라밸을 지키긴 쉽지 않달까. 하지만 박사과정이 아닌 연구원이라면, 본인의 야망의 정도에 따라 워라밸을 매우 잘 지킬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제일 중요한 건 지도교수. 주제보다 지도교수인 것 같다. 주제의 방향성도, 일하는 스타일도, 조직문화도, 워라밸도 많은 부분 다 지도교수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박사생활!!
우리 지도교수는 좋은 사람이고, 나의 졸업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도와주고 미팅도 자주 하고 (격주 1회 혹은 주 1회) 똑똑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있고.. 하지만! 나랑 일하는 스타일이 아주 잘 맞는 것은 아니었고, 초보 지도교수라서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아쉽기도 했다. 더 노련하고 학생들의 관심사나 성향 진로까지도 관심이 있고 지원해 주는 지도교수였다면 정말 최고였겠다. 하지만 이건 거의 유니콘…
그리고 지도교수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면, 직접 석사논문 쓰면서 겪거나, 아니면 박사과정을 한 사람을 통해서 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심지어 석사 때의 경험과 박사 때의 경험이 다를 수도 있고 (기대치가 다르니까), 같은 연구실의 박사과정생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확실하긴 하지만 그 학생의 성향과 나의 성향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나 같은 경우는 석사 때 지도교수는 수업을 정말 엄청나게 잘하셨고 수업이 (LCA, 전과정평가) 내 성향이랑 잘 맞아서 논문 주제를 요청해서 받았는데 너무 바쁜 분이라 석사 논문 때에는 지도가 전혀 없고 다른 연구자분이랑 같이 했고, 어차피 박사 자리가 없어서 그 경험을 살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지도교수는 학회에서 처음 만났는데 발표가 인상적이고 내가 질문을 했는데 질문에 대한 답도 인상적이어서.. 기억해 뒀다가 연락을 하고 지원을 하게 된 건데 나와 다른 박사 동기가 첫 박사과정생이라 다른 학생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그래도 좀 더 알아보겠다고 석사지도를 했던 학생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이 교수를 너무 좋아라 해서.. 좋은 사람인가 보다 하고 안심하고 시작함. 그리고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인 것만으로는 좋은 지도교수가 될 수 없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우리 지도교수도, 이 주제도, 프랑스도 결국엔 다 괜찮은 편이었다. 하는 중에 힘든 순간들이 있어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고. 그만둘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으니까. 과연 제시간에 끝날까? 하는 의문은 늘 갖고 있었지만.
사실 유럽의 박사과정은 한 시즌에 여러 곳 한 번에 지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직장처럼 공고가 나면 수시로 지원하는 거라.. 여러 군데도 아니고 3-4개 지원하고 2군데 인터뷰하고 한 군데 되고 나서 다른 데는 지원도 안 했어서.. 그때 다른데 거기 갈걸 하는 후회는 딱히 하지 않았다. 더 지원해 볼걸 하는 생각은 조금 할 만도 한데 하지 않았다.
다른 박사과정을 선택을 했다면, 또 다른 장단점이 있었겠지.
그렇다면, 박사과정을 선택하지 않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