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는 첫 출근하던 날, 늦을까봐 잔뜩 긴장해서는 결국 30분이 넘게 일찍 도착해서 회사 근처를 서성였었지. 처음엔 화장실 가는 것도 어쩐지 눈치 보였어. (그래서였을까, 내가 선배가 되고 후임이 들어올 때면 화장실 갈 때 눈치 보지 말라는 말을 제일 먼저 하게 되더라.) 다른 사람들이 바쁠 때 나는 이제 막 입사해 아는게 별로 없어서 보릿자루마냥 앉아 있는데 참 민망했었어. 그렇게 첫 월급을 받고 집에 가는 길에 부모님 선물을 하나씩 사들고는 드디어 내 몫을 하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구나 행복해했던 기억이나.
그러다 조금씩 모든 게 익숙해졌어. 일이 손에 붙기 시작하니까 곧장 재미가 붙더라.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한창 놀고 싶은 20대 중반이었는데도 연애나, 친구들과의 모임보다 일이 좋았어. 그런 말이 있잖아. "어쩌면 우리는 사랑하는 이보다 상대를 열렬히 사랑하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진저도 아마 정확히는 일 자체가 아니라, 즐겁게 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점점 늘려나가는 나를 사랑했던 걸지도 모르겠어.
번아웃이 태워버린 것들
진저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었어. 시간 아끼려고 샌드위치 배달시켜서 동기들과 노동요 틀어놓고 일하던 밤들, 앱 심사가 끝나 마침내 스토어에 앱이 검색되던 날, 아침에 눈 뜨면 습관처럼 앱 켜서 밤새 무탈했는지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었던 날들, 이제 막 시작하던 우리 서비스를 지하철에서 쓰는 사람을 우연히 보고 너무 기뻐서 심장이 두근거리던 날, 첫 TV 광고가 온에어 되었던 날 모두가 아직도 참 생생하다. 꼭 스타트업이 아니더라도 내가 성장하면서 처음 낸 성과나 일, 칭찬들은 모두에게 소중하게 남아있겠지?
몇 번의 이직과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며 지금의 내가 되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하얗게 불태우다 바사삭 타버린 쿠키가 되어버렸어. 번아웃이라는 거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냉소적으로 만드는지. 어떤 일에도 재미를 찾아내고 힘든 일이 있어도 동료들과 노동요를 들으며 "힘들어도 어떡해. 그래도 해내야지!"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새로운 일도 쌓여가는 일 중에 하나처럼 느껴지고 내 능력에도 의심이 가기 시작했지. 처음부터 월급만 전부였다면 이렇게 괴롭진 않았을지도 몰라. 그와중에 또 변해버린 내가 낯설고 싫고 원망스럽더라.
다시 원래의 나로, 반짝반짝 열정으로 빛나는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긴 한걸까? 조금은 초라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 닿아 위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
인스타툰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브런치에서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기뻐. 진저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타버린 진저씨 인스타그램에도 놀러와줘 ✨ 그럼 우리 자주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