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동안 전문성을 길러 서른이 넘어선 나날이 발전해가고, 40대엔 안정되고 안락한 삶을 누릴 거라는 순진한 이상을 품었다. 아마도 1학년, 2학년, 3학년, 저절로 승급해가는 학교식 등급 체계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렷다. 근데 역시나, 세상 일이 그리 호락호락할 리가 없지.
실상은 20대 내내 때늦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거의 그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겨우 취업문턱을 넘었다. 그마저도 갓 서른을 넘겨 퇴사하고 덜 치열한 곳으로 도피했다. 덕분에 결혼하고 가정을 이뤘지만 마찬가지로 덕분에, 30대는 줄곧 육아전쟁이다. 내 삶이지만 내 삶이라 하기 좀 애매하다. 돈도 시간도 에너지도 나만을 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적어도 지금으로선 머지않은 40대가 그리 안락하기만 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안락은커녕 고생문이 뻔히 보인다.
보통 '몇 살엔 이 정도'라는 사고방식에 꽤나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나이와 레벨을 연동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무익하다. 때때로 해롭기까지 하다. 학교에선 국영수나 배웠지 인생을 배우긴 어려운 탓일 게다. 삶은 당연하게도 1학년 다음에 2학년이 되는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가끔은 유급도 하고 제적도 당하고 때론 2학년에서 1학년으로 강급 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그나마 희망적인 건 어차피 1학년, 2학년 때 배울 과목들이 크게 구분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동년배 동급생들끼리 와글와글 순위 경쟁하며 복작거릴 필요 없다. 그냥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걸 배우고 익히며 나만의 학교를 다니면 그만이다. 흔히들 말하지 않나. 올바른 방향, 나만의 속도.
뻔하게만 보이던 말들이 와닿는 순간이, 그 말이 진짜로 쓰일 때가 되었다는 신호렷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시간대에서 살아간다. 나이를 학년처럼 생각할 게 아니다. 기회가 무르익는 저마다의 시간대를 제 때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는 편이 더 낫겠지.
그런데 말이다. 배워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너무 많은 세상이다. 걸음이 느린 거북이 아빠는 따라가다 숨이 찰 지경이다.
아빠 하기 전에는 굳이 안 뛰면 그만이었다. 내 걸음 속도에 맞춰 할 수 있는 것들만 하면 됐으니까. 근데 아빠가 된 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더 이상 나만의 속도를 고집하면 안 되는 거니까. 절벽 끝에 걸린 러닝머신 위를 뛰는 느낌이다. 안 뛰면 밀려 떨어지고 말겠지. 별로 유쾌하지 않은 상상이다.
끌어줄 사람을 기대하긴 어렵다. 다들 비슷한 상황이니까. 모두가 저마다의 레일 위에서 밀려 떨어지지 않으려 달리는 듯하다. 계속 달려봐야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제자리걸음이겠지만, 그래도 계속 뛰다 보면 벗어날 수 있을까 싶어 일단은 다들 달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