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처럼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유려한 문체로 줄줄 풀어내거나 판사 출신 문유석, 의사 남궁인처럼 이지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위트가 넘치는 넘사벽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완처럼 감각적이지도 않고 회색인간 김동인처럼 상상력이 흘러넘치는 것도 아니다. 대중으로부터 엄청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장강명의 번뜩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쓰는 이슬아나 이지성처럼 성실하고 꾸준하게 다작할 근면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연예인이나 유튜버 출신 작가들처럼 유명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투자로 떼돈 번 벼락부자도 물론 아니다.
그마저도 읽음이 짧아 생각나는 작가 이름들을 두서없이 망라한 게 이 정도인데.. 이쯤 되면 '작가'라는 희망 자체가 망상 수준 아닌가. 자격미달이지 않나. 대체 글은 써서 뭐하냐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싸지르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갑갑한 속풀이나 하려고 글로 배설이나 하고 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되고 나서 뭐라도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 때문일까. 가장이니까 모범적으로 책임감 있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걸까. 사실 다 잘 모르겠다. 근데 가만히 넋 놓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 하나만큼은 너무 잘 알겠다.
돌이켜보면 부모님과 심리적 거리감을 느낄 때마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그래서 내 아이들이 아빠를 좀 더 잘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일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개인적인 자아실현 욕구보다는 내 아이들이 아빠를 생각할 때 그저 그런 사람이라 떠올리길 바라지 않는 성격이 더 강한 거 같다. 조금은 있어보이고도, 괜찮아 보이고도 싶고, 자랑스러운 아빠이고 싶은 본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글이라도 남기고 있지 않나 싶다. 꼬장꼬장하고 매일같이 잔소리하는 아빠가, 사실은 너희들을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따뜻한 속마음을 글이라는 흔적으로 남겨두어 훗날 원성을 들을 때 변명거리로 삼으려는 걸 수도 있고.
나는 나일뿐이지만, 앞서 후광이 대단한 양반들에 비하면 늘 초라하기만 한 평범한 아빠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이라도 쓰고 있을 때만큼은 갖은 열등감과 질투심 따위는 다 잊히는 것 같긴 하다. 오로지 이 글을 제대로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글쓰기는 진취적이다. 시작하면 어찌됐건 끝을 봐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