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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스테라 May 01. 2022

어디 가서 딸 가진 부모라고 하지 마

내 부모 맞나 싶었던 둘의 반응

경찰서에 들렀다가 오후 출근하겠다고 말씀드렸던 회사 선배께서 점심을 먹자며 먼저 다가와주셨다.

심장은 여전히 벌렁벌렁 뛰고 툭 건드리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상태였는데 멀쩡한 척 웃으며 함께 회사 건물을 나섰다. 휘몰아치는 비바람 날씨에 약하디 약한 접이식 자동우산은 꺾인 채 덜렁덜렁 댔다. 지금 내 상태와 같았다. 선배께서 웃으며 그냥 편의점 가서 비닐우산 하나 사자고 할 정도였다. 


날씨가 영 아니어서 가려던 가게 대신에 들어가게 된 라멘집에서 메뉴를 시키고 기다리는데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선배께 양해를 구한 뒤 밖에 나가 전화를 받았다. 처음 든 생각은 '당연히 위로의 전화겠지'. 그다음은 '설마'였다. 잠시 통화 괜찮냐는 아빠의 말에 괜찮다고 대답했고 한숨에 뒤이은 말은 '아빠 한 번만 살려줘라'였다. 지금 죽고 싶은 게 누구인데 누가 누구를 살려달라는 건지. 동생이 아직 군인 신분이라 군대로 다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상황 파악 제대로 한 다음에 다시 전화하라는 말을 던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선배와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여러 생각이 드는데..'로 시작한 선배와의 대화에 속이 조금 누그러졌다. 

차라리 남이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할 텐데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 둘 다 조심스러웠다. 

괜찮은 척하면 정말 괜찮아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 

사건에서 벗어난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침 마감 때였고, 써야 할 원고가 있어서 정신없는 하루였다. 

엄마에게 카톡이 와있었다.'얼마나 놀라고 힘들었니? 남동생 혼내서 집에서 내보냈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으로 와라.' 다정한 카톡에 또 울컥한 감정이 차올랐다. 

남은 원고는 집에 가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고 이만 회사에서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친구 집으로 가려던 생각을 지우고 안심하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여니 도어락 소리를 듣고 나와있는 부모님이 보였다. 

엄마가 먼저 두 팔을 벌려 안아주었다. 나는 회사에서 참고 있었던 모든 감정을 다 해 울었고, 엄마도 함께 울었다. 처음 본 엄마의 우는 모습에 더욱더 마음이 찢어졌다. 우리 둘은 같은 감정인 줄 알았다. 

그러더니 울던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취하서 써주면 네가 살 곳 마련해줄게'. 여기서 할 말을 잃었다. 

눈물이 뚝 그쳤다. 


어떻게 나에게 취하서를 쓰라는 말을 할 수가 있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가, 천천히 설명을 하다가, 외면하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해 거절했다. 


내가 112에 신고하면서 원하던 것은 딱 하나였다. 

잘못한 사람이 처벌받는 것. 

그것이 내가 사는 세상을 움직이게 만들고, 안전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규칙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도 모든 방법을 다 해 나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이 행위를 설득이라고 해야 할지, 2차 가해라고 해야 할지 아직도 헷갈린다. 

내 두 팔을 멍이 들도록 부여잡고 3시간 동안 엉엉 울다가, 내가 친구 집으로 가려고 하니까 가방을 잡아채가고, 일을 하려고 하니까 노트북과 아이패드, 핸드폰을 차례대로 빼앗아갔다. 같이 3시간 동안 오열한 나는 지칠 대로 지쳐 누워 잠들었다. 


일어나니 그제야 일을 하라고 노트북을 돌려주었다. 그 시간이 1시쯤이었다. 친구들에게 사건을 알렸고, 혹시 내일 내가 출근해야 할 시간에 연락이 없으면 취하서 쓰라는 부모의 협박을 받고 있는 것이니 경찰에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천천히 원고를 써보려고 하니 아빠가 핸드폰을 놓고 나가려던 걸 엄마가 겨우 쥐 워 주어 갖고 나갔다. 그런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핸드폰은 꺼져있었고 엄마는 울며 '네 아빠 죽으면 어떡할 거니'라며 아빠를 찾으러 뛰쳐나갔다. 이상하게 기분이 차분했다. 천천히 112에 전화했고, 실종신고를 하려다가 경찰분이 혹시 자살 신고하시려는 거냐고 하셔서 자살 신고로 방향을 틀었다. 금방 핸드폰 위치추적이 됐고, 바로 출동하겠다고 하셨다. 


아빠 핸드폰과 연결된 엄마가 울며 전화받아보라며 나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아빠의 거친 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네가 싸우니까 정말 살고 싶지 않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느냐'는 내용의 말에 이러다 정말 아빠도, 엄마도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알았어, 취하서 쓸게. 나도 사랑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경찰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나에게 미안하다며 내일 이야기 하자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원고를 쓰다가 말았다.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다음 날, 출근 준비를 하고 바로 떠날 예정이었다. 취하서를 쓰는 건 아무래도 틀린 일이었다. 누나의 목을 조른 남동생이 사회에서 번듯하게 활동하는 게 제일 두려웠다. 


역시나 부모는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제 취하서 쓰기로 했으면서 왜 그냥 가려고 하니'라며 엄마는 다시 날 붙잡고 늘어졌다. 이번에 나는 관할 경찰서로 전화를 해 부모가 협박을 하고 있다고 알렸다. 아빠 핸드폰으로 이러시면 협박죄가 성립될 수 있다며 전화가 왔는지 엄마에게 '그만하라고, 이 년아'라고 말했다. 이 말은 두고두고 평생의 상처로 남을 거다. 


나는 둘을 제치고 집에서 벗어났다. 

집에서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어디 가서 내 부모라고 말하지 마'.


어젯밤에도 자살을 시도했던 아빠가 걱정돼 나는 바로 112에 자살 신고를 했다. 어제의 신고 기록을 언급하며 오늘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고 하니 바로 출동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신고자와 만나야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길래 출근을 미루고 경찰과 만나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기다렸다. 집으로 올라가 부모와 만난 경찰의 전화가 왔다. 평소에 가족과 대화를 잘 안 하지 않느냐는 물음과 함께 경찰이 처음 출동해서 부모님이 놀라신 것 같다, 동생과 대화를 해봐라 같은 전혀 도움되지 않는 말을 하다가 전화를 끊고 회사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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