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미쳤지 3
미니멀리스트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마음먹은 일, 해를 넘기지 않기로 했다.
연말이 지나기 전에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잡고 나면 느긋하게 예약했던 건강검진도 하고, 결혼기념일 홈파티를 새로운 식탁에서 할 수 있을 거야...
오호~ 기대가 된다.
- 일정 -
11월 20일 주방가구, 마루공사 견적
11월 29일 수요일 아일랜드식탁, 싱크대, 수납장 철거.
11월 30일 목요일 싱크대 및 팬트리 설치.
12월 1일 금요일 냉장고 설치, 식탁 입장.
12월 2일 토요일 아침 일찍 고터 꽃시장에 가서 꽃 한 다발 사 와야지.
야무진 스케줄이었다.
계획이란 미래에 관한 현재의 결정이다.
피터 드래커가 말했댔지....
그랬다. 내가 세운 스케줄은 미래에 관한 현재의 결정일뿐이었다.
나의 계획과 무관하게 마루공사 사장님의 공사 스케줄이 있었고, 새 가전의 배송 스케줄이 있었다.
기존 가전의 당근 판매에 따른 구매자와의 일정 또한 모두 달랐다.
4일이면 모든 것이 끝나야 하는 나의 계획이 한 달짜리 일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맙소사.... (푸바오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님 버전)
산 넘어 산
기존의 주방가구 철거를 위해서는 이미 들어있는 각종 주방기구들을 꺼내어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냉장고의 음식을 정리해야 한다.
하 하 하...... 그런데 말이지,
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난 두 번째 코로나에 걸렸다.
남들은 두 번째쯤의 코로나는 쉽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39도가 넘는 고열로 사흘을 앓고 젖은 빨래가 되어 누워 있어야 했다.
철거 예정 일주일 전부터 '정리해야 해, 치워야 해 치워야 해'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모든 일은 제자리걸음. 하나 하고 나면 쉬고 싶고 눕고 싶다.
하지만, 사람은 참 신기하다. 막상 닥치면 세상 불가능한 일도 해 낸다.
이게 가족이구나
아일랜드식탁을 철거하기로 모두 동의를 했지만, 가족들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다 알아서 하겠지' 생각했을 거다. 여태껏 그랬으니까.
그동안 이사도 나 혼자 다 했으니까.. 이까짓 싱크대 이사쯤이야 뭐가 대수겠어했을 거다.
철거 하루 전날 저녁, 아무 정리가 안된 주방!
가족들 모두 퇴근, 정리가 안된 주방을 보더니 치킨 한 마리 시키고 모두 주방으로 달려들었다.
늘어놓기 대장 막내까지도.
아..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들었다. 이게 가족이구나... (훌쩍~)
미션 1
싱크대와 수납장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꺼내라.
미션 2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린다. (정말 과감히 버렸다.)
미션 3
다시 사용할 물건들은 서재방에 넣는다.
이게 무슨 일이람?
정리를 시작하자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세트로 사 두었던 행주 꾸러미, 이뻐서 사 두었던 냅킨, 미리 사 두었던 친환경 수세미, 공동구매로 사 둔 주방세제, 선물로 받았던 건강식품, 언제 쓸지 모르지만 필요한 곰솥, 우아하게 음식 해 먹고 싶어서 샀던 대나무 찜기.....
이 아이들이 모두 싱크대에 있었던 거야?
엄마가 담가 준 삼 년 된 매실액, 취나물 장아찌... 조선간장 다 떨어져서 못 먹고 있었는데, 이 아이도 김치냉장고에 있었구나. 어머나, 맛있어서 아껴 먹던 고추장도 김치냉장고에 있었네.
꺼내고 꺼내도 끝이 없다.
그냥 작은 싱크대 일 뿐이었다. 남들도 다 쓰는 4 도어의 김치냉장고 일 뿐이었다.
미니멀리스트 그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누가 좀 알려주세요!!!!
* 피터드래커 (1909.11.19 ~ 2005.11.11), 미국의 경영학자. 현대 경영학 창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