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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로 인생핥기 Mar 20. 2023

호접지몽과 호러

아기 데카르트의 철학적 공포

방금 아가를 재우다가 나눈 이야기가 재미있어 글을 써봅니다.


아가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을 했답니다.


“아빠, 혹시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이 다 꿈이면 어쩌죠? 저는 지금까지 행복하고 재밌었는데 꿈이라면 너무 슬프고 무서워요.”


너무나도 귀여운 꼬마 철학자입니다.


그리고 조금은 놀랐습니다.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걸까요?

어디서 들은 얘기냐 물었더니 그냥 혼자 생각했답니다.. 허허 참.


그래서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한 위로의 말을 합니다.


“보통 꿈을 꿀 때 나타나는 다른 사람은 내 생각이 반영된 거라 내 생각대로 반응해. 그런데 엄마나 아빠나 주변사람들이 꼭 아가가 생각한 대로만 반응했니? “라고 물어봅니다.


아니랍니다.


“그럼 꿈이 아닌 거야.”


그렇지만 또다시 울며 “그래도 꿈이면 어떡해요. 확실하지 않잖아요. 진짜 꿈일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제는 이 우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뮬레이션이라는 시뮬레이션 우주론과도 맞닿아 있으며, 사실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동양에서는 호접지몽, 즉 장자(莊子, BC396?-BC286)가 꿈을 꾸고 일어났는데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논의로 유명하죠.


저는 이렇게 계속 불안해하는 아이를 달래고 또 약간은 지루한 이야기(배드타임 스토리?)로 재울 요량으로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옛날 프랑스에 데카르트라는 철학자가 살았어. 철학자는 직업이 생각을 하는 거야. 신기하지? 이 사람은 어느 날 생각했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게 다 가짜면 어쩌지? 내가 앞에서 봤던 사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그 사람이 내 뒤에 그대로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지?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의심해 보았대. “


여기까지 말하자 아기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입을 막습니다.


“무서우니까 그만 말해요ㅠ”


그렇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더 얘기하겠다며 양해를 구해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심을 하다가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를 깨달았대. 그건 바로 지금 내가 의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대.(그 유명한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지금 아가는 생각하고 있지? 그럼 아가는 진짜로 존재하는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그랬더니 하는 말.


“아빠가 그 말해서 더 무서워요! 어디 가지 마요! 제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해요!”


이러면서 제 멱살을 잡습니다.


사실 이 모든 글은 멱살 잡힌 채로 침대에 누워 쓰고 있습니다.


겁도 생각도 많은 우리 아이, 제가 너무 겁을 준 것일까요?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정말 귀엽습니다. 더 잘 지켜줘야겠어요.


그래도 이젠 좀 놔주지 않겠니…??



오늘의 다짐


안 무섭게 한다고 더 무섭게 하지 말자. 아이는

모르는 세상 모든 게 무서우니까. 그냥 알고 있는 걸로 편하게 안심시켜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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