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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먹보 Jan 10. 2021

장사는 하루 할 게 아니니까요

New York. 32nd St. Korea Town.  <우리집>

아무래도 직업이 그러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제가 가게를 열면 어떤 가게를 하고 싶은지 자주 묻고는 합니다. 물론 항상 머리 속에 여러 생각들이 많지만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러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우선은 재미있고, 한 번에 눈길을 끄는 특이한 아이템들을 많이 생각해보지만, 사실 식품 시장을 오래 지켜보다보고 경험하다보니, 사실 진짜 해야 하는 가게는 '롱런' 할 수있는 가게를 찾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뉴욕 맨하탄의 32가에 가면 한인타운(Korea Town)이 있습니다. 한인타운이라고 부르기에는 사실 아주 작은 사이즈의 Street인데요. 한국에 오래 산 제 눈에는 솔직히 말하면 90년대 촌티를 벗지못한 예스러운 느낌을 지우기 어렵지만, 한류 붐을 타고 온 뉴요커들과 한국이 그리운 뉴욕 내 한국인들이 모여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입니다. 한국은 이제 빠르게 많이 세련되어 지고 있는데 해외에 있는 한식당이나 한인타운들은 한국의 70-8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인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 물론 요새는 좋은 곳들도 많이 생기고 있지만요.


32가 중심으로 가면 "우리집"이라는 간판 하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외관이지만 점심부터 저녁, 문을 닫는 새벽 2시까지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이름도 무난합니다.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건 아니지만 쉽게 잊히지도 않을 쉬운 이름입니다.


<우리집>은 뉴욕 West 32가 코리아타운에 위치해 있습니다.


안에는 미국 Deli 형태의 구성입니다. 바로 사서 먹을 수 있는 RTE (Ready-to-eat) 메뉴를 다양하게 구성한 음식점을 Deli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작게 딸려 있는 반찬가게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통 미국에서는 샌드위치나 샐러드 등을 팔고 있는 Deli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는데요, 메뉴는 다르지만 구성은 비슷합니다. 메뉴를 찾아보면 잡채, 만두, 계란말이, 국, 밥 등 정말 다양한 한식 메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달러표기만 아니라면 여기가 미국인가? 라고 생각할 만큼의 기분이 들게 해줍니다.


참 무난한 장소입니다. 메뉴들도 독특하지 않고 평범하고 가격도 비싸지 않고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격입니다. 한국 음식이 익숙치 않은 외국인에게는 신기한 음식일 수 있지만 한인타운에 방문하는 한국 사람, 혹은 한국 음식이나 다른 나라 음식들이 너무나 익숙한 뉴요커들에게는 데일리 음식이라고 할만큼 평범한 음식들입니다. 밥을 팔고, 계란말이, 치킨, 잡채 같이 평범하면서도 익숙한 메뉴와 맛을 선보입니다.



점심에 간단히 먹을 도시락 메뉴들이 가게 중앙에 잘 진열되어있고 (왼쪽), 저녁에는 조금 더 푸짐한 한끼 메뉴들도 있습니다 (오른쪽)



평범하지만 <우리집>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점심시간에는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 위한 테이크아웃 줄이 길게 늘어서고 저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중간 애매한 시간에도 간단한 간식과 식사를 사기 위한 고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집>이 정말 맛있는지 물어본다면 사실 조금 갸우뚱하긴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맛이 없진 않지만 엄청 맛있지도 않다는게 전반적인 평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맛이 없지도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맛의 반찬가게 수준이지만 특별히 거슬리는 맛도 없습니다. 


코로나 전의 사진입니다 (마스크 없는 게 참 어색하네요)


그래서 <우리집>을 볼 때 진짜 롱런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오히려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특이한 것보다 자주 방문하기 좋은 곳, 독특한 메뉴가 사로잡는 곳 보다는 평범한 메뉴들이 있는 곳, 아주 맛있지 않더라도 또 가도 괜찮을 것 같은 메뉴가 있고 그 가격이 아주 적당한 장소 말입니다. 


사실 상품기획을 하다보면 약간의 강박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남들과 다른 것, 뭔가 독특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입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기괴한(?) 제품들이 출시 되기도 하고, 처음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가도 금방 질려버려서 인기를 잃어버리는 제품도 많습니다. 가게를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트렌디하고 인기있는 업종이나 메뉴들을 가지고 장사를 시작해서 잠시 손님들이 줄을 섰다가도 금세 썰물처럼 빠져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절대적인 비율은 아니지만 메뉴나 제품을 기획할 때 여러가지 구성이 있다면 80%의 대중적인 메뉴와 20%의 독특한, 그리고 이 가게의 특별한 시그니처 메뉴 정도로 구성하는 것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고객을 유인하는 미끼상품들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롱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메뉴를 고민하는 것도 고객에게 매력을 주는 데 아주 중요하지만 매일매일 오게 만드는, 매일매일 편하게 사게 하는 아이템을 구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매출을 생각한다면 독특한 아이템도 좋지만, 오히려 평범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제품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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