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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선생님 Jun 26. 2024

죄책감 없는 육아가 가능할까?

언어치료사 엄마의 고백.

대학원 종강을 했다. 이번 학기들어 거의 처음으로 아이의 하원을 하러 유치원에 갔다. "어머, 일찍 오셨네요!". 시계를 보니 5시가 조금 넘었다. 이미 다른 아이들은 집에 가고도 남은 시간인데, 아이는 늘 수요일은 아빠가 6시에 하원을 하곤 했다. 


아이는 더군다나 올 3월 유치원을 옮겼다. 이전 유치원은 6시가 넘어도 아이들이 꽤 남아있었는데, 옮긴 유치원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올해 들어서 엄마들이 일을 휴직하거나 정리했다고 하셨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이제 죄책감조차 무뎌져가고 있었다.


대학원 휴학 2년 반, 누군가를 위해 나의 목표를 포기해본 경험을 깊이했던 시간이었다. 남편은 뇌수술을 받았고, 그 이전까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 속의 전기신호 때문에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이조차도 언젠가는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휴학이 무슨 대단한 희생인 것마냥 아이에게 짜증을 퍼부었던 날도 있었다. 


아이는 그저 태어나고, 태어나 보니 바쁜 엄마, 욕심이 많은 엄마를 만났을 뿐인데. 운이 좋지 않다면 좋지 않게 아빠가 잠시 아팠던건데. 불안을 늘 안고 사는 불안이인 나는 그 시간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부모교육 때 그렇게 말하고, 내가 쓴 책에 대부분이 이러한 메시지를 전했는데. 나의 내면 깊은 곳에는 죄책감과 피해망상이 뒤엉켜있었다.



오랜만에 4년전에 쓴 브런치 글이 브런치 서랍에 담겨있는걸 보았다.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출산 이후 온전히 육아에만 매달렸을 때도. 100일된 아이를 곁에 두고, 아이가 잘 때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어갔던 것 조차도 죄책감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래놓고 나는 죄책감을 버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격이 있을까?



앞으로도 죄책감이라는 단어는 계속 나를 괴롭히리란 것을 알고 있다. 좋은 학원에 보내주지 못해서, 벌이가 넉넉하지 못해서. 어쩌면 아이가 개근하는 것조차 죄책감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훌훌 털어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엄마도 사람이니까' 그 이상의 엄마를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언어치료 상담 현장에서도 느낀다. 엄마는 분명 매 순간이 최선이었다. 아이의 언어발달이 지연됨에 있어서 언어자극을 덜 받았을 수도 있지만, 치료실에 아이의 손을 붙잡고, 짜증내는 아이를 카시트에 애써 앉혀서 치료실에 온 것 자체만으로도 엄마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날, 치료 시간에 늦는 엄마를 보며 속으로 원망을 할 때도 있었는데. 아이의 문화센터, 소아과, 어린이집 갈 준비를 단 한번이라도 해보면 알 수 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때로는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 겪어보지 않았기에 몰랐다. 


아이는 7살이 되었다. 유치원에서는 나름 형님반인데, 엄마에게는 초등학교 입학의 두려움이 시작되는 7살이다. 언어치료사로서도 14년차를 맞이해간다. 14년이면, 중학교 1학년 나이인데. 아이를 양육하기 이전과 이후의 삶은 언어치료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1막과 2막으로 나눌 수 있는 구분점이 되었다.


혹자는 외동을 키우면서, 딸 하나를 키우면서 엄청난 경험을 한 것마냥 이야기한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인생에는 각자의 십자가가 있지 않을까? 그 십자가의 무게를 한 명 한 명 측정하기 어려울 뿐더러 굳이 드러내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방학을 하기 이전까지는, 브런치를 통해 출간 제안을 받거나 또 한번의 투고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 읽은 선배 작가님들의 책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렸다. 글에 대한 초심을 회복하자, 엄마로서, 치료사로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자.


바람이 있다면, 엄마들에게 위로를 주는 글을 쓰고 싶다. 혹시나, 남편이 남모를 건강 이슈를 갖고 있다면, '토닥토닥'이라는 말 대신, 달달한 마카롱과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건내고 싶다. 7년, 앞으로 그리워질 이 시기가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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