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임용에 성공했다. 그것도 정년이 보장되는 정년트랙으로! 그래서 요즘 지인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자랑하고 다닌다. 마치 내가 이룬 업적인 양...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노량진에서 만나 한눈에 반했고, 결혼에 성공해 지금 내 옆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지원해왔다. 학사 논문을 쓸 때에도 내 지인들을 대거 동원해 수월하게 연구 대상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박사 논문 때에는 연구가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하드웨어적인 문제를 도와줬다. 그뿐인가? 코로나가 터져 연구 대상자를 모집하기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재빠른 대처로 연구 참여자를 내가 거의 모아줬으며 아내가 논문을 쓰고 업적을 채울 수 있도록 생활비를 벌어오는 과정 속에서도 집안일과 육아를 주말까지 책임지다시피 했다. 이번 연도에는 아예 육아휴직에 들어가 지원을 시작했으니 뭐.
물론 아내의 입장은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임용이 되었다는 점이 날 더 기쁘게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한 변화가 생겼다. 그것도 너무나 큰 변화가... 바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8월 초 합격 발표가 난 뒤, 우리는 재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경상남도 지역으로.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삶의 터전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 가족이 나와 아내로만 이루어졌다면 큰 걱정은 없었겠으나 이미 아이가 2명인지라 많은 것이 걱정되었다.
Q. 이사로 인한 여러 문제점
1. 나의 직업
2. 아이들 양육과 교육
3.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에 대한 두려움
4. 소소한 문제들
나의 직업에 대한 문제는 다행스럽게 내가 공무원이라 해결되었다. 어차피 내년까지는 육아휴직을 쓸 예정이고, 그 이후는 타시도 교류를 통해 2년을 번 뒤, 타시도 전출을 낼 예정이기에 어찌어찌 해결될 듯하다. 다른 이들처럼 직업을 바꾸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위치 이동이 가능하기에 가능한 선택지. 다만, 타시도 교류에 실패할 경우가 문제였는데, 그럴 경우 그냥 다시 한번 육아휴직을 쓰면 된다는 말이 있어 괜찮을 것 같다.(지역에 대한 고민만 좀 더... 아내가 다시 구직시장에 뛰어들 수도 있으므로...)
아이들 양육과 교육에 대한 문제는 반은 해결하고, 반은 해결하지 못했다. 일단 아무런 연고가 없기에 아이들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경우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내년까지는 육아휴직으로 어찌 버티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일단 첫째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버텨야 둘째 케어가 가능할 것 같은데, 가능할지 문제다. 그나마 근처(?) 시립어린이집에 첫째 자리가 있어서 일단 급한 불은 끈 것 같다.
연고가 없다는 점은 나에게 좀 큰 문제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문제... 심심하다. 친구들을 만나려 해도 기차만 3시간이니 뭐 할 말이 없다. 더군다나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육아 우울증에 빠지면 어쩌나 걱정 중이다. 정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다른 취미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
마지막으로 소소한 문제는 정말 소소한 문제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바로 서현이에게 오랜 친구가 없다는 문제. 물론 주위 지인들은 어차피 지금 친구들은 다 잊는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부모로서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오늘 서현이 입소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어린이집 경험을 적어보았는데 너무 미안했다.
만 0세: 안양 시립어린이집
만 1세-만 3세 여름까지: 서울대 부설 어린이집
만 3세 가을부터 겨울까지: 집 근처 H 시립어린이집
만 4세 지금까지: 집 근처 K 시립어린이집
선택지가 없었다. 만 0세 때는 아내 지도 교수님이 정년을 앞두시고 출산 후 바로 복귀하라고 하셔서 복귀하느라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그리고 운전을 배운 뒤 아내가 차로 한 시간 거리의 대학교 수업을 들으러 다니며 아이를 부설 어린이집으로 통학시켰고, 아내의 졸업과 동시에 잘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퇴소당해 부랴부랴 집 근처 어린이집에 입소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쯤부터 서현이에게 생긴 친구라는 개념이다. 그냥 같은 공간에서 같이 놀이하는 친구가 아닌 점점 마음을 주는 친구. 그런 개념이 만 3세 반에서 생기기 시작한 것. 문제는 그 어린이집을 계속 다닐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바로 둘째 때문인데, 둘째도 어린이집을 같은 곳에 보내려면 더 큰 시립어린이집으로 보내야 했다. 그래서 서현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린이집을 옮겼다. 대신, 이곳은 졸업할 때까지 동생과 다닐 거라는 약속과 함께.
그리고 그 약속도 깨졌다. 아내의 취업과 동시에 너무나 먼 곳으로 새로 이사하면서 어린이집도 바꿔야 했다. 봄, 여름 내내 하원하면서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같이 놀았던 친구들, 그리고 아파트 단지에서 또 만나 어울리던 친구들과 떨어지면서 서현이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주가 남은 시점에서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면서 마음을 정리한 서현이. 그리고 그런 서현이가 4절지에 쓴 편지는 내 마음을 다시 한번 슬프게 했다.
이 편지를 혼자 쓰면서 얼마나 슬펐을지,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생각하면 짠하다. 심지어 등원 마지막 날에는 다음 주에 있을 친구들 생일잔치에 자신이 선물을 직접 주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는 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 여린 아이가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만들어야 하는 점이 그 무엇보다 속상했던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