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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야 Dec 17. 2023

다 벗었을 때

내가 속한 조직은 요새 근평 시즌이다. 평정 점수를 매기고 이의 신청을 받고 동료 다면평가를 하고 순위를 정하는 등 인사 절차가 한창이다.


며칠 전 확인한 내 점수는 썩 보잘 게 없다. 통밥으로 봐도 승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동갑이지만 두 배 이상의 경력을 지닌 윗 직급자가 나에게 가점은 없냐고 물었다. 없다 했더니 작은 거 하나하나 잘 챙겨야 위로 올라간다고 조언했다. 자신은 이의 신청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나로 말하자면 아무 감흥이 없다. 이것이 꿈에 그리던 해탈인가? 혹은 무기력증이 고질병이 된 것인가? 사실 둘 다 아니다. 욕심 많은 내가 직장인의 보람이라는 승진에 연연하지 않게 된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거기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삼십 대 후반부터 건강 상 각종 문제를 겪으며 내 안에 일종의 명령값으로 설정된, ‘생자필멸.‘ 천수를 누린다한들 그게 영원히 산다는 뜻은 아니니 내게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청년 시절 희롱하듯 입에 올렸던 죽음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최최최종의 끝은 결국 오고야 만다.


언젠가 죽는다고 침대에 누워만 있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이고 생산적이고 의미 있게 활용하고 싶은 거다. 우선순위를 정한 후 비중 있는 일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겠다는 계산이다. 승진은, 그러니까 조직에서 매기는 서열은 나에게 얼만큼 중요한가? 위로 올라가면 뭐가 좋으며, 아니 그보다는, '위'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실체를 알지 못하는 것을 쟁취하려고 얼마나 애써야 마땅한가?


소위 핵심 인재는 이런 쓸데 없는 질문을 안 하려나? 질문을 던질 여유 없이 이미 경쟁 우위에 서 있을 테니. 어쨌거나 나는 조직에서 백조도 미운오리 새끼도 아닌 수준으로 자신을 포지셔닝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본능적이거나 전략적으로 내게 유리한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조직 안에서 승부를 보는 대신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편이 내 삶을 더 풍성하게 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


얼마 전 혼자 대중목욕탕에 갔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상처 난 알몸을 뜨거운 물에 불리고 때를 밀 때, 발갛게 달아오른 살갗을 보며 했던 생각. '어쩌면 이게 전부다.' 언제까지 직장 생활을 할 지 모르지만, 직장인으로 천수를 누려 무사히 정년 퇴직한다 해도, 내게 결국 남는 건 최최최종의 직급이 아니라 또 다른 다음을 향해 스스럼 없이 움직일 줄 아는 내 몸뚱아리 하나일 거라는. 그 밑천 빼곤 한 때의 미사여구 아닌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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