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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un 04. 2024

기증은 아름답다

석기자미술관(59) 숙명여대 박물관 특별전 <삶의 향연, 기증의 기록>


올해 나이 53살.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은 1971년에 태어나 반세기 넘게 살아왔다. 2004년에 한 번 터전을 옮겨 올해로 20년이 됐다. 그동안 수집한 소장품이 1만여 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무려 70%, 9천 9백여 점이 기증품이다. 53년 동안 391명이 기증에 동참했다. 부족해도 턱없이 부족한 대학 박물관의 유물 구매 예산을 생각하면, 기증이야말로 대학 박물관을 존속하게 하고 제 기능을 하게 하려고 뜻 있는 이들이 내민 동아줄이다.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이 이전 20주년을 기념해 개관 이후 입수한 기증품 가운데 130여 점을 선보이는 특별전의 막을 올렸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된다. 먼저 1부 ‘황실의 전통을 기억하다’에서는 조선 왕실 유물부터 대한제국 시기 황실 유물을 선보인다.     


순헌황귀비 초상


고종 어진

   

숙명여대 설립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순헌황귀비(1854~1911)다. 영월 엄씨로 당시 백성들이 민비(명성황후)와 구별해 엄비, 엄귀비 등으로 불렀다. 만 다섯 살에 궁에 들어가 민비의 시위상궁이 됐고, 민비가 시해된 뒤 고종의 승은을 입어 황귀비 자리에 올랐다. 황제의 일곱째 아들 영친왕 이은(李垠)을 낳았다. 교육 운동에 힘을 쏟아 양정의숙, 진명여학교, 명신여학교 등을 설립하거나 후원했다. 친정 조카인 육군참장 엄주익(嚴柱益)을 시켜 1906년 5월에 설립한 명신여학교가 바로 숙명여자대학교의 모태다. 이런 연유로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에는 대한제국 황실 관련 유물이 제법 있다. 이 초상은 영정화가 권오창 화백이 그려 기증한 것이다. 남편인 고종의 49세 어진도 박물관에 전한다. 채용신의 전칭작으로 표기돼 있으나 알 수 없다.     


백자 사각병


이방자 여사의 글씨

    

영친왕과 영친왕비 결혼식 사진



영조와 정조의 글씨, 역대 임금의 글씨를 모은 책 <열성어묵(列聖御墨)>, 여성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는 <순화궁 첩초(順和宮 帖草)>, 의친왕 이강의 글씨로 꾸민 10폭 병풍 등이 눈에 띈다. 순헌황귀비의 며느리이자 영친왕의 일본인 아내 이방자 여사 관련 유물도 두 점이 나왔다. <백자 사각병>은 자선사업을 위해 제작한 것으로, 이방자 여사가 직접 그림을 그렸다. 또 하나는 이방자 여사의 글씨다. 생전에 장애아를 위한 시설을 설립하고 꾸준히 후원한 이방자 여사는 운영 기금을 마련하고자 그림과 글씨 등을 많이 팔았다. 유물의 글자는 목숨 수(壽) 자다. 한쪽에 결혼식 때 모습을 찍은 부부의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왼쪽) 두루마기  (오른쪽) 사규삼 및 창의


(왼쪽) 조끼 (오른쪽) 색동 마고자


이 박물관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복식 유물, 즉 옷이다. 박물관에 소장된 <영친왕 일가 어린이 옷>이 일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 유물은 이방자 여사가 보관하다가 1973년 한국 생활에 큰 도움을 준 숙명여대 동문회장 출신 김기정 씨의 딸인 김명자 숙명여대 교수(전 환경부 장관)의 첫아들 돌잔치 때 선물했다. 김 교수가 1998년 박물관에 기증했고, 2021년 국가민속문화유산이 됐다.     


홍학도


 

윤용구 <묵죽도>


   

2부 ‘생활 문화를 보여주다’에서는 가정에서 주로 사용된 다양한 생활용품과 예술품을 만날 수 있다. 그림 가운데 그림 한 장과 글씨 한 장이 쌍을 이루는 <홍학도(紅鶴圖)>라는 것이 있는데,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으로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의 전칭작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알 수 없다.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 석촌 윤용구의 <묵죽도>가 그런대로 볼 만하다. 이 밖에 도자기와 가구, 문방사우, 장신구 등 다양한 전시품이 나왔다. 기증된 회화는 가품(佳品)이 많지 않아 조금은 아쉽다.     


활옷


    

3부 ‘보존과 복원으로 이어가다’에서 이 박물관의 자랑인 복식 유물을 볼 수 있다. <활옷>은 조선의 마지막 지밀상궁으로 알려진 김명길 상궁이 기증한 것이다. 지밀상궁은 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어명을 기다리는 상궁을 가리킨다. 활옷은 조선 중기 이후에 사용된 여성 혼례복이다. 왕실에서는 공주들이 중요한 행사 때도 입었지만, 민간에서는 결혼할 때만 입었다고 한다.     


황원삼

     

홍원삼

   

복식 유물은 보존의 어려움 때문에 남아 전하는 실물이 많지 않을뿐더러 지금 있는 것도 보존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재현품이다. 같은 재료와 기법으로 복식 유물을 재현해놓으면, 전시와 연구, 교육 등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전시장에 함부로 내놓을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이번 전시에 나온 복식 일부는 재현품이다. 원본이 아니라고 해서 없이 여겨선 안 된다. 재현 자체가 쉽지 않고, 그 결과물도 원본 못지않지 훌륭하다. 사임당이라는 호를 쓰는 전난수 씨가 왕실 복식과 금침을 재현해 2004년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왼쪽) 노사문 흉배  (오른쪽) 단학문 흉배

  

조선 관리들이 품계에 따라 관복 앞가슴에 꿰매 단 <흉배>도 여러 점 나왔다. 평소에 흉배를 따로 볼 기회가 많지 않아서 더 반가웠다. 이 가운데 <단학문 흉배>는 주인의 이름이 밝혀져 있어 흥미롭다. 1620~30년대에 병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낸 유중병의 흉배다. 옆에는 시기가 더 이른 조선 초기 흉배가 있다. 앎이 부족하여 예까지만 쓴다.      


전시장 입구에 조각가 최만린의 작품 <“0” 89-17>과 김세중의 작품 <은혜의 성모>가 놓였다.      


최만린 <“0” 89-17>
김세중 <은혜의 성모>

 

전시 정보

제목숙명여대 박물관 이전 20주년 기념 특별전 <삶의 향연기증의 기록>

기간: 2025년 3월 28()까지

장소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청파로47길 100 지하 1)

문의: 02-710-9134, smmuseum@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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