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60) 박치호 개인전 <BIG MAN - 무심한 몸들>
아트페어나 비엔날레 같은 대형 미술 행사는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작가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무대다. 2023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취재 당시 목포문화예술회관 전시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작가 중에 박치호란 이름이 있다. 인간의 몸을 머리와 팔다리 없이 몸통만 남은 토르소(torso)로 표현한 연작이었는데, 대형 캔버스에 실제보다 훨씬 크게 그려진 앙상한 육신은 보는 내내 처연하고 먹먹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처음 들어본 작가의 이름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언젠가 제대로 작품을 들여다볼 기회가 오겠지 하며 기다렸다.
갤러리에서 보내온 보도자료를 여는 순간 대번에 바로 그 작가라는 걸 알고 반가운 마음에 전시장으로 달려갔다.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작품 수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인사동 갤러리로는 꽤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 토포하우스 2층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근원적 고독에 몸부림치는 불완전한 인간 존재의 맨몸을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2022년에서 23년 사이에 제작한 <다시 일어서는 몸> 연작 두 점과 올해 새롭게 완성한 <빅맨> 연작 3점이 주는 무게감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제목처럼 크게 그려진 몸은 그 크기와 다르게 초라하고 왜소해 보인다. 몸의 언어에 귀 기울여보라. 작품이 꼭 그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전시 포스터 이미지로 사용된 커다란 얼굴 그림도 주목해봐야 한다. 회화, 조각, 설치를 넘나드는 작가답게 입체 조각의 조형성을 평면 회화로 구현한 기량이 예사롭지 않다. 전시장에 걸린 얼굴 연작 3점에는 <Oblivion Drawing>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것은 잊힌 존재이자 망각 상태에 놓인 인간 존재다. 작은 드로잉 작품도 고르게 좋다. 탄탄한 내공이 느껴진다. 작가는 이렇게 썼다.
‘존재가 성숙해지는 과정’이 내 작업의 주제이다.
질곡의 삶을 살아낸 인간의 몸에는 무수히 많은 고통과 분노, 좌절과 슬픔이 상처가 되어 겹겹이 쌓인다.
우리는 삶의 경험과 흔적을 통해 성찰하고 성숙한다.
나는 이러한 삶의 모습들을 무심히 응시하며 무심하게 그리려 한다.
‘무심함’이야말로 인간 성숙의 길이라 여기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