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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un 20. 2024

큐레이터 이규호, 화가 이규호

석기자미술관(61) 달맞이꽃의 작가 이규호 화백 회고전


이규호(李圭皓, 1920-2013)는 화가이자 교육자이며 큐레이터다. 1920년 서울 태생으로 일본 도쿄 다이헤이요(太平洋) 미술학교를 나와 서양화가로 활동하며 여러 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이규호라는 이름 석 자를 한국 미술의 역사에 깊이 각인시킨 것은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쌓은 업적이다.     



이규호는 1962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들어간다. 이규호의 아들 이종훈의 회고에 따르면, 박물관에 옛 유물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작품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당시 유진오 고려대 총장은 작품 수집을 맡을 적임자로 이규호를 낙점해 박물관 학예사로 전격 영입했다. 하지만 작품 수집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규호는 당시 김상협 고려대 총장과 뜻이 맞아 박물관에 현대미술실을 만들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작품 수집에 나섰다.     


이규호는 서양화가로서 넓은 인맥과 온화한 성품, 좋은 작품을 알아볼 줄 아는 뛰어난 안목으로 당시 한국 미술계의 주요 작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작품을 직접 골라 사들이거나 기증받았다. 그렇게 이규호가 수집한 현대미술 작품 50여 점을 토대로 1973년 5월 3일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현대미술실이 문을 열었다.    

 

이규호가 수집한 권진규의 자소상

 

미술대학은커녕 미술 학과도 없던 대학에 현대미술전시실을 열 수 있었던 건 남다른 안목으로 좋은 미술품을 수집한 이규호라는 뛰어난 큐레이터 덕분이었다. 조각가 권진규의 <자소상>을 비롯해 국립미술관 부럽지 않은 수준 높은 한국 현대미술 작품이 개관전을 통해 공개되자 다른 작가들도 너도나도 구매를 요청하거나 기증 의사를 타진했다고 한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의 현대미술 컬렉션은 2024년을 기준으로 1천2백여 점에 이르지만, 이규호 수집한 작품과 나머지로 구분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규호의 수집품은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2023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현대미술실 개설 5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특별전 <지천명에 화답하다>에서 이규호가 수집한 귀한 작품을 직접 만날 기회를 얻은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규호의 존재는 박물관에 더없는 축복이었다.     


대동여지도부터 근현대 명작까지대학 박물관에 이런 보물이? (KBS 뉴스9 2023.7.22.)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30316     



이런 사정 때문에 그동안 화가로서의 면모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생전에 개인전도 네 차례뿐이었고, 국내외 단체전 이력을 다 더해도 화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교육자로,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와중에도 이규호는 죽는 날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2008년 마지막 개인전 이후 16년 만이자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생전에 각별한 인연을 맺은 고려대학교 박물관 지하 1층 전시장에 이규호의 작품이 빼곡하게 걸렸다.     


달과 달맞이꽃, 캔버스에 유채, 30×50cm, 2002


이규호는 처음엔 추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평생에 걸쳐 추상과 구상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특정 소재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종교화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이규호의 회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재는 달맞이꽃이다. 왜 달맞이꽃인가? 미술평론가 이구열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그림 관계의 직책을 맡아 다니던 1978년 무렵 어느 날이었다. 저녁 때 퇴근하다가 박물관 경내의 수풀 속에서 신선한 순 노랑의 야생 꽃이 꽤 큰 키의 줄기에 줄줄이 피어 있는 것을 무심히 보게 되다가 그 청초한 아름다움에 당장 빠지게 됐다고 한다. 주위를 살펴보니 여기저기에 그 꽃이 야생으로 피어 있었다. 다음날 누군가에게 들으니 그것은 초저녁달이 뜰 무렵을 기다렸다가 달과 어울리게 노랑 빛으로 조용히 피는 꽃이어서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전국 야산 기슭 또는 논밭의 들길 머리에 자생하며 여름내 그 노란 꽃을 피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달밤에 향토적 정취를 짙게 풍기는 야생화로서 꽃말 또한 ‘기다림’이란 아름다운 시구를 갖는다니 문학적 감성도 남달랐던 이규호 선생은 그 꽃의 순박한 아름다움의 분위기를 화면에 예술화하는 연작에 집착하면서 스스로 ‘달맞이꽃 화가’라는 칭송을 들을 만했다. 그 자체로 그는 충분히 만족하려고 했다.”     


달과 달맞이꽃, 캔버스에 유채, 130.2×160.2cm, 1984


달과 달맞이꽃, 캔버스에 유채, 91×91cm, 1987


이 글대로라면 이규호는 화가로서 대성하거나 일가를 이루겠다는 큰 꿈이나 욕심 없이 자유롭게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며 사는 삶에 만족했던 것 같다. 이규호는 달맞이꽃에서 영감을 얻은 이후 평생에 걸쳐 달과 달맞이꽃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달맞이꽃의 형상을 네모꼴로 단순화해 화면에 일정하게 배열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 뒤에는 노란 네모를 다양한 방식으로 배열해 화면의 리듬감을 만들어냈는데, 어떤 작품에서는 환한 불빛을 내며 하늘로 올라가는 풍등(風燈)을 떠올리게 한다.     


달과 달맞이꽃, 캔버스에 유채, 81×122cm, 2003
달과 달맞이꽃, 캔버스에 유채, 91×91cm, 1989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박쥐다. 사실 서정적인 그림과 박쥐는 어울리지 않는데, 이규호가 어떤 이유로 박쥐를 그림의 소재로 끌어들였는지 모르겠다. 박쥐가 작품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이 두 점, 박쥐를 아예 화면 중심에 놓고 크게 그린 것도 한 점 있다. 그중 한 작품을 보면 박쥐가 날개를 양옆으로 한껏 펼친 모양새가 초승달의 형상과 엇비슷하게 닮은 것을 볼 수 있다. 그 생김새의 유사성 때문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밤에 활동하는 대표적인 날것이 박쥐여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박쥐의 존재는 이례적이다.     


박쥐와 달맞이꽃, 캔버스에 유채, 37.9×45.5cm, 1980



오랜만에 여는 큰 규모의 전시라 작품이 꽤 많이 나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얼마 만인지 모르는 회고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작품 수가 좀 많은 데다가 시기별, 장르별로 체계적으로 작품을 건 것도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잘 된 작품 위주로 더 골라서 좀 더 세심하게 전시장을 구성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전시 기간이 좀 짧아서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니, 나중에라도 작품 배치를 달리해서 관람 효율을 높일 방안도 함께 찾았으면 좋겠다.     



전시 정보

제목달맞이꽃의 작가 이규호 화백 회고전

기간: 2024년 6월 30()까지

장소고려대학교 백주년기념 삼성관 지하 1층 기획전시실

문의: 02-3290-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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