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08) 라인하르트 슈타이너 <에곤 실레>
에곤 실레라는 화가를 잘 모르는 사람도 에곤 실레의 그림을 어딘가에서 한 번은 봤을 것이다. 에곤 실레의 그림이 우리나라에서 책 표지로 제법 사용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강 작가에게 맨부커상을 안긴 소설 <채식주의자>의 초판 표지 그림이다. 에곤 실레의 1917년 작 <네 그루의 나무 Four Trees>로, 현재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벨베데레 궁전 소장품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의 미술사학과 교수인 저자가 쓴 책 <에곤 실레>에 도판과 함께 작품 설명이 있다.
“그가 보여주는 풍경은 현실적이지 않다. 수직적.수평적인 이미지가 지배하는 그의 ‘인위적으로 구성된’ 풍경화는 전체적인 대칭을 어긋나게 하는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네 그루 나무 중 나뭇잎이 거의 떨어진 한 그루는 의심할 여지없이 ‘한 여름의 나무 앞에서 느끼는 가을 나무의 우수’를 상기시킨다.”
또 하나 생각난 것이 김탁환의 장편소설 <아편전쟁>이다. 민음사가 2016년에 출간한 이 소설의 표지를 장식한 그림은 에곤 실레의 1914년 작 <빨간 수건을 두른 누드 Standing Male Nude with Red Loincloth>다. 툭툭 불거져 나온 뼈마디가 다 보일 정도로 깡마른 그림 속 인물은 일부러 그러라고 해도 쉽사리 따라 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하게 뒤틀린 몸짓을 보여준다. 이름만 안 붙였을 뿐 화가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는 그림이다. 에곤 실레 인물화 특유의 메마른 신체와 비틀린 몸짓은 이 시대의 소설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책을 읽으면서 2016년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28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간 에곤 실레의 삶과 예술을 그린 영화 내용이 대체로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한 흐름을 보여줬기 때문.
에곤 실레의 그림에 관한 호불호는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지만, 대부분이 동의하는 한 가지가 있다. 데생가로서 타고난 재능이다. 에곤 실레는 지우개를 쓰는 법이 없었고, 늘 실물을 놓고 그렸다고 한다. 드로잉할 때는 대체로 윤곽선만 그렸고, 색을 입힐 때는 모델 없이 기억에 의존해 그렸다. 대체로 원근법을 무시했고, 때론 사다리에 올라가 모델을 내려다보며 그렸다. 부감법을 사용한 인물화가 적지 않은 이유다. 그는 실로 아무런 금기도 없는 예술가였다. 그러면서 자기 예술을 향한 무한한 자부심을 지녔다.
“예술가들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나는 항상 가장 뛰어난 화가들은 인간의 형상을 그렸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그렸습니다. 에로틱한 작품들은 그 자체로 성스럽기도 하지요! ……한 장의 ‘살아 있는’ 예술 작품 하나로 예술가는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내 그림들은 사원 같은 건물에 걸려야 합니다.”
특히 풍경에 관한 에곤 실레의 말은 음미할 만하다.
“제 생각에 자연을 그대로 베끼는 데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저는 기억을 더듬어서 작업합니다. 내 작품들은 풍경에 대한 나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현재 나는 산과 물, 나무들과 다른 식물들의 실제적인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인간 몸의 움직임에 대해 기억합니다. 절제하기 어려운 기쁨이나 고통의 충동이 식물들에게서도 느껴진다는 말씀입니다. 데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색을 입힘으로써 새로운 이점들이 생겨납니다. 한여름의 나무 앞에서 가을 나무를 느끼기 위해서는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영혼의 울림을 들어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우수의 느낌을 그리고 싶습니다.”
에곤 실레는 짧은 생애 동안 100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가운데 이 책에는 실리지 않은 에곤 실레의 유명 작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 11월 30일 개막하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에서 공개된다. 작품을 대면할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