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07) 오원배 <치환, 희망의 몸짓>
오광수, 이호숙이 지은 《한국 미술 100년》(마로니에북스, 2023)에 수록된 오원배의 1985년 작 <무제>에 관한 설명을 읽어보자.
“쇳덩이, 파이프 등의 무기물과 인간이 등장하는 내용이다. 어두운 바탕 속에 하얗게 떠오르는 인간은 어떤 연체동물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들은 서로 뒤엉켜 기이한 상황을 연출한다. 그런데 꽈배기처럼 휘감긴 인체들은 이 상황으로 인해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는 듯하다.
엉켜 싸우는 장면 같기도 하고 껴안으면서 서로를 확인하는 실존의 표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투쟁이든 연민이든 강인한 인간 존재와 이들이 처한 상황을 은유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아가 어두운 시대를 통과하는 인간의 처연한 모습을 통한 저항적인 몸짓으로 실감 나게 반영된다. (중략) 오원배의 <무제>는 어두운 시대 상황을 은유적으로 드러내어 시대의식과 조형적인 완성도라는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오원배는 1980년대에 직접적인 형상과 자극적 구호를 전면에 내세운 민중미술과 거리를 두면서 ‘메시지’와 ‘미학’의 결합을 통해 삶의 이야기를 조형화하는 방법을 심도 있게 탐구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오원배의 1993년 작 <무제>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인간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며 동물적인 본성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1990년대 민주화 시기로 접어들면서 오원배는 도시라는 차갑고 거대한 회색빛 구조 속에 소외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주로 그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300》 참고)
아트사이드에서 열리는 작은 개인전에서 오원배는 뒤틀린 굵은 선으로 사회 체제에 종속된 인간의 무력감과 허무함을 표현한 데서 벗어나 희망을 품은 인간의 몸짓을 표현했다. 전시장 한쪽 벽을 연극 무대처럼 활용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작품 <무제>(2024) 속 인물들의 몸짓은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가로 15m에 이르는 이 작품은 작가가 이 전시를 위해 완성한 신작이다. 전시 설명문을 읽어보자.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한 동작 한 동작 춤을 추는 무용수와 같아 보인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인물의 얼굴과 그 표정까지 전면적으로 내세웠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얼굴의 측면과 후면만을 노출함으로써 신체의 움직임에 더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목탄화처럼 검정색의 음영만으로 옅게 번져 나가 드로잉적 요소들을 형식적으로 화면에 끌어온 흔적 투박하면서도 볼륨감 있는 근육의 해부학적 요소들을 놓치고 있지 않아 오히려 섬세하게 느껴진다.”
아트사이드 갤러리가 3층 전시장 아트사이드 템포러리로 명명해 출품작 수를 줄인 밀도 있는 전시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에 나온 오원배의 작품은 모두 8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