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34) <수묵별미(水墨別美): 한․중 근현대 회화>
좋은 전시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미처 잘 몰랐던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해 소개하고, 그 작가의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컬렉션에 깊이를 더하는 것은 국립미술관의 핵심 역할 가운데 하나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기획전 <수묵별미(水墨別美): 한․중 근현대 회화>를 통해 한국화가 조풍류의 작품이 국립미술관 전시에 처음 소개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미술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출품작 74점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59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2점,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소장품 3점에 개인 소장이 10점이다. 개인 소장품은 작가 또는 유족이 갖고 있던 것으로, 이번 전시를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될 예정이다. 발굴 –> 전시 –> 소장의 선순환이다.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될 조풍류의 <종묘 정전>(2023)은 황혼 녘의 빛이 하늘을 곱게 물들이는 시간대의 종묘 정전을 그린 채색화다. 종묘 정전이라는 공간의 신성함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화가는 강렬한 푸른색을 주조로 사용하고, 지붕 위로 보이는 하늘은 낮과 밤이 자리를 바꾸는 찰나의 시간이 허락하는 곱디고운 노을빛으로 물들였다. 널따란 월대의 아스라한 그 푸르름이 시리도록 깊다. 조풍류의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작의 하나로 손색이 없는 그림이다.
오랜 기간 채색화 기법으로 서울 산수를 그려온 조풍류는 한국미의 집대성이라 할 종묘 연작을 그리기로 마음먹고 2020년 겸재정선미술관 개인전에서 그 첫 결실인 대작 <종묘>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세로 220cm, 가로 140cm짜리 대형 화판 4개를 이어붙인 장대한 화폭에 펼쳐진 종묘의 야경은 그 고요하고 엄숙한 위엄으로 보는 이를 압도했다. 종묘를 이런 식으로 화폭에 옮겨 그린 화가는 일찍이 없었다. 조풍류는 이후 종묘 정전과 영녕전을 여러 점 완성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출품된 <종묘 정전>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다. 캔버스 천을 화판에 씌우고 표면을 반수 처리한 뒤 동양화 안료인 호분, 분채, 석채를 아교에 개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채색한 작품이다. 깊이 있는 색감과 벽화의 거친 질감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보면 볼수록 그윽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유화나 아크릴 물감으로 비슷하게 그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수행자와 같은 자세로 오랜 기간 갈고 닦아온 조풍류의 채색화 기법은 아무나 쉽사리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조풍류는 평생을 전업 화가로 살았다. 월급 받는 직업 한 번 가져본 적 없이, 오로지 그림 팔아서 먹고 살아왔다. 돈 되는 그림 그리는 걸 싫어해서, 상업화랑이나 아트페어와도 거리를 두고 지낸다. 단체나 협회 따위에 기웃거리며 출세와 영달을 꿈꾼 적도 없다. 누가 뭐라든 지금까지 묵묵히, 꿋꿋이 자기 그림을 그려온 천생 화가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알리는 데도 무척이나 서투르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을 보면 안다. 오로지 그림에 진심인 화가, 그게 바로 조풍류다.
전시장에 가보면 안다. 한국 작품 가운데 조풍류의 그림이 단연 눈에 띄더라는 얘기를 꽤 많이 들었다. ‘포토존’이라 해도 좋을 만큼 조풍류의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이 많다. 전시장을 지키는 어느 알바생은 화가를 보자마자 팬이 됐다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단다. 왜 그러겠는가. 사람들 보는 눈이 다르지 않다. 좋은 그림은 사람을 모은다. 작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