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232) 변웅필 개인전 《아무렇지 않은 날들》
4년 만에 변웅필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제목이 ‘아무렇지도 않은 날들 Nothing Special Days’이다. 특별할 것 없는 나날. 특별한 것 없는 일상. 이 평범한 제목이 주는 무게를 생각한다. 한 오십 년 살아보니 알겠다.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을 일없이, 탈 없이 보내는 게 얼마나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인지를.
가깝게는 코로나 대유행 시기가 있었다. 평범했던 일상이 순식간에 흔들리고 갈라지고 허물어진 그 대혼란의 경험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사는 일이 더는 먹고 자고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몹시도 값비싼 수업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만큼 소중한 게 없다는 사실을.
변웅필 작가를 처음 만난 것도 코로나 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이었다.
■팬데믹 시대, 당신은 안녕하신가요?…내면의 자화상을 마주하다 (KBS 뉴스9 202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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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웅필의 그림 속 누군가(SOMEONE)는 웃고 있다. 변웅필이 그리는 인물은 누군가의 얼굴이 아니라 색과 선을 실험하기 위한 화면 구성 요소다.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 1890~1964)가 병과 꽃병으로 공간과 빛을 연구했듯, 변웅필은 인물이라는 형식을 통해 회화 언어를 탐구한다. ‘SOMEONE’이란 제목은 모두 비특정적 존재를 가리킨다. 그것은 화가에게 색과 형태를 담는 그릇일 뿐이다.
4년 전 인터뷰에서 변웅필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변웅필의 그림은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상의 무게가 실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화가는 4년 만에 여는 개인전에서 그동안 그려온 인물에서 사물로 형태를 확장했다. 대상은 달라졌지만 접근법은 같다. ‘SOMETHING’이라는 제목은 모두 비특정적 존재를 가리킨다. 그것은 작가에게 색과 형태를 담는 그릇일 뿐이다. 간결한 색면과 단순한 윤곽선 속에서 대상은 이름을 잃고 화면의 한 부분으로 녹아든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정의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처럼, 변웅필에게 그림 그리기는 목적 없는 진지한 유희다. 하지만 이 놀이에는 엄밀한 규칙이 있다. 일정한 방향의 붓질, 반복되는 색 조합, 계산된 형태의 배치. 이 규칙들은 누가 정한 게 아니라 화가 스스로 놀이 과정에서 만들어낸 거다.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캔버스 앞에 앉는 행위는 특별한 영감이나 사건이 아니라 삶의 리듬 그 자체다.
그림 속 누군가(SOMEONE)는 화가의 자화상이기도,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얼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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