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 들어갈 때 사용할 물건을 챙겼다. 꼭 필요한 물품을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 머물다 보니 점점 부족함이 느껴졌다. 편하게 쓰려고 집에서 가져온 담요와 베개가 있었는데 빨아야 할 시기였다. 그래서 병원 매점에서 세제를 샀다. 세제는 같은 방 분들과 함께 쓰고, 남으면 집에 가져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생리대도 집에서 챙겨 오면 부피가 꽤 크기 때문에 매점에서 샀다. 그리고 보디 세트도 챙겨 왔는데, 시원찮아서 새로 주문했다. 이것저것 사다 보니 집에서처럼 쇼핑 좀 해볼까? 싶었다. 책도 사고, 봄옷도 사고… 그러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샤워를 할 때는 쭈그려 앉아 머리를 감았다. 마무리를 하고 병실 쪽으로 걸어가는데, 머리가 핑 돌아서 서있을 수가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께 상황을 말하고 쉬었더니 괜찮아졌고 혈압도 정상이었다. 이제 웬만하면 쭈그려 앉지 말아야지 했는데, 생활하다 보면 쭈그려 앉아야 할 상황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리가 백정 같아서 ㅠㅠ 감아야 했다.
손등과 팔 쪽에는 껍질이 일어나서 “집에서만큼 때를 빡빡 밀지 않아서 그런가?” 했는데, 같은 병실 언니가 항암 부작용이라고 했다. 내가 아는 항암 부작용에는 이런 것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것도 부작용의 한 종류라고 하니, 이제 몸이 반응을 하는구나 싶었다. 핸드크림과 보디 크림을 듬뿍 발라도 어느새 보면 손등과 발등 위, 그리고 몸에 자잘한 각질 같은 것이 보였다. 차라리 이것뿐이면 좋겠다.
각질이 벗겨지기 시작. 이것은 시작일 뿐...
그리고 생리를 할 듯싶어 생리대도 잔뜩 사놨는데, 예정 날짜는 이미 지났지만 소식이 없었다. 평소 날짜가 잘 맞는 편인데, 이상했다. 다음날 요양병원 원장님께서 회진하실 때 여쭤봤더니, 항암은 암세포를 죽이기도 하지만, 좋은 세포도 죽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괜히 슬퍼졌다. 더 심한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길.
워낙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는 낯을 가리는 편인데 병실에 오랫동안 함께 있다 보니 많이 편해져서 다른 분들을 언니라고 불렀다. 한 분이 단백질이 많은 음식이 ‘닭 가슴살, 병아리콩, 아몬드, 두부, 계란 등등’이라고 하셨다. 당장 먹을 수는 없지만 메모를 해두었는데, 저녁 반찬에 잘게 썰어 으깬 메추리알이 나와서 맛있게 먹었다. 밥을 많이 먹지 못하니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그거라도 잘 먹어야 했다.
언니들이 토마토와 샤인 머스캣을 나눠주셨다. 내가 잘 못 먹으니까 칼로 얇게 슬라이스 해주셨다. 껍질은 빼고 속만 빨아먹었다. 상콤 달콤했다. 립스틱과 화장품, 덧신과 영양음료도 나눠주셨다. 립스틱은 내가 좋아하는 붉은색이라서 바르고 기분을 좀 냈다. 비록 마스크를 썼지만 발랐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언니 한 분이 자전거도 타고 계단 오르내리기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개운하고 잠도 잘 온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그거 흉내 좀 내보느라 자전거도 조금 타고 평소보다 더 오래 복도를 걸었다. 그랬더니 눈앞에 있는 물건이 두 개로 보였다. ‘아, 나는 여기 까지는구나. 아직은 무리구나.’ 하면서 병실로 돌아왔다. 처음엔 노안인가? 싶었는데, 먹은 것이 없는 상태에서 많이 움직여서 그런 것 같았다. 병실에서 한참을 푹 자고 일어났더니 상태가 좋아졌다. 앞으로는 무리하지 말아야겠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