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없는 여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이 Apr 11. 2023

인생일기 12.

1차 항암.

1차 항암을 하는 날이 되었다. 1박 2일 입원을 하고 항암주사를 맞는 일정이다. 혈관이 얇은 편이라 잘 보이지 않았고, 주사를 많이 맞으면 혈관이 숨는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신기하네.

아무튼 링거 주사 맞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수술하고 입원하면서 꽤 많이 맞았기 때문에 큰 두려움은 없었다. 입원한 둘째 날에는 항암 부작용을 막아주는 링거를 먼저 맞으면서 뒤이어 항암 약이 든 링거를 맞았다. 빨리 항암 주사를 맞고 퇴원하고 싶은데 교수님 오더가 나야 맞을 수 있다고 해서 계속 기다렸다.

    

드디어 만난 항암 주사.

항암 주사라고 해서 특별한 줄 알았는데, 그냥 링거 주사였다. 초조함과 걱정 속에 주사를 다 맞았고 링거를 뺐는데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늘어지고, 식은땀을 쪽 뺐다. 그리고 한 번 토하기. 토한 건 그 전날에 속이 편치 않았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힘든 몸을 이끌고 남편과 함께 요양병원으로 다시 왔다. 몸이 처지고 힘든데 다시 입원 절차를 밟고, 원장님도 만나야 해서 로비 소파에서 널브러져 기다렸다. 나는 보호자와 왔지만, 만약 혼자 온 환자가 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노란 봉투에 쌓인 항암주사. 혈관아, 숨지 말고 나와봐!


입원 절차를 마친 후, 남편은 집으로 가고 혼자 입원실로 올라왔다. 코로나 때문에 격리 기간이 있어서 저번처럼 1인실에 입원했다. 짐도 정리 못하고 옷만 얼른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이불도 덮지 않고, 새우등 자세로 한참을 잤다. 중간에 간호사 선생님이나 조리사님이 들어와 질문해도 간단히 대답만 하고 내리 잤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식사 때 되어서 한 숟갈 겨우 먹고 또 자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토하고 누룽지 국물만 조금 떠먹었다. 살짝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6인실에서 같이 있었던 언니들이 내가 잘 왔나 싶어 병실 문에 있는 작은 창으로 들여다봤는데, 침대 발치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자는 모습만 보이더란다. 언니들, 나 엄청 많이 잤어요.     


교수님이 말씀하신 항암의 부작용이 두려워서 낮 동안에도 계속 잠을 잤다. 잠을 자면 아픔을 좀 덜 느낄까 싶어서. 아침에 깨서 이불 정리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 보다 자고, 잠깐 일어났다 또 자고, 밥이랑 간식 시간에 한 숟갈 겨우 먹고 또 자고.     

 

항암 약과 부작용을 예방하는 약이 꽤 많았는데, 그걸 먹다 보니 물을 많이 마셔서 자연스럽게 배가 부르고 음식 먹기가 힘들었다. 요양병원 원장님께서 수시로 오셔서 상태를 물어보시고 너무 먹기가 힘들면, 입맛을 돌게 하는 약을 처방해 주시겠다고 했다. 오늘까지 참아보고 더 힘들면 내일 처방을 부탁드리겠다고 했다. 그 약까지 먹으면 약이 너무 많아져서 싫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가 걱정되는지 수시로 카톡을 하고 전화를 했다. 밤에 자고 있냐고 카톡을 하면서 가수 양희은 씨가 부른 ‘당신만 있어 준다면’ 노래 영상을 보내주었다. 잘 모르는 노래였는데, 들으면서 한참 울었다. 그동안 남편과 함께 한 시간을 떠올려보니 늘 나를 이해해 주고 챙겨준 남편이 고마웠다.


그리고 매일 연락하고 내 목소리를 들어야 잠들 수 있다는 부모님이 계셔서 너무 행복했다. 몸에 힘도 없고 혼자 있으니 심란하고 안 좋은 생각만 났는데, 가족을 떠올리면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지켜나가기 위해 더 기운을 내야 했다.   

  

요양병원에 있는 와중에 딸의 생일이 있었다. 엄마가 없어서 얼마나 허전했을까. 남편이 저녁 반찬으로 고기를 볶아주고, 케이크를 사서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케이크에 꽂힌 20살을 상징하는 큰 초 두 개. 내가 집에 있었다면 예쁜 수제 케이크를 준비해 주었을 텐데 미안하기도 하고, 잘 지내준 딸에게 고마웠다. 함께 하고 싶은 생일이었는데, 내년에는 더 예쁘고 즐겁게 축하해 줘야지.     


몸은 불편했지만 운동이 필수라서 게을리할 수 없었다. 매일 조금씩 걷다가 순환 치료실에 있는 다양한 운동 기구를 이용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재미도 있었다. 몇 가지 운동 기구를 짧은 시간 동안만 사용했지만 하고 나면 땀도 나고 개운했다. 운동을 싫어하는데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은 날씨 때문인지 몸도 기분도 축축 늘어졌다. 요양병원 자체도 조용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일기 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