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일어났다. 먼저 일어난 언니가 눈이 온다며 창밖을 보라고 했다. 3월에 흩날리는 하얀 눈을 보며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엄마, 아빠에게 보내고 친구에게도 보냈다. 그러다가 다시 밖을 보았더니 눈이 그쳤다. 우리가 본 그 잠깐 시간 동안에만 눈이 온 것이었다. 핸드폰에는 눈이 내리는 모습이 찍혀 있는데 밖은 평소랑 같았다. 의미 부여하기 좋아하는 나는 ‘오늘 눈을 본 사람은 행운아야! 나는 행운아! 그래서 나에게는 행운이 따른다!’라고 생각하니 이제부터 나에게는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았다.
병실 창 밖으로 보는 눈 오는 풍경
눈 와서 좋았다!!
항암치료와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많은 알약을 먹었다. 약의 개수가 많아서 물을 잔뜩 마실 수밖에 없는데, 요령이 생겨서 물의 양을 조절하며 약을 먹었다. 약을 보면서 생각했다. 물론 주사도 맞고 생활 습관도 잘 챙겨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약이 내 암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걸까? 이거 먹고 낫는다면 정말 쉬운 거 아닌가? 하며 다소 건방진 생각도 했다.
환자로서 나를 치료해 주는 모든 분들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야 하는데, 참 바보 같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그래, 약 잘 먹고 주사 잘 맞고 음식 조심해서 먹고 운동하고. 그럼 나을 거야!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가 갑자기 ‘근데 전이되면 어떡해?’ 머릿속에선 이리저리 왔다 갔다 완전히 다른 생각을 했다.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싶은데, 전이 걱정, 가족들 걱정이 갑자기 떠오르며 복잡해졌다.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 속에서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야지, 좋은 쪽으로만 생각해야지 했다.
부작용 약을 제외한 항암약, 각질을 잠재울 바디로션(그러나.. 잠재우지 못함..ㅜㅜ)
진밥 혹은 된밥을 먹고 반찬은 여전히 다진 것을 먹었다. 잘게 다져지거나 뭉개진 듯한 버섯, 고기, 나물, 생선 기타 등등의 음식을 보면 밥을 먹는다기보다는 오늘도 몇 번을 반복해서 처리해야 할 과정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밥맛도 없고 더 먹기 싫어졌다. 원장님께서 회진을 하실 때 “너무 다져진 반찬을 보니 밥맛이 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어른 먹듯이 먹으면 안 돼요?”라고 여쭤봤다.
원장님께서 알겠다며 그 대신 꼭꼭 잘 씹어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 뒤, 점심시간에는 나물과 가자미 생선 등이 반찬으로 나왔다. 제대로 된 모양을 갖춘 음식을 보니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건지… 반찬을 조금씩 베어 물며 천천히 먹었다. 그랬더니 입맛도 슬슬 돌고 반찬도 조금씩 더 먹게 되었다. 과식은 절대 하지 않지만, 다양한 반찬을 조금씩 맛보니 마치 잃어버린 미각을 찾는 것 같았다.
아프고 나서 큰엄마와 자주 통화를 했는데, 큰 엄마는 운동만이 살길이라며, 아침을 먹기 전에 꼭 운동을 하라고 하셨다. “큰엄마 저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요, 너무 졸려요.”라고 어리광스러운 말을 했더니, 낮과 저녁에 하는 운동은 누구는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아침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매일은 아니지만, 아침 식판이 오기 전에 20분 정도 복도 돌기 운동을 했다.
당부와 응원의 시간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항암 2차를 맞을 날이 다가왔다. 1차를 해봤으면서도 걱정과 불안은 계속됐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걱정되는 그것.